통증에 관한 일반적 인식은 '참는 것이 미덕'이다. 아기도 아프게 낳아야 제대로 낳았다고 생각한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보수적인 의사일수록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진통제를 처방하는데 인색하다. 통증을 인위적으로 없애다보면 원인 질환을 찾아내지 못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인식이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통증도 단순히 증상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인식해야한다는 것이다.
대한통증학회(회장 윤덕미 연세대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17일부터 22일까지 통증 주간을 선정하고 '통증도 병이다'란 주제로 대국민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서울과 부산 등 5개 도시에서 무료 강연회도 갖는다(www.painfree.or.kr).
윤덕미 교수는 "통증은 원인과 관계없이 오래 되면 신경 자체가 아픈 신경병증성 통증으로 악화한다"며 "어떤 원인이든 통증은 빨리 없애주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신경병증성 통증이란 통증이 오래될 경우 신경 자체가 변성돼 통증 유발 원인이 제거돼도 통증이 계속되는 경우다.
이때 통증은 극심하다. 초산부가 겪는 진통보다 2배, 일반적인 치통보다 2.5배나 심하다. 일반적인 진통소염제론 해결되지 않는다. 통증에 관한 한 참는 것이 미덕은 아닌 셈이다.
신경병증성 통증의 대표적 사례가 환지통(幻肢痛)이다. 1년 전 교통사고로 무릎 아래를 절단한 황씨(자영업, 45세)는 지속되는 다리 통증으로 한달 전까지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다리가 없어졌는데도 발가락 끝까지 전기가 오는 것 같은 심한 통증이 간헐적으로 발생하고 그때마다 환자는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 했다. 다리 전체가 저리고 조이기도 했다. 다리가 없는데도 통증을 호소하는 것에 대해 주위 사람들은 보상을 노린 꾀병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황씨는 대표적인 환지통 환자다. 다리는 없어졌지만 신경의 변성으로 통증을 경험하는 것.
디스크나 관절염 등 질환을 오래 앓을 경우에도 신경병증성 통증이 올 수 있다. 이 경우 튀어나온 디스크를 수술로 말끔히 제거해도 통증은 남는다. 디스크에 수년 이상 눌린 신경에 변성이 나타나 신경병증성 통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신경병증성 통증을 비롯한 각종 통증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곳이 바로 마취통증의학과다.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이상철 교수는 "과거 마취과가 최근 마취통증의학과로 진료과목의 이름을 변경했다"며 "두통과 요통 등 가벼운 통증에서 바람만 뺨에 스쳐도 칼에 베이는 듯한 삼차신경통, 대상포진 통증, 말기 암환자의 통증, 신경병증성 통증 등을 전문적으로 치료한다"고 밝혔다.
대학병원은 물론 동네 의원 마취통증의학과에서도 통증 치료가 가능하다.
대표적 치료는 신경차단치료. 디스크나 근육 경직에 의해 압박된 신경에 국소마취제 주사를 놓아 치료하는 방법이다. C자형 영상장치를 통해 통증 유발 신경까지 정확하게 주사한다.
세연 마취통증의학과 최봉춘 원장은 "디스크와 오십견 등 뼈와 관절 질환에서 생긴 통증은 물론 대상포진 신경통, 얼굴의 삼차신경통 등 바이러스가 신경에 침투해 생긴 통증에도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말기 암 통증처럼 신경차단치료로 효과가 없는 극심한 통증은 신경자극술이나 신경파괴술 등으로 조절이 가능하다.
윤교수는 "현대의학은 비록 불치병을 완치시키진 못하지만 환자를 아프지 않게 해줄 수 있다"며 "원인과 관계없이 통증은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치료함으로써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