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안성시에 사는 24세의 평범한 남자입니다.
이름이나 직업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밝히지 않겠습니다.
제가 오늘 이렇게 글을 올리는 이유는..
오래전에 제가 겪은 어떤 일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세상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믿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말했죠.. 세상에서 오직 변하지 않는 건, 모든것이 변한다는 사실뿐이라고..
그 말에 공감했습니다. 현재의 감정이 아무리 애뜻하더라도..
그건 시간과 환경에 의해서 언젠가는 변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건 어쩌면 지금까지 제가 여러차례 연애에 실패를 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래전 한 노인을 만난 후.. 그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중에서 혹시나 '사랑'이라는 감정도 언젠가는 변하게 되는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이 글을 읽어보시고 부디 그 생각에 어떤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어느날 저는 한적한 길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전날 술을 마시고서 세워둔 차를 찾으러 술집에 가는 길이었지요.
그 때가 아마 오후 5시 정도 되었을겁니다.
한참을 그렇게 걷고 있는데 멀리서 무언가 하얀게 보이더군요.
조금 가까이 가보니 쓰러져있는 유모차라는 것을 알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혹시나 교통사고라도 났나? 하는 생각에 다가가 보았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없더군요. 아마도 교통사고는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대신 연로하신 노인 한분이 유모차 옆에 앉아계셨습니다.
사실 저도 바빴지만, 그래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서 그 노인에게로 다가갔습니다.
"저어.. 할아버지.. 여기서 뭐하고 계세요? " 대답이 없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를 일으켜드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는 중심을 못잡고 금새 쓰러지려고 하시더군요.
그제서야 저는 그 유모차가 할아버지가 걸음을 옮기는데 필요한 보조기구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아마 유모차의 손잡이를 잡고 밀면서 걸음을 걷는거겠지요.
그렇게 유모차에 의지해 걸으시다가 유모차가 넘어진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먼저 유모차를 바로 세운다음.. 할아버지를 일이켜드리고 유모차의 손잡이를 할아버지의 손에 쥐어드렸습니다.
아마 제 생각이 맞았나 봅니다. 그 할아버지.. 고맙다는 말도 없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더군요.
뒤에서 보기에 너무 불안하고 위험해 보였습니다.
금방이라도 다시 쓰러지실것 같았습니다. 저는 무척 난처했습니다.
할아버지를 도와드려야 했지만, 시계를 보니 벌써 6시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7시에 약속이 있었거든요. 저는 할수없이 그 할아버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또다시 그 술집을 향해서 걸었지요. 하지만 내내 그 할아버지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차를 세워둔곳에 도착해보니 차는 잘 있더군요.
시계를 보니 이제 약속시간은 30분도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급한마음으로 약속장소를 향했습니다. 그런데..
얼마후 저는 또다시 넘어져있는 그 낮익은 유모차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역시나 옆에는 그 할아버지가 앉아계시더군요.
보아하니 아까 제가 일으켜드린 곳에서 채 100미터도 벗어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저는 잠시 고민했지만 그 할어비지를 도와드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그 할아버지에게 다가갔습니다.
약속한 친구에게는 미안했지만 그 할아버지가 마음에 걸려서 견딜수가 없었거든요.
"할아버지 어디까지 가세요? 제가 태워다 드릴께요..
" 역시 대답이 없었습니다. 저는 유모차를 접어서 트렁크에 실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기운없어보이던 할아버지가 정말 놀날만한 힘으로 제 다리를 붙잡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바라보니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단호한 표정으로 오른손은 제 다리를, 왼손은 유모차를 붙잡고 계셨습니다.
유모차에 뭐 중요한거라도 있나? 하고 보니까..
그 아기태우는 부분에 빠리바게트 케익 상자가 나일론줄로 칭칭 묶여있더군요.
저는 할수없이 또 아까처럼 유모차를 세워드리고 손잡이를 붙잡도록 도와드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역시 아무런 말도없이 걸음을 옮기셨구요.
저는 차의 시동을 끄고, 그 할아버지를 따라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할아버지의 걸음이 너무나 답답해서 마음같아서는 업어서 데려다드리고 싶었지만 그럴수도 없고..
암튼 그렇게 할아버지의 뒤를 졸졸 쫓아갔습니다.
할아버지는 평균 50미터에 한번쯤 넘어지셨는데 그때마다 일으켜 드렸지요..
할아버지와 저와의 이 이샹한 행진은 거의 3시간이 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신 모양이었습니다. 어느 집 근처에 이르자..
대문밖에서 서성이고 있던 반백의 노인이 뛰쳐나왔습니다.
"아이구~ 아버님.. 도대체 어딜 다녀오시는 거에요?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세요?" 아마도 그 반백의 노인은 저 할아버지의 아들인 모양이었습니다.
저를 보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아버님을 데려다 주신 모양이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어떻게 보답을.. " 그 반백의 노인은 정말로 제가 고마운 모양이었습니다.
눈물을 계속 글썽이시더군요..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차라도 한잔 하시고 가세요.. " 그래서 저는 그 노인의 안내를 받아 그 집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차를 얻어먹으면서 그분에게 그 할아버지와 케익의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할아버지의 성함은 김귀남..이었습니다.
젊었던 시절에 노름으로 재산도 많이 탕신하셨던 모양인데,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로 김귀남 할아버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의 아내사랑은 대단했습니다.
이 노부부의 금슬이 얼마나 좋았던지 동네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흘러 할어버지와 할머니는 정신이 오락가락 할정도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두분은 언제나 마당의 작은 의자에 함께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하셨답니다.
할아버지께서 "옆집의 철수에미가 말이야..
" 하고 말씀하시면.. 할머니는 "네에.. 정말 날씨가 좋군요.."
그런식의 말도 안되는 대화였지만..
그래도 두분은 언제나 마당의 한구석을 차지하고는 그렇게 몇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누셨답니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아내가 죽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시는지 계속 마당에서 혼자 이야기를 하시더니만 어느날 무언가를 깨닳은듯.. 꺼이꺼이 서럽게 우셨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구슬펏던지 보는 사람마다 눈물을 흘렸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후로는 전혀 말씀을 안하시게 되었답니다.
그리고는 해마다 아내의 생일이 돌아오면 어디론가 사라지셔서 이렇게 케익을 사가지고 오시곤 하셨답니다.
작년부터는 할아버지가 서있기도 힘들만큼 몸이 쇠약해지셨는데..
그래서 아무일 없으리라고 생각했다가 오늘 이런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야기를 마치신 그 반백의 노인은 손수건으로 눈가에 맺힌 이슬을 닦아내었습니다.
"그럼.. 오늘이 어머님의 생신이시군요?"
"네에.. 그렇습니다. 제가 잘못생각했었지요..
아마도 아버님은 살아계시는 동안은 이렇게 해마다 케익을 사러 나가시겠지요..
" 저도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서려는데.. 마당 한쪽에 그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할아버지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옆에는 여기져기 부서진 케익과 그 위에 무수하게 꽃혀있는 촛불이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무엇을 보고 계시나요.. 아마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계신 거겠지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는 그 집을 걸어나왔습니다. 누군가 이 세상에 진실한 것은 없다..
라고 주장한다면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어느 시골마을의 김귀남 할아버지는 최금순 할머니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이 무너져도 진실한 것이다.. 라구요.. *^^* 퍼 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