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82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1995년, 하루미는 정보공학과 출신 몇 명을 채용했다. 각자에게 컴퓨터를 한 대씩 주고 인터넷으로 뭘 할 수 있는지 연구하게 했다. 그들은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다음해, ‘오피스 리틀독’이 처음으로 시작한 인터넷 관련사업은 홈페이지 제작이었다. 첫 단계로 자사 광고를 만들어 보았다. 그것이 신문 등에 실리게 되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기업과 개인한테서 홈페이지 제작에 관한 문의가 잇달았던 것이다. 아직 아무나 인터넷에 액세스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지만 불황 속에서 새로운 광고매체에 기대하는 분위기는 뜨거웠다. 홈페이지 제작주문이 잇달아 들어왔다.
그 후 몇 년 동안 ‘오피스 리틀독’은 재미나게 돈을 벌었다. 인터넷을 이용한 광고사업, 판매사업, 게임전송사업, 무엇이든 다 잘되었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하루미는 다음 사업전개를 구상했다. 회사 내에 컨설팅부문을 만들었다. 계기는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지인의 상담의뢰였다. 그 레스토랑은 매상이 오르지 않아 경영난에 빠져 있었다.
하루미는 중소기업 평가사 국가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전임스태프를 두고 검토에 들어갔다. 단지 광고만 해서는 안 되며 철저한 콘셉트 아래 메뉴와 인테리어를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p.383
컨설팅부에서 제안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리뉴얼한 이 레스토랑은 멋지게 대성공을 했다. 새로 시작한지 석 달이 지나자 예약을 하기 어려운 식당으로 변모했던 것이다.
컨설팅은 돈이 된다고 확신했다. 그렇지만 어중간해서는 안 된다. 단지 경영부진의 원인만 분석한다면 누구든 할 수 있다.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결과를 내야만 비로소 오래가는 사업이 된다. 하루미는 외부에서 우수한 인재를 모았다. 때로는 고객의 상품개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또 때로는 대대적인 인원삭감을 제안했다.
IT부문과 컨설팅부문, 이 두 가지를 주로 하여 ‘주식회사 리틀독’은 계속 성장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일이 아주 술술 잘 풀렸다. 많은 사람들한테 ‘무토 씨는 선견지명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분명 그런 면도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역시 나미야 잡화점의 편지가 없었더라면 그렇게까지 잘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은혜를 보답하려 마음먹고 있었다. 혼자 힘만으로는 오늘날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다.
은혜를 갚는다면 ‘환광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올해 들어 경영이 파탄날 것 같다는 소문을 들었다. 알아보니 사실이었다. 미나츠키 관장이 2003년에 돌아가시고 장남이 운송업을 하면서 환광원을 운영해 왔지만 운송업에서 막대한 적자가 나자 도저히 환광원을 지원해 줄 여유가 없는 모양이었다.
하루미는 즉시 연락했다. 현재의 원장은 미나츠키의 장남이지만 그건 표면상이고 실제로 운영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가리야 부원장이었다. 하루미는 부원장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말해주기 바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출자도 하겠다고 제안했다.
첫댓글 이제는
실력이 실력이 아니라,
광고가 실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