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탐험사 100장면 30 - 오뚝이, 파도 위에 서다 노를 저어 태평양을 건넌 제라드 다보빌(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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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3.18. 02:00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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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탐험사 100장면
오뚝이, 파도 위에 서다
노를 저어 태평양을 건넌 제라드 다보빌(1991년)
요약 제라르 다보빌은 1980년 보트를 타고 미국에서 프랑스까지 노를 저어 72일 만에 대서양을 건넜다. 또한 다보빌은 오뚝이를 본따 선체가 가볍고 바닥에 중심추를 고정시킨 섹터호를 만들었다. 배는 134일 동안 36번이나 뒤집혔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고 1만km의 거리를 노를 저어 건너는 데 성공했다.
오뚝이표 뱃사공
다보빌은 134일간 노를 저으며 서른여섯 번이나 보트와 함께 뒤집혔지만 끝내 태평양 만km를 횡단했다.
1991년 7월 11일 오전 6시. 일본 도쿄에서 동쪽으로 300km 떨어진 바닷가 조우시 항에서 보트 한 척이 태평양을 항해 나아갔다. 섹터(Sector)호. 이누이트가 사용하는 가죽 배 카약처럼 아주 작고 가벼운 이 250kg짜리 보트는, 선실 지붕과 벽을 둥그렇게 두른 데다 온통 흰색이어서 마치 누에고치 같았다.
고치 속의 누에는, 1980년 보트(캡틴쿡호, 길이 5.5m)를 타고 미국에서 프랑스까지 4,500km를 노를 저어 72일 만에 대서양을 건넌 적이 있는 프랑스인 제라드 다보빌(45)이었다. 그는 11년 만에 옛날보다 두 배가 넘게 멀고 험한 항해-일본 동해안에서 미국 서해안까지 약 만km-에 도전한 것이다. 이번 역시 그가 믿는 것은 자신의 강한 의지와, 노를 잘 젓는 억센 근육뿐이다.
이 항해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인 날씨는 출발할 때부터 다보빌에게 적대적이었다. 바다가 어찌나 거칠었던지 그는 이틀이 지나서도 일본 해안에서 11km밖에 벗어나지 못했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바람이 약간 잠잠해진 듯싶더니 밤 11시 30분께 엄청난 파도가 '고치'를 홀랑 뒤집어 버렸다. 그것은 그가 134일 동안 노를 저어 항해하며 서른여섯 번 뒤집힌 것 가운데 첫 번째로 겪은 일이었다.
그런데도 보트는 안전했다. 다보빌이 오뚝이를 본따 선체를 가볍게 하고 바닥에 중심추(밸러스트)를 고정시킨 것은, 그가 기대한 대로 놀라운 복원력을 발휘케 했다. 겨우 2분 만에 인간과 보트는 제자리로 돌아와 꼿꼿이 섰던 것이다. 배가 뒤집힐 때 다보빌은 선실 벽에 부딪쳤지만 다치지는 않았다. 다행히 선실 문을 닫아 고치 안으로 바닷물이 밀려들지는 못했다.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려 네 주일이나 미루다가 출발했는데도 날씨는 여전히 나빴다. 하늘에서는 열대 지방의 우기(雨期)인 양 쉴새없이 비를 뿌려댔다. 보트는 풍랑에 뒤집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다보빌은 의기 소침했다가 기운을 추스르기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상의 리듬을 잃지 않았다. 새벽 해가 떠오를 때마다 그는 어김없이 물을 끓여서 차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오전에는 1시간에 10분씩 쉬며 6시간 노를 저었다. 점심 2시간을 쉰 후 오후에도 6시간 저었다.
발 밑에 펼쳐 놓은 책을 읽으며 노를 젓느라 가끔 보트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도 했다. 저녁이면 떠다니는 닻에 배를 붙잡아매고는 상자 속 같은 선실로 들어가 몸을 뉘었다. 달빛이 바다를 밝게 비추고, 밤하늘이 온통 별들로 가득한 밤에는 밖으로 나와 다시 노를 잡고 지칠 때까지 동쪽으로 동쪽으로 저어 갔다.
한동안 평온하던 바다는 8월 24일이 되자 엄청난 풍랑에 휩싸였다. 다보빌의 누에고치는 그 날 아침 6시 30분부터 1시간 45분 간이나 엎치락 뒤치락했다. 8시가 넘어서야 바다는 잠잠해졌는데, 오후 3시가 되자 다시 포효하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공기를 들이마시듯이 바닷물을 삼켰다. 그는 자기 인생에 최후의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배는 쉴새없이 파도위에 들어올려졌다가 내리꽂히곤 했다.
"5분마다 4층 높이에서 떨어지거나 자동차 사고를 당하는 것 같았다. 몸이 붕 떠올라 빙글빙글 돌다가 곤두박질하며 선실 벽에 부딪칠 때마다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몇 번이나 그런 유혹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심한 풍랑을 겪고 나면 배의 진로는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태평양은 대서양처럼 배가 자주 지나다니지도 않았다. 다보빌은 가까스로 라디오를 써서 멀리 떨어진 배들로부터 위치를 확인했다.
선실에서 다보빌이 덮은 이불은 현창으로 스며든 바닷물에 절어 말이 아니었다. 그는 이불에 '소금의 늪'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9월 10일, 새들이 무리를 지어 동남쪽으로 날아갔다. 새들은 태풍을 피해 결사적으로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다보빌도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 애썼지만 그것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시속 3~4노트(약 5.5~7.4km). 사람의 근육으로 움직이는 배로는 도저히 태풍을 피할 수가 없었다. 9월 11일부터 이틀 동안 누에고치는 여섯 번이나 뒤집혔다. 파도 꼭대기에 들어올려진 배는 8m 높이에서 마치 서핑 보드처럼 물골로 곤두박질쳤다.
9월 26일 다보빌은 마침내 목표로 삼은 거리의 절반을 넘어섰다. 그 뒤로도 몇 차례나 더 뒤집혔다. 바로서기를 뒤풀이하다가 10월 29일 처음으로 캐나다 밴쿠버로 가는 배(러시아 화물선)를 만났다. 러시아 선원들은 다보빌을 난파선의 생존자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는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다. 그들은 다보빌을 반강제로 끌어올려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야 마지못해 보트로 돌려보냈다.
10월 30일, 미국 해안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런데 누에고치는 다보빌이 목표로 삼은 샌프란시스코보다 훨씬 북쪽인 오리건 주의 포틀랜드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은 날씨가 좋아도 파도가 5~6m 높이로 바닷가에 성벽처럼 솟구치는 곳이었다.
11월 9일, 다보빌은 일와코라는 조그만 항구 앞바다에 도달했다. 거기서 11월 21일까지 열이틀 동안 시속 130km가 넘는 강풍을 만나 무려 열아홉 번이나 뒤집혔다. 다보빌의 등은 엄청난 고통을 맛보았고, 뱃머리는 피로 물었다. 노는 부러졌고, 배의 거죽에 50cm나 균열이 생겼다. 그러다 마침내 11월 21일 낮 12시 15분 섹터호는 일와코 항에 들어섰다.
'파도의 기사(騎士)' 다보빌의 몸무게는 그가 134일가나 항해하는 사이 15kg이나 빠졌다. 그가 육지에 발을 디디고 처음 한 말은 "지옥이었어!"였다. 그 지옥은 애초에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나쁜 지옥이었다.
호텔에 들어 욕조에 앉자 다보빌은 비명을 질렀다. 그는 파리-다카르 자동차 경주에서 등을 다쳤는데 그뒤 낙하산 점프 때 척추가 탈구했다. 거기에 태평양 횡단에서 노를 수만 번 젓는 동안 엉덩이와 등의 근육이 한쪽으로 굽어버린 것이다.
▼ 관련 기록은 * 1983년 / 피터 버드 태평양을 노저어 횡단(샌프란시스코~호주, 14,480km, 294일) * 1969년 / 존 페어팩스 대서양을 노저어 횡단(동→서) * 1969년 / 톰 매클린 대서양을 노저어 횡단(서→동) * 1980년 / 제라드 다보빌 대서양을 노저어 최단 기록 횡단(72일) [네이버 지식백과] 오뚝이, 파도 위에 서다 - 노를 저어 태평양을 건넌 제라드 다보빌(1991년) (세계 탐험사 100장면, 2002.7.18., 이병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