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5일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조재형 신부
복음; 루카14,15-24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그때에 15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분께,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고 말하였다.16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17 그리고 잔치 시간이 되자 종을 보내어 초대받은 이들에게,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하고 전하게 하였다.18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첫째 사람은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고 그에게 말하였다.19 다른 사람은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였다.20 또 다른 사람은 ‘나는 방금 장가를 들 었소. 그러니 갈 수가 없다오.’ 하였다.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알렸다. 그러자 집주인이 노하여 종에게 일 렀다.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 너라.’22 얼마 뒤에 종이 ‘주인님, 분부하신 대로 하였습니다만 아직도 자리가 남았습니다.’ 하자,23 주인이 다시 종에게 일렀다.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 이다.”
장례식장에 목사님이 오신 적이 있습니다. 묘지에서 하관 예절에도 목사님이 오신 적이 있습니다. 가톨릭 예식에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하고 싶다고 해서 좋다고 했습니다. 고인의 가족 중에 교회 다니는 분이 있어서 그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목사님이 정성껏 기도해 주니, 고인께서도 기뻐했으리라 생각합니다. 33년 사제 생활하면서 아직 법당이나, 교회의 장례 예절을 다녀 본 적이 없었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분의 가족 중에 교회나 법당에서 장례 예절을 지키는 분이 없었을 수 있고, 그런 분이 있었다고 해도 제게 고인을 위해서 장례 예절에 함께 하도록 부탁하신 분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드디어 제게도 교회의 장례 예절에 함께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본당 사목 위원의 형님이 하느님의 품으로 갔는데, 독실한 교회 신자였습니다. 사목 위원도 몇 년 전까지 교회에서 큰 직책을 맡아서 봉사했다고 합니다. 형제님은 성당에서 교리를 배우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습니다. 제게 고인이 된 형을 위한 장례 예절에 함께 해 주기를 청하였고, 저는 기꺼이 가겠다고 했습니다. 어느 교회인지 물어보았는데 고인은 교회에서 장례 예배를 하지 않고, 장례식장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어째서 그런지 이유를 물었습니다. 형제님이 다니던 교회는 일반 신자는 교회에서 장례 예배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목사님이나, 장로님은 교회에서 장례 예배를 드리지만, 일반 신자는 장례식장에서 추모 예배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문화와 전통의 차이가 있겠지만 장례 예절은 가톨릭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그리고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걸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걸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찾아 주었다.” 고인께서 천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를 청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본당 신부로 있다가 보좌 신부의 직책을 받아들이는 신부님을 보았습니다. 오랜 사목 경험이 있기에 본당 신부를 도와서 기쁘게 사목하였습니다. 교우들도 신부님과 공동체를 이루며 잘 지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직책은 보좌 신부이지만인격이 보좌 신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제는 모두 직책과 관계없이 복음을 선포하는 사목자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직책과 직위로 인격과 인품을 구분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교구 사제들도 훨씬 풍요로운 사목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젊은 사제들에게 더 많은 사목의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자존심과 선입견을 버릴 수 있다면, 교만과 욕심을 버릴 수 있다면 상황에 반응하며 이끌리기보다는 상황을 예측하고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시면서 하느님의 뜻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종의 모습을 취하시면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의 순종과 겸손을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받지 못하는 사람을 안타까워하십니다. 현실에 안주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교만과 선입견으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받아들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상황에 이끌리기보다는 상황을 이해하고 이끌 수 있다면, 순종과 겸손으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을 따라갈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받을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미주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성당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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