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뚱이 애착을 바친다
근본 업장을 닦아 가는 과정에서 선생님께 꾸중도 듣고 매도 많이 맞았다.
대중들 앞에서 호되게 꾸중을 들을 때 자존심과 선배라는 권위가 무너져 내리는 아픔.
망신과 모욕을 당한다는 괴로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속에서 올라오는 불만과 설움이 교차되는 고통은 크기만 했다
그때마다 고통당한다는 그놈을 계속 주시하고 그곳에다 대고 미륵존 여래불 바치면.
법매 맞는 그놈이 내가 아닌 삼자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별로 부끄럽지도 괴롭지도 않아진다.아상이 뽀족 올라오는데 다 바치니 해탈이 되는 증거이다
무더운 여름날도 덥다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놈을 바치면 고통이 작아지면서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조금 더울 뿐이지 숨통이 터질 것 같은 짜증은 없다.
지두콩이란 신품종 콩은 키가 크고 잎이 넓고 무성하여 보통 콩보다 큰 편인데.
비가 온 뒷날, 지두콩밭 골 속에 쭈그리고 앉아 호미로 김을 매면 숨통이 막힌다.
바람 한 점 골로 들어오지 않는 데다,
땅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훅 올라오고 등에는 후덥지근하고 뜨거운 볕이 내리찍는다.
때는 가장 더운 1시경이다.이때 덮다는 한 생각을 계속 바치다 보면
머리와 얼굴에서 솟은 땀방울이 계속 흘러 등의 척추가 있는 골로 내려가는데,
땀방울이 굴러 피부에 닿는 촉감은 빗방울이 흘러가듯 시원하게 느껴진다
마음속에 진심과 열이 있으면 밖의 열과 더위를 먹고 못 견디는데.
마음속의 답답한 열을 올라 오는 대로 바치니 쌓이지 않아서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소사 생활 7년 6개월 동안. 더운 여름 12시에서 3시 사이에
한 번도 쉬지 않고 무거운 지게 지고 풀 베고 김매고 밭 갈고 리어카 끌며 더위를 조복 받았고.
덥다고 어리광 부리는 마음을 용서하지 않았다
한낮에도 일을 하는 마음이 바치는 정진의 연속 이었다.
땀에 젖은 옷이 몸에 철석 달라붙어 몸 전체가 끈끈하고 싫을 때에도 마음 바치는 공부는 또 계속된다.
아상이란 놈을 무섭게 다루는 공부였다
소 몸에서 발산하는 뜨거운 열을 온몸에 받으면서
소다리에 상체를. 소 배에 이마를 대고 젖을 짜는 순간은 너무나 더웠다.
네 마리째 젖을 짤 때쯤이면 손아귀와 팔에 힘이 다 빠지고 웃옷은 물을 뒤집어쓴 듯 땀투성이다.
게다가. 소가 여름 파리를 쫓느라 오줌똥이 묻은 더러운 꼬리로
얼굴과 눈을 후려칠 때는 구역질이 솟구쳐 아상과 싫은 마음을 가장 빠르게 일으켜 준다
얼굴에는 더러운 오물을 묻히고 몸에는 땀이 비오듯 흐르는 가운데,
소 발길질에 차일 새라 양 무릎 사이에 우유 양동이를 받쳐 들고
두손으로 젖을 짜는 그 긴장된 순간은 큰 공부 거리이다.
이렇게 일하며 정진에 정진을 더하는 마음은 오직 부처님- 하는 공경심 그 자체이다.
이 공경심에는 느끼는 자신도 있지 않다. 악조건은 공부하기 가장 좋은 환경이 된다
한번은 소똥을 지게로 너무 많이 져서 다리를 떨면서 겨우 일어나 중심을 잡았다
경사가 20도 되는 고개를 넘어 법당에서 1킬로쯤 떨어진 먼 밭으로 그 지게를 지고 가는데,
한 번도 쉬지 않고 가는 버릇이라 힘든 것을 바치며 그대로 지고 가자니 육신이 무거워서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한 걸음 한 걸음 혼신의 힘을 다해
'무겁다는 놈의 실체가 무엇이나?' 라고 반문하며 바치는 정진은 죽느냐 사느냐이다.
한 번도 아상에게 항복한 적은 없었다.
늘 몸뚱이 착着을 바쳐서 항복 받음에 내 마음은 실패가 없는 전쟁터와 같았다
밤중 먼 밭에 혼자서 지게로 농작물을 나르거나 컴컴한 깊은 산중을 내려오는데,
누가 뒤에서 잡아 당기는 것 같고 음기가 온몸을 엄습할 때는,
앞만 쳐다보고 걸어가면서 뒤를 돌아보고 싶은 기막힌 마음을 바쳤다.
무서운 마음이 강하게 올라올 때는 그 자리에 무릎을 끓고 장궤하여
30분씩 바쳐서 무서운 마음을 항복받고 편안해져야 내려왔다
겨울에는 산골의 얼음 위에서도 장궤하고 바쳤다.
'그래, 이 육신을 잡아 갈 테면 잡아가라' 는 마음으로 버티면서 그 마음을 집중적으로 바친 것이다.
무섭다는 마음을 정진으로 항복받고 내려올 때는 정말 기뻤다
스물셋에 혼자가 되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이대 독자인 데다가 하나뿐인 누이는 독일로 가버렸기 때문에 어머니 홀로 고향에 계셨던 것이다.
그 진한 혈육의 정. 업보의 정을 계속 바쳐서 항복받는 일은 닦는 집안에서는 소중한 것이다.
욕정은 부끄러운 것이기에 오히려 방심치 않고 잘 바쳐지나
홀 어머니라는. 자식과 부모라는 업연의 애착은 정말 닦기 힘들었다
이 업보를 해탈하고 나니 세상은 시원하고 조용하고 밝을 뿐이며.
의심은 풀어지고 아는 쪽으로 기울 어진다.
몸뚱이 애착을 항복받는 그 힘이 아는 쪽으로 집중되니 정진해서 알아지는 것은 으레되는 일이다
-김재웅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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