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한족 복식 褙자의 양식과 심미 :宋代汉族服饰褙子的样式与审美
출처: 대중문예 저자: 王超 중국 고고학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1. 褙자의 개념과 형태 褙자는 송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한인의 전통의상으로, '사물기원·의모대복부·배자'는 '실록'을 인용하여 대업 연간에 내관이 반팔을 많이 복용하고 당고조가 그 소매를 줄여 '반팔'이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후에 '배자'라고 합니다.
도출의 반팔은 褙자의 전신입니다. 褙직깃 대섶, 사깃 대섶, 반깃 대섶 등의 양식이 있는데, 직깃 대섶이 가장 흔하며, 좁은 옷 슬림, 비단 장식으로 가장자리를 만들고, 허리는 직선형으로 양쪽 겨드랑이를 트고, 소매는 폭이 좁고 짧으며, 옷의 길이는 반신(半身), 무릎까지 닿는 길이(过), 무릎까지 닿는 길이(至), 족히 긴 옷자락은 좁고 겨드랑이 밑단은 높게 트여 있어 옷의 앞과 뒤가 맞지 않으며 겨드랑이나 등뒤에 띠가 늘어져 있지만 묶이지 않습니다.입을 때 옷자락이 열리고 속옷이 드러나는 것을 '불제금'이라고 합니다.
1.남성 褙자의 기본형제와 착용방식 송나라 남자중 상나라에서 제왕까지 상나라와 상나라 의나라까지 모두 褙자를 입지만 일상 연거의 평상복이나 단품으로만 예복 안에 입을 수 있습니다.
褙자는 겨드랑이와 등뒤에 띠를 매지만 매듭을 짓지 않고 휘날리는 장식 역할만 합니다. 주로 고대 중 단교대의 형식을 모방하여 "좋은 옛것을 보존합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송의 남성 褙자는 깊은 옷차림과 유사한 방식으로 소매 길이가 팔꿈치까지 오는 옷으로, 그 형태는 비스듬한 옷깃과 디스크칼라 옷차림의 2식, 엉덩이가 결여되어 있으며, 입고 있을 때는 셔츠 밖으로 덮고 허리춤은 포백으로 조여야 하며, '반팔'의 옷차림과 비슷하며 일반적으로 그림 1과 같이 일상적인 평상복입니다.
▲ 송조길--문회도(국지)
2.여성 褙의 기본 형태 및 착용 방식 여성 褙의 구체적인 형태는 직선 옷깃, 직선 옷자락 스타일, 긴 소매의 긴 옷, 단추 고리가 없는 옷, 양 옷자락의 차이, 긴 겨드랑이 슬릿, 앞쪽 또는 뒤쪽에 밴드가 있지만 매듭을 짓지 않고 자연스럽게 늘어뜨리지 않으며 소매는 폭이 좁습니다.
옷자락, 소매 등에 무늬로 테두리를 두르고, 옷깃과 앞자락에 그려진 테두리를 '넥마'라고 합니다.송나라 시장에서 기성 넥타이를 구입할 수 있으며, 특히 봄 복숭아, 여름 연꽃, 가을 국화, 겨울 매화 등 더 많은 사계절 꽃 패턴을 모아 만든 '해풍경' 문양의 넥타이가 가장 특징적입니다.
송나라의 여자 의복은 청신하고 우아한 스타일로, 의복은 좁고 길쭉하며 기발한 것이 아름다우며, 위로는 황후, 아래로는 노비 시종, 광대까지 褙자를 입었고, 여성들은 보통 褙자를 상복(공복)이나 대례복에 버금가는 상복(常礼服)으로 입었습니다.褙자의 모양이 좁고 작기 때문에 귀족 여성들은 褙자를 큰 소매 셔츠에 많이 입고, 일반 여성들은 褙자를 겉옷으로 입고, 입을 때 褙자의 자락이 펄럭이며 속옷을 드러내는 것을 '부제금(不制金)'이라고 합니다.
▲ 푸젠성 푸저우 남종 황승묘 출토 모란문라 레이스가 달린 좁은 소매 褙자, 褙자가 탄생한 역사적 배경 송나라는 통일된 왕조를 세웠지만 당나라가 국력, 군사력 강성, 강역 판도 넓음, 번방 속국이 조공한 것과 달리 북방의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 당항족이 세운 서하 등 소수민족 정권은 약체에서 강대해져 중원의 넓고 풍성한 강역을 넘보고 있어 북방의 소수민족 정권과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송나라 사람들은 외적을 물리칠 수 없었고 걱정 없이 국방의 발전을 소홀히 하고 경제와 문화의 발전에 중점을 두어 문인 지상주의, 문인 통치 국면을 형성했습니다. 엄청난 군사적 압박 앞에서 송나라의 관청은 대항할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저 양보만 하고, 땅을 할애하여 배상하고, 주권을 잃고, 나라를 욕되게 하며, 짧은 편안의 안녕을 얻었고, 조정은 오히려 자신의 정권 지위를 걱정했습니다.
송나라는 선인들의 치국리정(治國理政)의 교훈을 총결산하고, 특히 대내적으로 정권을 공고히 하는 것을 특히 중시하였으며, 특히 전통문화에서 예제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대내적으로는 봉건윤리강상의 사상으로 민중을 통제하고 자신의 정권을 공고히 하는 언무수문(武武修文)의 책략을 취하여, 공맹의 유학도통을 계승하는 정주리학(程朱理學)과 회요순지전(恢夏之典)과 총하상지례(總夏商之禮), 우주한당(为目的漢唐之舊)의 옛것을 목적으로 봉건통치(仿)를 수호하는
▲ 송일명 《가락도》(국지) 3. 송나라의 문화적 배경에서 의복의 심미학은 청주리학의 '존천리, 멸인욕'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아 송나라의 전체적인 예술 스타일은 개인의 개성과 욕망을 구속하는 것을 강조하며, 강한 금욕적 색채를 띠고 있으며, 자기 욕망을 억제하고 도덕 수양을 중시하는 풍조는 복식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전체적인 스타일은 경건하고 질박한 경향을 보였습니다.
송나라의 여성들은 봉건예교의 속박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당나라의 여성들은 사냥, 남장을 하고, 호무를 배우고, 가슴을 드러내고 등을 드러내는 개방적인 것에 비해, 송나라의 여성들은 봉건예교의 속박을 너무 많이 받아 사회적 지위가 없고, 남권 사회에 종속되어 있으며, 삼종사덕을 준수하고, 남성의 통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여성의 심미는 가늘고 약함을 미로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사조는 사람들의 생활 태도와 미적 흥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는 당나라의 자유분방하고 나풀거리는 문화 스타일, 가슴을 드러내고 팔을 드러내는 자유분방함, 금실과 금실의 호사스러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당나라 시대의 '유행과 거리가 멀고 뺨에 붉은 얼굴과 가루가 없습니다.검은 연고는 입술에 진흙을 묻히고 눈썹은 낮은 팔자로 그립니다.미녀는 흑백으로 제 모습을 잃었고, 마치 슬픔을 머금은 듯 화장했습니다.
구레나룻이 없는 둥근 머리 모양, 붉고 흐트러지지 않는 황토 얼굴 모양'의 장식, '눈썹은 훤초색을 얻고 붉은 치마는 석류꽃을 질투한다', '느린 속라 스커트는 가슴을 반쯤 드러낸다'는 유행, 개방, 럭셔리한 장식에 비해 송나라의 의상 시스템은 전통, 소박한 분위기로 돌아가 검소함을 중시하고 '청결해야 하며 남달라'는 송자기의 섬세하고 정숙한 분위기를 형성하며 옷 스타일도 좁고 내향적이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
4. 결론 송나라는 사상적으로 봉건 윤리를 강조하여 여성들이 봉건 예교에 너무 많이 속박되고 사회적 지위가 없으며 남권 사회에 종속되어 있으며 삼종사덕을 준수하고 남성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송나라의 미학은 보수적인 합리성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예술적으로는 영적 함축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했으며 전통과 소박한 풍조로 돌아가기 위해 의상에 반영되었으며 '청결해야 하며 남들과 달라서는 안 됩니다'라는 소박한 스타일을 옹호했습니다.
褙자는 이러한 미적 취향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전통의상으로 몸에 꼭 맞고 우아하며 늘씬하고 슬림하며 먹기 편하고 움직이기 편한 스타일로 인기가 높으며 그 모양은 여자를 더욱 연약하게 보이게 하여 송나라의 날씬하고 가냘프고 여린 미적 취향에 부합합니다.
따라서 褙자는 송나라의 보수적 이성의 아름다움의 구현이며, 褙자의 출현은 당시 사회가 전통으로 돌아가고 윤리를 추구하는 사회적 배경과 일치합니다.
분류:고고학 연구
송나라 한족 복장 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