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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여자·아이 등 ‘타자’에 대한 지식 해부…일상에 내재한 권력 비판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프랑스 사상가 미셸 푸코는 일상 속 권력을 해부할 이론적 무기를 제공하고, 정보사회의 진전이 가져온 디스토피아를 예견했다. 그는 또 타자를 새롭게 발견하게 함으로써 소수자 인권과 정치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사상가의 진정한 힘은 뭘까. 그것은 인간 사유의 틀을 바꾸는 데 있다. 예를 들어 20세기 전반기 사상가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들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막스 베버가 손꼽힌다. 프로이트를 통해 인류는 무의식을 발견하게 됐고, 베버를 통해 합리성을 인식하게 됐다. 20세기 후반기 사상가로 가장 주목받은 이들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1926~1984)와 위르겐 하버마스라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다. 푸코를 통해 타자란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됐고, 하버마스를 통해 소통하는 주체를 성찰하게 됐다.
푸코는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동시에 사회학자다. 푸코의 사상은 한마디로 ‘타자’의 사회이론이다. 타자란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정상인과 비정상인, 서구인과 비서구인 등 이제까지 철학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배제돼 온 후자의 그룹을 말한다. 타자의 사회이론이란 이러한 타자를 다뤄온 지식들을 비판적으로 해부하는 학문적 시도를 뜻한다.
타자를 연구하기 위해 푸코가 활용한 방법론은 ‘지식의 고고학’과 ‘권력의 계보학’이다. 고고학이 특정한 시대에서의 담론의 형성과 시대적 변화에 따른 그 담론의 전환을 다루는 방법을 말한다면, 계보학은 이러한 형성 및 전환의 조건 가운데 담론(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탐구하는 방법을 지칭한다. 고고학을 방법론으로 하여 다룬 저작들이 <광기의 역사> <말과 사물>이라면, 계보학을 방법론으로 하여 다룬 저작들이 <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1975), <성의 역사 1>이다.
■감시사회로서의 현대사회 분석
‘감옥의 역사’라는 부제가 달린 <감시와 처벌>은 푸코의 저작들 중 사회학적 함의가 가장 두드러진 책이다. 여기서 사회학적이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푸코가 권력의 계보학을 본격적으로 분석했다는 게 하나라면, 현대 감시사회의 기원을 정밀하게 추적하려 했다는 게 다른 하나다.
푸코는 권력의 미시적 차원을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권력은 사회 제도와 관련된 전략 및 효과이며, 미시적 수준에서 진행되는 관계이자 상호작용이다. 권력이 행사되기 위해선 인간에 대한 새로운 지식(담론)이 요구되고, 이 인간과학 지식이 권력의 미시적 작동에 정당성을 제공한다는 것이 그의 통찰이다.
1960년대 지식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에서 나아가 지식이 권력의 생산·재생산에 기여하는 바를 밝히는 계보학적 탐구를 시도한 책이 바로 <감시와 처벌>이다. 이 저작은 감옥을 사례로 근대 인간과학 지식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규율과 훈련에 기반한 일상생활이 어떻게 조직되는지, 결국 지배에 순종하는 신체를 가진 근대적 ‘개인’이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생동감 있게 분석한다.
‘파놉티콘(panopticon·일망감시장치)’은 권력의 미시적 작동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이 고안한 파놉티콘이 갖는 특징은, 감금된 사람의 경우 감시하는 사람을 볼 수 없지만 감시자는 감금자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푸코가 주목한 것은 파놉티콘 아래서 감금자의 경우 감시자의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감시당하고 있다는 불안과 공포를 겪게 되고, 결국 자신을 스스로 감시하게 하는 권력의 효과가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감옥체제야말로 근대사회가 갖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는 게 푸코의 주장이다. “감옥이 공장이나 학교, 병영이나 병원과 흡사하고, 이러한 모든 기관이 감옥과 닮은 것이라 해서 무엇이 놀라운 일이겠는가”라는 푸코의 진술은 <감시와 처벌>이 감시사회로서의 현대사회에 대한 분석을 겨냥하고 있음을 선명히 보여준다.
미셸 푸코의 대표 저작 <감시와 처벌>.
■푸코가 현대 사상에 미친 영향
푸코가 현대 사상에 미친 영향은 넓고 깊다. 앤서니 기든스는 <현대 사회학>에서 현대사회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주저없이 푸코와 하버마스를 들었다. 하버마스가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에서 푸코에게만 두 챕터를 할애한 것은 푸코 사상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증거하는 징표다.
<감시와 처벌>을 포함해 푸코가 미친 사상적 영향은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푸코는 주체의 새로운 이론화를 시도했다. 그에게 주체란 스스로 창조한다기보다는 담론에 의해 구성되는 존재다. 그는 규율되고 훈련되는 신체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선사했다.
둘째, 푸코는 계몽주의의 그늘을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은 문학과 예술의 포스트모더니즘에 심원한 영향을 미쳤다. 셋째, 푸코는 일상 속 권력을 해부할 이론적 무기를 제공했다. 가부장주의 등 생활세계에 내재한 권력에 대한 비판은 푸코를 통해 더욱 정교해지고 풍부해졌다.
넷째, 푸코는 정보사회 연구에 날카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파놉티콘에 대한 푸코의 통찰은 정보사회의 진전이 가져온 디스토피아를 예견하게 했다.
다섯째, 푸코는 타자를 새롭게 발견하게 함으로써 소수자 인권과 정치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여성, 외국인 노동자, 동성애자 등의 권리를 요구하는 다양한 신사회운동들은 푸코 사상으로부터 이론적 자원을 가져왔다.
19세기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점에서 푸코는 아마도 유일한 20세기 철학자일 것이라고 말한 이는 질 들뢰즈였다. 푸코는 20세기 사상가였던 동시에 21세기 사상가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10여년이 지난 현재, 인류가 대면하고 있는 난민 문제부터 정보사회의 그늘에 이르기까지 주요 사회 현상을 올바로 이해하고 적절한 해법을 강구하기 위해선 푸코 사상만큼 날카롭고 유용한 문제틀을 찾기 어렵다. 오늘날 대다수 나라에서 대학에 입학한 젊은이들에게 푸코의 책을 읽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고안한 파놉티콘의 설계도.
■한국어판 저작은
<감시와 처벌>은 철학자 이광래 강원대 명예교수와 불문학자 오생근 서울대 명예교수에 의해 각각 우리말로 옮겨졌다. <감시와 처벌>을 읽기에 앞서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취임 강연인 <담론의 질서>(이정우 옮김)와 콜린 고든이 편집한 푸코 대담집인 <권력과 지식>(홍성민 옮김)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푸코와 한국사회 - 1990년대 ‘문화의 시대’ 포스트모더니즘 기초로 뜨거운 관심
우리 사회에서 푸코 사상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민주화 시대였다. 당시 대학원생들을 중심으로 젊은 철학·사회학·정치학 연구자들이 푸코의 사회이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경험을 중시하는 영미식 사유와 관념을 중시하는 독일식 사유에 맞서 구조·담론·권력·신체·섹슈얼리티 등을 주목하고 새롭게 이론화하는 푸코식 사유는 아카데미 영역이 제공할 수 없는 새로운 지적 자극과 상상력을 선사했다.
1989년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푸코 사상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당시 푸코의 영향을 잘 보여주는 것이 시회운동 담론이었다. 1990년대 우리 사회를 이끈 다양한 시민운동들은 그람시, 푸코, 하버마스의 사상으로부터 이론적 자원을 빌려 왔다. 푸코의 사회이론은 특히 여성운동, 인권운동, 소수자운동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푸코 사상의 국내 수용에 대해선 지식사회의 변화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980년대에 대학원을 다녔던 젊은 연구자들이 공부를 마치고 대학에 자리를 잡으면서 각종 교양 과정에서 푸코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도 1990년대였다.
예를 들어 사회학의 경우 가장 널리 읽힌 개론서인 기든스의 <현대 사회학>은 현대사회를 대표하는 두 명의 사상가들로 푸코와 하버마스를 소개하는데, 이러한 텍스트들을 통해 푸코는 대학 등 지식사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주류 담론으로 안착했다.
푸코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았던 시기는 1990년대 초반부터 1997년 외환위기까지 진행된 이른바 ‘문화의 시대’였다. 당시 포스트모더니즘을 둘러싼 논쟁들이 진행되면서 푸코와 자크 데리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적 기초를 제공한 사상가들로 소개되고 토론됐다. 우리 사회에서 푸코 사상의 전성시대는 바로 이 시기였다. <광기의 역사>에서 <성의 역사> 1·2·3에 이르기까지 푸코의 주요 저작들이 모두 우리말로 옮겨졌고, 지식사회 안팎에서 상당한 관심을 모았다.
흥미로운 것은 푸코에 대한 이러한 높은 관심이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1980년대 이후 푸코가 그람시와 함께 기성체제에 맞서는 대항 담론의 구심을 이뤘다. ‘푸코 열풍’은 가히 지구적 현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