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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를 제대로 평가하자!
어제(6월23일)한겨레신문에 권영길의 양심고백을 비판하려든
참에 6월24일 한겨레신문 논설란에서 박창식 논객은 권영길을
객관적 판단이 전혀 없이 권의 아름다운 백의종군이라고
극구찬양일색이다.
우리는 민주노동당 이정희대표가 지적한바와 같이 그분의
과거사는 따지지
않고 현제를 갖이고 판단한다는 말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6월23일 한겨레신문 2 폐이지에서 민주노동당에
백의종군한다고 하면서
그동안 당대표로 있으면서 과오로 민주노당을 분열시키었다고
그 책임을 통감하며,
상당히 감동적이며, 비장한 심정을 토로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권의 만주당과 국민참여당에
대한 사적 감정을 토로하면서, 한편 조승수와 노희찬 도당의
비합리적이며, 야권단일후보
선정을 파괴하려는 제안으로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통합이
불가능한 제안으로 양당통합이
지지부진하자, 이정희 대표의 잠재력이 강한 국민참여당과 통합을
방해하려는 수작으로
6월23일 한겨레 신문에 민주당과 국민참여당과의 과거사를 왜곡하여
이런 거짓 양심선언을
하게된겄이다. 권의 야심은 민주노당과 국민참여당, 민주당과의 단일후보
선정을 반대할여고
이런 더러운 수작을 버리고 있는겄이다. 권영길에게 솔직한 질문을 하겠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만 의 통합으로 내년 총선에서 원내 다수당이 되고, 대선에서
미제의 앞잡이
MB도당으로부터 정권을 찾아올 수 있는가?
내년총선과 대선에서 패배하면 그 결과는 남북평화통일은 고사하고
米帝의 북합군사
산업만 배불리게 하는 전쟁 발발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권영길의 과거사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권은 70년대 후반
서울신문 기자로
있다가, 서울신문 파리특파원으로
있다가 내외정세 밝아 재빨리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
서울신문이
어떤 곳인가? 박정희 시대부터 소련의 타스통신과 같은 정부의 나팔수로
정부대변인
역할을 한곳이 바로 서울신문이다.
90년대 권영길의 대여투쟁사를 보면 참으로 눈부시며, 특히 YS말기
즉 1996년 가을경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면서 대여투쟁으로 명동성당에 각국 매스컴에서
수십명의 외신기자와
인터뷰로 명동성당이 매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족벌언론들은 연일
성역이 어디 있느야고
명동에 경찰투입을 선동하였다. YS는 명동에 전경을 투입하려고 하였으나,
93년 봄경 시위자가
전경에 몰려 명동성당에서 농성하자, 내무장관 김태오(대구출신)가
전경진입에 주저하자,
무모한 얼간이 YS는 내가 문민정부인데, 서역이 어디있느야고 명동에
전경 진입시키어,
농성중인 수십명의 시위자를 체포하자, 명동성당 성직자는 물론, 전국의
정의 구현신부님
수백명과 각계각층에서 항의소동이 버러지고, 1996년 4월 총선에서 김태오가
그 후유증으로
자기 터 밭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YS가 족벌언론의
전경투입
독촉을 묵살하게 된겄이다.
1997년 12월 18일 대선은 1948년 정부수립 후 49년 만에 처음 맞이하는
정권교체의
유일한 기회인데, 권영일은 많은 인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마하였지만
결과는 30만 표
상회로 큰 수모를 당하지 않았던가? 만일 권영길 후보가 50여만 표 만 더
갖어와도 정권교체가
무산될지 모르는 위기상황이었다.
그런데 권영일은 1998년 2월25일 DJ국민정부가 드러와 체 백일도 않되어
개혁미진이라고
종묘공원에서 밤에 여성교통경찰관(무장한 전경을 다 여순경으로 교체하고
교통정리만 함)을
무력으로 물리치어 국민정부는 부득이 남자 경찰관으로 교체하고 있었는데,
98년 6월하순경
밤에 민주노총 주최로 개혁미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화영병과 쇄 파이프를
휘들르며 마치
프로레타리아 혁명을 방불케하는 폭력집회로 그날 밤 집회로 경찰 수십명과
파업자 수십명이
부상당하고 국가인권위원회소속 5급 공무원은 화영병과 쇠파이프 운반죄로
구속당하고
파면당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그후 심심하면 지하철 노조 파업이 국민정부 시절 두 번으로
우리
서민층이
얼마나 피해를 보았는지 권영길 도당은 알기나 하는가? 자연히 원성이 민주노총으로
가게 되었다.
우리 평화를 사랑하는 전체민중은 어린 국민정부를 육성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그런데
권영일
도당은 눈만 뜨면 DJ정부를 못살게 굴지 않았던가? 하루도 빼지 않고 파업에
폭력집회로
우리민중의
원성을 사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DJ대통령은 1988년 10월 민주노총을
합법화시키고
연이어 교원노조도 합법화시키지 않았던가?
그후 권영길은 2000년 민주노동당을 창당하고 당대표로 되고 민주노총위원장은
단병호에 양보하였다.
2000년 DJ대통령이 영광스럽게도 노별평화상 수상자로 발표되자 米帝의 앞잡이를
제외하고 온민중이
열광하여 환영으로 DJ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2001년 DJ대통령이 수상 차
오슬로 수여식장에
드러가려는 입구에서 단병오 도당 약 30여명이 노벨상 주지말라는 표말들고 DJ입장을
가로막는 비극이
버리젔다. 만일 민주언론 즉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이 이런 역적질을 즉시 보도하였다면
2004년 총선에서
권영길이가 어떻게 창원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이 가능하고 단병오가 어떻게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민주노동당의 오늘 날처럼 초란한 당이 아니고 최소한 원내 교섭단체인
20석 이상을
찾이하고 2017년 대선승리도 바라볼 수 있었지 않은가? 권영일의 오류가 어디 이뿐인가?
권영길은 단병오
도당의 오슬로에서 수십명의 방해공작을 알지 못했단 말인가? 몰을일이 있었겠는가? 알면서
왜 이런 역적질을 중단시키지 않았단 말인가? 그리고 호화판 여비는 어디서 지출하였단 말인가?
민노당이나 민주노총 금고에서는 나올 수 없는데, 그렇다면 어디서 호화판 여비가 나왔단 말인가?
오슬로에는 한나라당원과 조선일보 편집국장도 있었다고 하는데, 언론의 입 틀어막는데 얼마나
돈을 썼단 말인가? 권영일의 파행은 이겄뿐만 아니다. 2002년 12월 19일 대선 3자 TV토론에서
권후보는 노무현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공격할 리듬을 번번이 차단하고 이후보와 합세하여 노후보를
공격하여 시청자의 눈살을 찌프르게 하지 않았던가?
많은 민중이 민주노동당 집권이 아직 일으니, 양자 즉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 양자대결에 맡기고 후보
사퇴를 권유하였지만, 이에 불응하고 결과는 고작 90여만표로, 만일 권후보가 조금만 더 갖어 갔어도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하지 않았던가? 2003년 5월 7일경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는 반동분자 두목인 부시대통령과
정상회담차 출발하자마자 즉 노무현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출발하자마자 화물노조가 전국적으로 파업에
돌입한겄은 노대통령 등 뒤에서 비수를 찍는일이며, 부시와의 협상력을 약화시킬 뿐이다. 2004년 3월12일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3월 13일 광화문 광장에서 노태통령 탄핵 반대 촛불집회가
절정에 오른 수많은 군중이 모인 촛불 집회광자에서 권영길은 탁핵반대 연설이 아니라 오히려 노대통령을
수구 반동으로 매도하여 참가군중의 눈살을 지프리게 하지 않았던가? 수구란 소수당이라 개혁 미진이라
반항할 구실이 없지만, 반동이란 말은 매판자본도 이닌데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러 식자들의 말이다.
2006년 이라크 파병 문제는 미제의 압력으로 부득이 파병한겄이며, 2007년 7월10일
비정규직을 2010년
7월10일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경정한것을 갖이고 권영길 도당은 이를 반대하였으나
작년 7워10일
MB도당은 이를 위반하지 않았던가? 앞으로 사기당한 정권 찾아오기위해 이런 반동짓을
다 잊고 야권단일
후보론이 이정희 미노당 대표의 의중이며, 민주당과 국민참여당도 이에 찬성하고 있다.
5월 달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당대당 통합 협상에서 조승수는 양당간에 대통령후보가 결정되면 끝까지
완주한다는 난제로 이정희 대표는 차라리 잠재력이 있는 국민참여당과 통합하면, 민주당도
조건없이 이에 합류한다는 확률이 높아서, 참여당과 당대당 통합려는 기미를 보자, 이에 쐬기를
박기위해 이런 헡은 수작을 부리고 있지 않아 의심이 가고도 남을 지경이다.
권영길의 그동안 원내 투쟁사를 보면 MB도당 용병 의심가는
수작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많은 논객이나 식자 즉 교수들이 나와 같은 판단을 하고 있지만
민형사상 피소가
두렵기 때문에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권영길이가 양심이 있다면 왜 작년 6.2지자체선거에서
노회창,
조승수 도당이 MB도당으로부터 30억원을 받아 서울을 위시하여 광역단체장 9곳에 등록하고
기초단체장
후보 등록에 20억원이 들었는데, 당원 수십명의 자니지 않는 거러지 당에서 어떻게 천문학적
후보등록비가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민주노동당은 역사가 있고 당원수만 13만을 넘어 그런 자력은
충분히 있다. 반동분자가 우굴 거리는 진보신당 제처 놓고 민노당은 국민참여당과 당대 통합하면 시저지
효과가 커서, 내년 총선에서 양당 능히 교섭단체 자격인 20석을 상회하리라 본다. 선은 서둘러라!
The sooner! The better!
최문순강원도지사초청강연 및 금강산관광재재 긴급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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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니 이정도의 글을 쓸줄 아시는 분이 맞춤법하나 제대로 모르시오? 어찌 소중한 다른 님들의 이름을 그리도 무심히 지나치시오? 시간이란 무정한 것이오... 뭣하나 사사론 맘으로 되는 것이 있겠오? 모두 다 힘을 합해야 하오. 그것이 진정으로 대한민국 바로 서는 것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