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삼국지를 통해서 李文烈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20대 중반의 한 해를 마무리 짓는 그해 마지막 날 나는 설악산으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내 손에 들려진 건 이 문열의 '삼국지'와 '한국인의 리더십',, 몇권의 책이었다.
그 이후 나는 인생에 스승이 필요할 때면 책장속의 삼국지를 꺼내 읽었다.
20대 후반,, 20대 중반과 같은 그 날 나는 연래행사 처럼 동해안으로 향하면서 이번에는 김 주영의 화척이라는 소설을 가방에 넣었다. 그해 1월은 거의 화척에 파묻혀 살다시피했다. 심지어 좋은 내용은 노트에 정성스럽게 정리를 하여 되새셔 보곤 하였었다.
내 20대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책은 아무래도 이 두소설과, 조정래의 태백산맥,홍명희의 임꺽정,, 7삭둥이 한명회 등이 아닌가싶다.
이문열과 김주영 한국의 문단을 대표하는 두 거봉이 정치적으로 보수와 혁신을 선택하여 17대 총선에 나설 선수를 선발하는 작업에 관여하였다.
이제 그 임무를 먼저 완수하고 짧은 순간을 회고하는 조선일보에 실린 이문열씨의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편견없이 봐주시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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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당 지역구 공천 작업이 사실상 완료 단계이다. 작가로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공천 심사에 참여했던 이문열(李文烈)씨와 김주영(金周榮)씨의 특별 기고를 차례로 싣는다.
지난 15일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들은 당 상임운영위원회의 결정으로 전원 해임되었다. 호남지역 여남은 곳이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지역구 공천이 끝난 시점이었다. 그리고 이튿날 만찬을 끝으로 우리 외부 심사위원 여덟 명은 대략 승선 80일 만에 한나라호로부터 하선(下船)을 요청받았다. 벌써 닷새 전의 일이고, 그 사이 취했다 깨어난 밤도 몇 번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내 의식은 치열한 해전장(海戰場)을 떠돌고 있는 듯하다.
작년 연말 처음 심사를 위촉받을 때 나는 비록 만신창이가 되기는 해도 유서깊은 거함(巨艦) 한나라호에 오른 줄 알았다. 그러나 한 달 뒤쯤 보니, 내가 탄 것은 언론과 검찰의 십자포화를 피해 물밑으로 숨은 구식 잠수함이었다. 정부 여당의 연합함대는 언론과 검찰이라는 강력한 구축함과 순양함 외에 공권력의 자잘한 어뢰정들을 수없이 띄워 물속 깊이 숨은 한나라호를 추적하고 있었다.
그런데 1주일 전 그 한나라호가 다른 야당과 연합한 기습공격으로 정부 여당 연합함대의 기함(旗艦)을 격침하고 말았다. 오만 또는 방심으로 상대를 얕보다 크게 상처 입은 함대사령관은 부근을 항해하던 헌재(헌법재판소)호로 옮겨갔으나 그 안위(安危)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기함의 침몰과 함대사령관의 부상에 격분한 연합함대의 호위함과 소해정(掃海艇)들은 얼른 시민단체의 깃발로 바꿔달고, 뜻 아니한 성공에 멍해진 한나라호에 불세례를 퍼붓고…. 그게 한나라호에서 내릴 때의 내 의식에 비친 여의도 근해(近海)의 상황이었다.
중국의 전통적 문장론은, 하늘이 우주만물을 통해 자신의 뜻을 드러낸 것을 천문(天文)이라 하고, 그 천문을 사람이 풀어쓴 것을 인문(人文)이라고 한다. 또 인문은 크게 경(經)과 사(史)로 나뉘는데, 정치는 경의 실천이요, 문학 특히 소설은 사의 보유(補遺)쯤으로 치는 듯하다. 따라서 한낱 소설가가 정치에서도 핵심적인 기능이 되는 인재등용의 현대적 양식인 국회의원 입후보 공천에 간섭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분에 넘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 문예이론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소설의 정의 중 하나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의 본질이 사람의 이야기라면, 사람의 삶에 관련 있는 모든 분야는 당연히 소설가의 관심을 끌게 된다. 특히 한국처럼 정치가 삶의 전 국면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나라에서 정치는 소설가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분야가 된다.
처음 한나라당의 공천심사위원직을 수락할 때만 해도 나는 나름대로 분명한 정치적 입장과 견해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화살 만드는 사람과 갑옷 만드는 사람의 시비에 부질없이 끼어들었던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화살 만드는 사람이 모질어서 사람을 다치게 하지 못할까 걱정하고, 갑옷 만드는 사람은 어질어서 사람이 다칠까 걱정하는 것은 아니다. 각기 맡은 일이 달라서일 뿐이다.
다만 원고지 앞으로 돌아와 앉은 뒤에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탄핵 이후의 정국에 나타난 두 가지 새로운 현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 불길한 조짐으로만 어른거렸던 개인숭배현상과 반(反)이성주의다.
개인숭배는 왕조시대의 유물이요, 현대사회에서는 김일성 체제 아래의 북한에서나 볼 수 있었던 괴이쩍은 현상이었다. 아무개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정치적 태도를 옳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정치적 태도가 옳기 때문에 아무개를 사랑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사람들 중에는 오직 ‘노사모’이기 때문에 탄핵을 반대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이들이 자주 보인다.
젊은 세대 일부의 반(反)이성주의도 우리 사회에 진작부터 어른거리던 불길한 조짐이었다. 자신의 주장을 남에게 강요하기 위해 전제부터 자신에게 유리하게 뒤집어엎고 시작하는 무논리(無論理)나 무분별한 용어 사용은 이미 반이성주의로 규정하기조차 과분할 만큼 도를 넘겼다. 국회가 헌법에 규정한 바에 따라 행사한 탄핵소추권을 버젓이 ‘국회쿠데타’라 이름하고, 검찰·경찰을 비롯한 공권력과 방송에다 신문의 태반까지 장악한 대통령은 ‘약자’라고 우기며, 불법 체류 파키스탄 노동자까지 걱정하면서도 북한 인권을 따지면 ‘반통일세력’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하지만 80일의 외유(外遊)를 끝내고 책상 앞으로 돌아온 지금까지 연연해하며 뒤돌아볼 마음은 전혀 없다. 지금 내 마음은 자기연민으로 무겁고, 밀린 원고는 한길이나 쌓였다. 거기다가 유황불이 비처럼 내리고 벼락이 대낮처럼 하늘을 밝히고 있는 듯한 정쟁(政爭)의 열기는 돌아보는 내 눈을 멀게 하고 마침내는 나를 소금 기둥으로 구워놓을지도 모른다.
첫댓글 잘 읽었읍니다. 김주영씨의 기고도 올려 주신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