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들에게
송다은
전근대 인류 사회에서 일반 여성이 가질 수 있었던 위치는 성녀, 하녀, 마녀에 국한되었다. 이 중에서 두 가지 속성이 서로 결부되어 나타나기도 했고, 뮤즈는 어느 계층에나 속할 수 있었고, 각 속성마다 하위 호환도 있었지만 큰 틀은 변함없었다.
성녀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지향해야 할 일종의 이상적인 여성상이었다. 성녀를 묘사한 그림에서 성녀들은 하나같이 젊고 아름답다. 성녀의 이름을 물려받은 딸들도 많았다. 21세기 기준으로 가톨릭에서는 아직 현재 진행 중이지만, 여자는 사제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성녀나 복녀는 될 수 있었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순교하는 것이었다. 그 밖에도 기적을 일으켰다고 인정받거나 포교를 한 공적이 있으면 목숨을 버리지 않아도 시성 받는 경우가 있기는 했다. 이 길 역시 교회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야 가능했다. 당연히 평범한 여성이 성녀가 되기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처럼 어려웠고, 때로는 그 길이 피로 얼룩져 있었음에도 그 길을 권고받았다.
하녀는 여성 대부분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것이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선택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이에게 헌신하는 어머니는 아름답지 않아도 추앙받을 수 있었다. 성녀이자 하녀로 남기를 권고받은 어머니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 자식에게 자식을 키울 수 있어 좋았다고 말하기를 요구받았다. 자식이 힘들 때 조금이라도 비위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서운함의 대상이 되었다. 불한당들이 쓰는 욕의 대명사가 되는 일도 숙명이었다.
미혼의 하녀들은 상급자나 주인들로 인해 위험에 노출된 상태로 일하곤 했다. 특히 노예들이 심한 짓을 당했다. 수리남의 여자 노예들은 코토미시라는 의상을 입었다. 코토미시는 속옷을 몇 겹씩 껴입고 겉옷까지 부풀려 입어야 했기에 착용자를 매우 뚱뚱해 보이도록 만들었다. 아름다움은 하녀들에겐 재앙이었다. 그녀들은 언제든 성적 노리개로 전락할 수 있었으므로 일부러라도 그 옷을 입어야 했다. 간편한 옷만 입고 일한 알리다라는 노예는 가슴이 잘려 나가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노예주가 그녀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걸 깨닫고 질투심에 휩싸인 노예주의 부인이 벌인 짓이었다.
성녀의 순교는 고귀하고, 하녀의 사망은 그럴 수도 있는 일로 치부되었다면, 마녀의 사형은 정당한 일로 여겨졌다. 심문 과정에 인권은 고려되지 않았다. 무더기로 사형을 집행하거나 반인륜적인 고문을 가해도 마녀라는 낙인만 찍으면 그만이었다. 의심만 받아도 재판이라는 도마 위에 올랐다. 마녀는 사람을 타락시키는 무시무시한 요물이란 취급을 받았지만, 오늘날 그녀들의 다른 이름은 피해자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녀이자 마녀에 속한 창녀는 아이러니하게도 하녀라는 속성의 유용함 덕분에 사형을 피하는 데 유리했다. 하지만 그것이 인권이 보장받았다는 뜻은 아니다. 공창제가 폐지되기 전 일본의 유녀들의 평균 수명은 30세 미만이었다. 시신은 조켄지라는 절에서 따로 맡아주었다.
앞서 서술한 글은 서구 중심적인 내용이지만 유교 문화권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성녀라는 명칭은 열녀나 효녀, 마녀는 요녀라는 차이점만 존재한다. 전근대의 여성관은 동서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열녀가 되려면 남편을 따라 목숨을 끊어야 했고, 하녀는 주인을 잘못 만나면 흠씬 구타당해 사망할 수 있었으며, 요녀로 낙인찍히면 살인이나 강간을 저지르지 않아도 군중이 지켜보는 앞에서 사형당했다.
이 세 가지의 틀에 들어맞지 않는 여성들도 물론 존재했다. 본인의 노력이나 선택에 의해 영향을 받는 세 가지 사례와는 다르게, 권력자의 딸로 태어나거나 부인이 되면 여왕이나 여제가 되는 일도 가능했다. 보편적인 케이스가 아니다 보니 운이나 출생에 더 의지해야 하는 자리였다.
힘을 가진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세상은 끊임없이 틀을 깬 여자들을 어떻게든 기존의 틀에 맞춰 판단하려고 애썼다. 그렇기에 같은 여전사일지라도 화 목란은 아버지를 대신해 전쟁에 나간 효녀로 칭송받을 수 있었지만, 권력자의 눈 밖에 난 잔 다르크는 구국 영웅에서 마녀로 전락해 화형당했다. 그로부터 400년이 지난 후에야 잔 다르크는 복권되어 성녀로 시성 받았다.
그러나 이 세상에 존재했거나 존재하는 수많은 여자에게 단 3가지 길만 허락하는 게 과연 옳은가? 대단히 단순하고 평면적이지 않은가? 오늘날 종교 극단주의와 내전 등으로 사정이 열악한 국가들을 제외하면 여성들이 갈 수 있는 길이 많이 늘어났다. 대학을 비롯한 고등교육기관의 문이 열렸고, 도전할 수 있는 직업의 가짓수도 늘어났다. 다만 아직 구시대의 인습을 벗어나지 못해 갈등하고 혼란을 겪는 경우도 많이 보인다. 급작스럽게 변한 사회상을 잘못 이해하여 안팎으로 노동을 하며 돈도 벌어야 하는 이중고를 강요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타개책을 찾아야 할까. 권력자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손바닥 뒤집듯 성녀에서 마녀로도 전락할 수 있었던 철의 시대를 거슬러 황금의 시대에서 답을 찾아봐도 되지 않을까.
남신 못지않게 여신들도 많았던 시절, 그녀들은 각각의 개성과 힘을 거느리며 존재했다. 데메테르는 대지를 다스렸고, 아테나는 지혜를 관장했다. 세간에서 간혹 오해하는 바와 달리 ‘남성적인’ 영역이라 일컬어진 분야도 다스렸다. 일본 신화에는 태양신 아마테라스가 있고, 이집트 신화에는 하늘의 신 누트가 있다. 그리스의 전쟁의 신 아테나가 로마의 미네르바로 이어졌다. 인도의 전사 신 두르가는 악마들과 싸워 거뜬히 승리를 쟁취했다. 한술 더 떠 ‘검은 여자’라는 이름의 칼리는 적의 피를 전부 마셔버리는 파격적인 모습도 선보였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여신들은 신흥 종교에 편입되거나 잊히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녀들은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그 여신들의 행동양식이 전부 어디에서 왔겠는가. 웃거나 우는 여인, 싸우는 여인, 가정을 보살피는 여인, 파업하는 여인, 치장하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다양한 여신들이 엿보인다. 신화가 누군가가 지어낸 아름다운 이야기일수록 그것은 더더욱 현실의 모방이라는 말이 된다. 여신들이 초자연적인 권능을 사용하지 않을 때면 그녀들은 한없이 인간을 닮았다. 현대에는 그런 여신들을 롤모델로 삼는 여인들도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셈이다.
바야흐로 다양성이 강점이 되고 각광을 받기 시작하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여신과 여인 사이에 단단한 벽을 세워 가르고, 여신은 숭배하면서 여인은 폭행하는 일은 너무 미개하지 않은가. 신화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엄연한 사실이라 믿는 사람들도 여신들의 유지를 잇는 이는 결국 사람이라는 점에 동의해야 하리라.
요새는 여신이라는 단어가 그저 외적으로 예쁜 외모를 가진 사람에게만 붙여주는 칭호로 변질한 것 같아 내심 안타깝다. 필자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여신이 있으니 그중 원하는 여신을 롤모델로 삼거나 공부하길 권하고 싶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두고 쓰지 않는다면, 우물 안 개구리로 남는다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여신인 이들이여. 혹은 여신들의 원형인 이들이여.
수많은 글을 쌓아 올리고 또 쌓아 올린 후
멋모르고 등단을 기대하던 시절, 대학 재학 중에 당선 연락 한 번은 받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막연한 기대였다. 어느 날은 밤을 지새우며 퇴고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글, 쓰지 말까…
당선 소식을 접하자마자 역시 사람에게 잘하고 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단을 고대하던 8년하고 반, 가족 앞에서 온갖 힘든 티를 내며 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 후에야 글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결코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는 글임에도 제 에세이가 선택받은 이유는 심사위원분들께서 가능성을 보시고 인정해 주셨기 때문이었으리라. 감사드린다. 만약 대상을 받았더라면 쉽사리 자만에 빠졌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당선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시고 축하해 주신 우리 가족에게 감사드린다. 나의 에너지는 가족에게서 나온다. 드디어 이 말을 전할 수 있어서 기쁘다.
나의 글의 소재가 된 타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내가 그분들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세상을 모르는 채 혼자만의 공간 안에 틀어박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을 것이다.
단 한 문장을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글을 쌓아 올리고 또 쌓아 올린 후 만든 저 문장에, 이 마음을 오롯이 담을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