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
작은 것을 큰 것과 바꾸어라(以小易大): 청주집(淸珠集)
예전부터 삼계에 태어났다 죽으면서 윤회하는 것을 감옥에 비유하였다.
그렇다면 일단 삶과 죽음을 벗어나지 못한 자들은 모두 삼계의 감옥에 갇힌 수감자이다.
그 수감자에 세 종류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살아날 이치가 결코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고는
그런대로 감옥 속에서 구차하게나마 편안함을 도모하다가
하루아침에 망나니의 손에 끌려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사형장으로 나아가는 자들이다.
그 두 번째는 천금千金을 가진 부잣집 자식임을 자부해 돈을 아끼지 않고,
일일이 점검하며 삶을 꾸려 가는 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이 확고하지를 못하고,
한편으로는 또 가마솥 안에서 노는 물고기의 즐거움51)을 탐하며,
혹시라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길이 끊어지고 또 더 이상 쓸 방법조차 없게 되면
그저 달갑게 받아들일 따름이다.
이 두 종류의 수감자와는 달리 타고난 성품을 자부하며 고집불통인 사나이들이 있다.
그들은 속박을 참지 못하기에 감시자가 잠시 소홀한 빈틈을 노렸다가
목에 씌운 칼을 풀고 발목에 채운 쇠사슬을 끊고서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이처럼 단호한데 그들이 어찌 죽기 전에 남은 생을 즐기겠다며 탐하는 짓을 기꺼워하겠는가?
감옥을 탈출하건 탈출하지 못하건 그들이 드러내는 마음은 어느 쪽에서나 옳을 것이다.
아! 삼계라는 감옥에 갇힌 우리는
어느 해에나 죽을 수 있고, 어느 달에나 죽을 수 있고, 어느 날 어느 시각에나 죽을 수 있다.
천한 사람도 죽고 귀한 사람도 죽으며, 늙은이도 죽고 젊은이도 죽으며,
나쁜 사람도 죽고 좋은 사람도 죽으니,
벼슬 순서대로 죽는 것도 아니고, 덕의 순서대로 죽는 것도 아니며,
나이 순서대로 죽는 것도 아니다.
한번 내쉰 숨이 돌아오지 않으면
곧바로 옛날 사람과 지금 사람으로 나뉘는 것이다.
그리고 감옥에 들어간 죄인이 시시각각 탈출을 모색하는 것은
가시 담장 너머에 너무나 안락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 지금 중생들은 번뇌를 집으로 삼고 삶과 죽음을 정원으로 삼은 채
삼계라는 법의 마당 너머에 각자의 본래 고향 집과 행복의 땅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모든 부처님께서 이를 가엾게 여겨 정토와 예토穢土를 구분해 주고,
삼계를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노정을 가르쳐 주셨으며,
감옥의 문까지 오가면서 도로를 닦고,
감옥 밖까지 늘 살펴 묵어 갈 여관을 꼼꼼히 정비해 주셨으니,
이와 같은 은혜는 몇 번이나 몸을 바쳐야 보답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중생들은 어리석고 미혹하여
도리어 이 털끝만 한 일들에 연연하면서
작은 것을 큰 것과 바꾸는 방법을 죽을 때까지도 깨닫지를 못하니, 슬프구나!52)
51)
가마솥 안에서~물고기의 즐거움(遊釜之娛) : 매우 위험한 처지임을 망각한 채
세간의 즐거움에 탐착하는 것을
곧 삶길 가마솥 안에서 유유자적하는 물고기의 어리석음에 비유한 말이다.
52)
예전부터 삼계에~못하니 슬프구나 : 『淨土晨鍾』 권9 「第9 了俗」 ‘了世染之妄’(X62, 80c)에서
발췌하여 인용하였다. 『淨土晨鍾』에서 이를 전효직錢孝直의 말이라고 밝혔다.
효직은 전경충錢敬忠(1581~1645)의 자이다.
전경충은 명나라 때 인물로 호는 옥진玉塵이며, 절강성 영파부寧波府 은현鄞縣 사람이다.
만력萬曆 47년(1619)에 신종에게 상소를 올려
37년간 억울하게 투옥되었던 아버지 전약갱錢若賡을 사면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천계天啓 2년(1622)에 진사進士가 되었다. 저서로 『偶存集』이 있다.
출처: 동국대학교 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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