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 비화] 운명의 4분
해강 최재욱 동문
운명의 4분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 비화---
최 재 욱 (당시 청와대 공보비서관, 전 환경부장관-국무조정실장)
( 당시 사건 전개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사건 발발 장소와 몇 몇 주요지점간의 거리, 또 그 장소들을 잇는 자동차 주행 시간 등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요 장소를 우리나라 서울의 몇몇 지점에 비유해서 설명하는 것을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필자)
성산대교를 건너 청와대 영빈관으로 가던 버마(지금의 미얀마) 외상(外相) 승용차가 연세대 앞에서 고장이 났다. 외상은 발을 동동 굴렀다.
“이거 큰일 났다. 10시 15분까진 영빈관에 도착해야 하는데...”
이때가 1983년 10월 9일 오전 10시 5분. 그는 국빈(國賓) 방문한 전두환 한국 대통령의 아웅산 장군 묘소 참배를 안내하기로 되어 있었다. 아웅산은 이 나라에서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사람이다. 여기 참배하는 것은 우리나라로 치면 국립묘지 참배에 해당한다.
묘소는 삼각지 근처에 있고 행사 예정시간은 10시 30분. 전 대통령은 10시 20분 숙소인 영빈관에서 출발하는데 그 5분전에 외상이 현관에 대기하기로 시간이 짜여 있었다.
외상의 운전사가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다른 차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지나가는 택시’ 같은 것은 있을 리 없다. 사회주의 국가인데다 1960년대 초의 우리나라 같던 이 나라의 교통 수준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운전사는 한참을 고생한 끝에 겨우 택시 한 대를 구해 왔다. 그러나 시간은 이미 10시 15분.
이 때 영빈관에서는 선발대(先發隊)가 행사 장소로 출발하고 있었다.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 심상우 민정당 총재 비서실장, 민병석 주치의, 그리고 이계철 주버마 대사였다. 길을 잘 아는 이 대사 차가 맨 앞에서 선도했다. 대사 차에는 관례대로 태극기가 달려 있었다.
3분 뒤인 10시 18분 대통령은 영빈관 2층 숙소에서 1층 현관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 때 1층에 있던 비서가 보고했다.
“아직 버마 외상이 안 오셨습니다.”
전 대통령은 “그래?” 하며 2층으로 다시 올라갔다. 대통령이 현관에서 외상을 기다리는 격이 되어서는 모양이 이상하고 또 그럴 경우 외상이 더 미안해 할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 대통령의 후일담이었다.
숙소로 돌아 온 대통령은 이 틈을 이용해 영빈관 영접 요원들을 격려하고 수고를 치하했다. 10시 19분 외상이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격려를 중단할 수 없어 몇 분 더 지체됐다. 그리하여 대통령이 영빈관을 출발한 시각은 10시 24분. 예정보다 4분이 늦었다. 이 4분의 의미는 곧 나온다.
이때 이 대사 등 선발대는 서울역 앞을 막 지나고 있었다. 범인들은 서울역 맞은 편 산기슭에 숨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은 선발대를 전 대통령 행렬로 오인했다. 이 대사 차에 태극기가 달려 있었고 또 이 대사의 안경과 두발 모습이 전 대통령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묘소는 큰 목조건물 속에 있었는데 범인들은 사전에 이 건물 천장에 폭탄을 몰래 달아 놓고 원격 조종장치를 해 놓았다.
선발대는 10시 26분 묘소에 도착했다. 선발대 외에 롯데호텔에 묵었던 장-차관급과 나를 포함한 공식 수행원들, 그리고 기자들도 미리 도착해 있었다. 이 대사가
“대통령께서 곧 오실 테니 모두 자리에 정렬합시다.”
라고 해서 우리는 2열 횡대로 섰다. 기자들도 촬영 준비를 하는 등 부산했다. 곧 이어 10시 28분. “꽝”하는 굉음과 함께 건물 전체가 와르르 내려 않았다. 이 대사를 대통령으로 안 범인들이 주행(走行)시간을 정확히 계산, 그에 맞춰 폭발장치를 누른 것이다.
이 즈음 대통령 일행은 시청 앞을 지나 남대문에 이르렀다. 앞서 가던 버마측 경호책임자가 사고 소식을 접하고 급히 모든 행렬을 되돌렸다. 만약 대통령 일행이 예정대로 10시 20분에 출발했다면 범인들은 10시 28분 이전에 대통령 일행을 봤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들은 선발대보다 훨씬 규모가 큰 이 일행을 보고 곧 자신들의 오인(誤認)을 깨달았을 것이며 따라서 폭발시각도 대통령 일행 도착에 맞추었을 것이다. 그 경우 대통령은 물론이고 장세동 경호실장을 포함한 우리측의 많은 경호요원, 의전요원, 그리고 외상을 비롯한 수많은 버마측 경호-의전요원들의 추가 희생은 불을 보듯 한 일이다.
거기다가 휴전선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한글날과 일요일로 겹 공휴일인 이날, 우리 국민들이 엄청난 충격과 경악 속에서 가슴을 쓸어내린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운명의 4분>이 갖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를 불행 중 다행이라 하기에는 우리의 인적 손실이 너무나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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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시 참배 대형(隊形)
아웅산 장군 묘
전 대통령 (미도착)
서석준 이 범 석 김 동 휘 서 상 철 이계철 함 병 춘 심 상 우 이 기 백
부총리 외무장관 상공장관 동자장관 대 사 비서실장 총재실장 합참의장
이 기 욱 강 인 희 김 용 한 민병석 김 재 익 황선필 하 동 선 최 재 욱
재무차관 농산차관 과기차관 주치의 경제수석 대변인 해외단장 비 서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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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형에 거명된 공식 수행원 중 이기백 합참의장과 나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이 2명을 제외한 13명이 순직하고 그밖에 비서관, 경호원, 기자 등 모두 17명이 희생됐다. 그리고 십 수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앞서 두 사람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는 얘기를 했지만 진짜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참화를 모면한 이가 있으니 그 행운의 주인공은 바로 황선필 대변인이다. 경과는 이렇다.
황 대변인은 숙소인 롯데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직후인 9시쯤 대통령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황 대변인의 대통령 면담이 끝난 시간은 9시 50분. 그는 영빈관에서 호텔로 다시 향했다. 그는 호텔에서 다른 수행원들과 함께 행사장으로 출발하게 돼 있었고 차량도 나와 함께 타도록 준비돼 있었다. 호텔 로비에서는 수행원들이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가 미처 호텔에 돌아오기 전인 10시쯤 이범석 외무장관이 우람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나오셨으면 일찍 출발합시다. 여기 호텔서 몇 분(分) 더 보내기보다는 현장에 미리 가서 이것저것 둘러보는 게 낫지 않겠소.”
모두들 동의했으나 나는 이의를 달았다.
“대변인이 영빈관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요.”
그러자 이범석 장관이 말했다.
“아, 대변인이야 그 쪽에서 바로 현장으로 가겠지. 염려 말고 갑시다.”
나는 할 수 없이 대변인과 내게 배정된 차에 올라탔다. 더 기다린다고 이 일행과 떨어지면, 우리 차는 누가 행사장으로 안내해준단 말인가.
우리 일행이 떠난 수 분 뒤 황 대변인은 호텔에 도착했다. 그러나 차가 없었다. 그는 버마 외상이 그랬던 것처럼 한참 동안 고생한 끝에 가까스로 택시를 구해 삼각지로 향했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른 남영동 근처서 그는 폭음을 들었다. 경찰의 제지로 차를 돌린 그는 곧바로 영빈관으로 갔다. 영빈관에는 대통령이 막 돌아와 있었다. 대통령은 “수행원 전원이 희생된 것 같다”는 제1보를 접하고 비탄과 충격에 쌓여 있는 중이었다. 황 대변인은 대통령이 계시는 방의 문을 열었다. 대통령은 대변인의 얼굴을 보자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어? 자네가 어떻게 살아 돌아왔어?.”
몇 년 뒤 전 대통령과 부상자들이 자리를 함께 할 때였다. 무거운 분위기를 바꿀 겸해서 내가 말했다.
“황 대변인은 저 때문에 살았습니다. 제가 그때 롯데호텔에서 좀 더 기다려 차를 같이 타고 갔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참배 대형(隊形)에서 황 대변인이 서기로 했던 자리를 감안하면(그 자리 좌우 분들은 다 참변) 나의 생색도 과장이 아니다. 그런데 황 대변인의 반응은 더 근원적이었다.
“그날 아침 대통령께서 저를 불러주시지 않았다면 정말 저는 어떻게 됐겠습니까.”
---2001. 4. 10. ‘경맥’
------------------------------* 또 하나의 회상기 (어느해의 '월간조선'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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