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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1995년, 하루미는 정보공학과 출신 학생을 몇 명 채용했다. 그리고 각각 컴퓨터 한 대씩을 주고 인터넷을 이용하여 할 수 있는 일을 연구하도록 했다. 그들은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다음 해, ‘오피스 리틀독’이 맨 처음 시작한 인터넷 관련 사업은 홈페이지 제작이었다. 먼저 자사 광고를 해보았다. 그 일이 신문에 실리자 반향이 컸다. 기업과 개인으로부터 홈페이지 제작 문의가 계속 들어왔다. 아직 누구나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지만, 불황 속에서도 새로운 광고매체에 기대하는 분위기는 뜨거웠다. 홈페이지 제작 주문이 잇달아 들어왔다.
그 후 몇 년 동안 ‘오피스 리틀독’은 톡톡히 재미를 봤다. 인터넷을 이용한 광고사업, 판매사업, 게임사업이 하나같이 다 잘 되었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하루미는 다음에는 어떤 사업을 할까 구상했다.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지인한테서 상담 의뢰가 들어온 것을 계기로 회사 내에 컨설팅 부서를 만들었다. 지인의 레스토랑은 매출이 증가하지 않아 경영난에 빠져 있었다.
하루미는 중소기업 경영평가 국가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전담 직원을 두고 검토한 결과, 단순히 광고만 해서는 소용이 없으며 철저한 콘셉트 아래 음식 종류와 인테리어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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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리뉴얼한 레스토랑은 크게 성공했다. 다시 개업한 지 석 달이 지나자 예약하기 어려운 식당으로 바뀌어 있었다.
컨설팅이 돈이 된다는 것을 하루미는 확신했다. 그렇지만 어중간해서는 안 된다. 경영 부진의 원인을 분석하는 일은 누구나 가능하다.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결과를 내야만 비로소 오랫동안 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루미는 외부에서 우수한 인재를 모집했다. 때로는 고객의 상품개발에 적극 관여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매정하지만 인원을 삭감하도록 제안했다.
IT 부문과 컨설팅 부문, 두 가지를 주로 하면서 ‘주식회사 리틀독’은 계속 성장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일이 정말 술술 잘 풀렸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견지명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분명 그런 면도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편지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잘 나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언젠가는 은혜를 갚으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나 혼자 힘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다.
은혜를 갚으려면 ‘환광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올해 들어 경영이 파탄날 것 같다는 소문을 들었다. 알아보니 사실이었다. 2003년에 미나쓰키 원장이 세상을 떠난 후 장남이 운송업을 하면서 환광원을 운영해왔지만, 본업인 운송업에서 막대한 적자가 나자 도저히 환광원을 유지할 여유가 없는 모양이었다.
하루미는 바로 연락했다. 현재 미나쓰키의 장남이 원장을 맡고 있지만 그건 이름뿐이고 실제 운영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가리야 부원장이었다. 하루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부원장에게 말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출자도 하겠다고 덧붙였다.
첫댓글 GOOO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