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보 목사 사건이 던진 근본적 질문: 강단과 공권력의 경계선을 어떻게 그을 것인가
▲양봉식 목사(길과생명연구소 소장)
■ 하나의 사건, 두 개의 자유가 충돌하다
부산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단순히 한 목회자의 법적 위험을 넘어선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가 그어야 할 보이지 않는 경계선—예배의 자유와 선거법의 취지 사이, 신앙고백과 정치표현 사이—이 얼마나 모호해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9월 8일 영장실질심사는 단순한 법적 판단을 넘어, 우리 사회가 어떤 원칙을 더 중시할 것인지에 대한 집단적 선택의 순간이 될 것이다.
■ 사건의 핵심: 디지털 시대 강단의 새로운 딜레마
사건의 골자는 명확하다. 손 목사는 부산시교육감 재선거에서 특정 후보와의 대담 영상을 교회 유튜브에 게시했고, 과거 선거에서 특정 후보 지지를 표명하는 금식 기도회를 개최했다. 선관위는 이를 종교단체 내 직무상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으로 판단해 고발했고, 검찰은 불구속이 아닌 구속 수사를 선택했다.
교계가 제기하는 핵심 질문은 세 가지다.
첫째,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희박한 종교인에게 왜 구속영장인가. 둘째, 강단에서의 신앙적·윤리적 판단 표현을 곧바로 선거운동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가. 셋째, 동일하거나 유사한 사안에서 형평성은 지켜졌는가.
이 질문들이 단순한 감정적 반발이 아닌 이유는, 공직선거법의 목적(부당한 조직동원 방지)과 헌법의 약속(종교·표현의 자유) 사이의 필연적 충돌을 예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 유튜브라는 새로운 변수: 확장된 영향력과 모호한 경계
이번 논란을 이해하려면 디지털 시대 강단의 변화를 봐야 한다. 과거 설교는 예배당 내부에 머물렀지만, 이제 유튜브는 설교를 공적 의제와 만나는 광장으로 변모시켰다.
대담 영상에서 다뤄진 차별금지법, 학생인권조례 등은 분명 공적 사안이다. 교회는 이를 신앙윤리의 관점에서 논하려 하고, 선관위와 검찰은 이를 실질적 선거운동으로 파악한다.
이 간극은 단순한 해석의 차이가 아니다. 온라인 플랫폼은 메시지의 도달범위와 동원력을 크게 확장시킨다. 법은 그 확장된 영향력을 규율하려 하고, 교회는 그 확장된 공간에서 신앙의 공공성을 실현하려 한다. 충돌은 필연적이며, 그래서 더욱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최소침해 원칙이 필요하다.
■ 상반된 해석: "본보기 수사"와 "법 앞의 평등"
교계 보수 진영은 이번 조치를 최근 교계 지도자들을 둘러싼 수사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한다. "정권 비판적 기독교 세력에 대한 경고"라는 관점에서 "군부독재에도 없던 일", "전체주의의 전주곡"이라는 강한 표현까지 등장한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종교인도 예외일 수 없다", "정교분리 원칙의 구현"이라는 논리를 제시한다.
법 앞의 평등은 민주주의의 기둥이다. 그러나 진정한 평등은 형식적 동일처리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구속영장이라는 강도 높은 수단을 택할 정당한 필요성, 동일 유형 사건에서의 처분 비교, 비례성 평가가 함께 입증되어야 한다.
동시에 교회 역시, 신앙적 언어로 포장된 사실상의 선거개입이 있었다면 내부 규범과 책임의 언어로 응답해야 한다. 양쪽 모두에게 절제가 요구된다.
■ 우리가 준비하지 못한 것들
첫째, 명확한 경계선의 부재
선거기간 종교단체의 공적 의제 토론 범위, 후보 초청 대담의 형식과 질의 방식, 게시 방법, 채널 운영의 투명성(동등 기회 제공, 광고·후원 표기 등)에 대한 세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둘째, 집행 수위에 대한 신뢰 부족
압수수색, 구속영장 등 강제수사의 문턱은 더 높아야 한다. 특히 종교 자유가 관련된 사건에서는 최소침해성과 설명책임이 더욱 중요하다.
셋째, 교회 내부 자율 규범의 미성숙
강단의 공적 발언, 선거기간 메시지 운영, 플랫폼 활용 수칙, 성도 보호 장치, 반론권 보장 등 '강단 윤리'의 표준화가 시급하다.
■ 교회를 위한 제언: 더 투명하고 더 겸손한 강단
예배와 선거의 명확한 경계 설정이 필요하다. 신앙의 원리(생명, 가정, 공의, 자유)에 대한 설교는 가능하되, 특정 후보나 정당의 명시적 지지·반대는 피해야 한다. 필요시 '가이드라인 선언문' 공표를 고려하라.
동등 접근 원칙의 확립해야 한다. 공직 후보 대담은 동일한 기준과 기회 제공을 원칙으로 하고, 형식·질문·편집·게시일정을 사전에 공개해야 한다.
플랫폼의 책임감 있는 운영이다.
유튜브, SNS 채널을 종교법인의 공적 자산으로 간주하고, 운영 규정(광고·후원, 댓글 관리, 팩트 체크)을 마련하라.
언어의 절제가 필요하다. "전체주의", "나치" 같은 극단적 은유는 공포를 증폭시키지만 설득력을 약화시킨다. 공적 담론에는 검증 가능한 근거와 차분한 톤이 더 효과적이다.
■ 국가를 위한 제언: 강한 국가보다 정당한 국가
최소침해·비례성 원칙의 확립해야 한다. 불구속 수사가 가능한 사안이라면 원칙적으로 그 방향을 택하라. 특히 종교 자유 관련 사안에서는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가장 낮은 단계부터 적용해야 한다.
가이드라인의 투명한 공개해야 한다. 종교단체와 비영리단체의 선거기간 활동 기준을 예시 중심으로 상세히 공개하고, 사전 컨설팅 채널을 상시화해서 소통의 장을 열어야 한다.
형평성의 투명화이다. 유사 사건의 처분 통계를 정기 공개하여 '선택적 집행'이라는 의혹을 해소하라. 압수수색, 영장 청구 등 중대 조치의 사유와 필요성, 대안 검토 과정을 더 세밀하게 설명을 통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필요가 없다.
■ 두 자유의 공존을 향하여
종교의 자유는 신앙의 내적 자유만이 아니라, 가치 판단을 공적 영역에서 증언할 표현의 자유까지 포함한다. 선거법의 취지는 조직적 동원과 불공정한 영향력을 차단하는 데 있다.
두 가치가 조화점을 찾으려면, 교회는 권력화된 동원을 경계하고 국가는 표현의 과잉 규제를 경계해야 한다.
이 사건을 "누가 이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의 작동 원리를 재설계하는 기회로 보자.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자기 제한을 전제로 성립하고, 권력은 통제 불능의 강함이 아니라 정당화 가능한 절제에서 권위를 얻는다.
■ 디지털 광장의 목소리, 어떻게 들을 것인가
이번 논쟁에서 유튜브는 분명한 증폭기 역할을 했다. "군부독재에도 없던 일", "전체주의의 전주곡" 같은 표현은 상처와 분노의 진폭을 보여준다. 그러나 증폭은 왜곡과 이웃한다.
디지털 광장은 진실의 일부를 확대하고 다른 일부를 지운다. 그러므로 사실 확인과 표현의 책임을 더 중시해야 한다. 신앙공동체의 목소리가 클수록, 겸손의 기술이 더 필요하다.
■ 자유를 지키는 두 손—절제와 책임
손현보 목사는 "자유는 헌신과 희생으로 지킨다"고 말했다. 여기에 한 문장을 덧붙이고 싶다. “자유는 절제와 책임으로 오래간다.”
구속영장 발부 여부가 어떻게 결론나든,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교회는 강단의 자율 규범을 세우고, 국가는 최소침해·형평성·설명책임을 제도화해야 한다.
선거법은 종교의 입을 막기 위한 칼이 아니라 동원을 제어하는 규범이어야 하며, 종교 자유는 법의 외곽이 아니라 법이 보호하려 약속한 핵심이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지금 종교 자유의 시험대 앞에 서 있다. 이 시험은 한 사람의 유무죄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자유를 보존하고 권력을 절제할 것인지, 그리고 신앙이 어떻게 공적 선을 추구할 것인지—그 대답이 우리 민주주의의 품격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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