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이스라엘 속의 아랍인 2]
무기한 거주 허용 증명서는 영주권인 셈이다.
현대 동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아랍인 주민들의 대부분은 이처럼 이스라엘이 발급한 영주권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합법적으로 무기한 거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의료혜택이나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방선거에도 참여할 수 있는 등 일상생활에서는 큰 불편 없이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의회 선거에는 참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스라엘 국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동예루살렘뿌 아니라 여타 이스라엘 지역에서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이들과의 접촉을 꺼리는 유대인들의 정서 탓에 실제로 다른 지역에서 주택을 사거나 빌리기가 쉽지 않다.
일상에서 이들이 겪는 가장 큰 불편은 해외여행을 할 때 발생한다. 이들은 이스라엘 여권을 받을 수 없다. 이들에게는 여권이 아니라 출국증명서가 발급된다. 외국 입국시에는 요르단 정부가 발급해주는 여행증명서(요르단 국민으로는 인정되지 않음)를 사용한다.
이스라엘과 비자면제 협정을 맺은 국가를 여행하더라도 이들은 이스라엘 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별도로 비자를 받아야 한다.
또한 이들이 다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하거나 외국에서 7년 이상 장기체류를 하면 동예루살렘에 거주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영주권이 취소된다.
동예루살렘에 장기간 거주해 온 아랍인 중에서 이스라엘 국적 취득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국적취득을 위한 신청 절차가 마련되어 있다. 매년 약 1천여 명 수준의 동예루살렘 거주 아랍인 주민들이 이스라엘 국적 취득 신청을 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들을 대상으로 전과 유무, 팔레스타인 테러범과의 연계 여부, 히브리어 구사 능력, 동예루살렘이 실제 생활 근거지인지 여부, 이스라엘에 대한 충성심 정도를 바탕으로 무척 엄격한 심사를 한다.
신청부터 국적 취득을 하기까지는 6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이처럼 한때 팔레스타인에 살던 아랍인들은 본인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역사적인 상황에 따라 오늘날 다른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스라엘의 건국 시기부터 이스라엘 국민으로 인정받은 ‘48아랍인’, 이스라엘 영주권을 부여받은 동예루살레 거주 아랍인, 철저하게 봉쇄된 서안지구나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적대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아랍인, 전쟁을 피해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지로 떠나 난민 지위로 살아가는 아랍인 등으로 나뉘어지는 것이다.
이들 모두 다 같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출신 배경으로 하는 아랍인이지만 국적과 신분은 서로 다르다. 이들이 이스라엘에 대해 느끼는 감정 역시 대단히 복잡하고 미묘할 것이다.
이스라엘을 떠올리면 내부적으로 별다른 갈등이 없이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나라라는 선입견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가발전을 지속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각종 격차의 해소와 사회통합의 문제는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다.
가장 근본적인 이슈는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 문제이다.
유대인 가운데는 언젠가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면 모든 아랍계가 이스라엘 땅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해 가기를 바라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스라엘을 아랍인이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유대인만의 나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아랍계 이스라엘 국민 중에는 팔레스타인 분쟁이 평화적으로 해결되더라도 여전히 이스라엘 국민으로 남고 싶은 사람이 많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미래가 불투명한 데다 2등 국민으로 대우받더라도 이스라엘에서의 생활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젊은 아랍계 국민 가운데에는 이스라엘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조국으로 간주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고 이들이 우파그룹이 주도하는 정부의 정책까지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조국인 이스라엘과 자신의 민족인 팔레스타인이 서로 싸우는 현실 속에서 심리저 갈등을 안고 살아간다.
같은 유대계 국민 중에서도 정통파 하레딤과 세속파 세큘라 간의 간극 역시 유대계 국민과 아랍계 국민 간의 간극만큼이나 멀다.
참고 서적
7가지 키워드로 읽는 오늘날의 이스라엘, 최용환 지음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