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전 태평양에서 사라진 미국의 여자 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1897~1937)의 비행기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실종은 항공 역사에 가장 커다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녀가 사라지자 수많은 가설과 음모론이 횡행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 있는 딥 시 비전(Deep Sea Vision) 탐사진은 이번 주 태평양의 어느 지점에서 소나 탐지 사진을 촬영했는데 에어하트가 마지막으로 몰았던 록히드 10-E 일렉트라인 것처럼 보인다고 밝혔다고 CBS 뉴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9월부터 태평양 8368평방km가 넘는 지역을 정밀 조사한 결과 소형 항공기 모양의 물체가 바다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16명으로 이뤄진 탐사진은 첨단 수중 드론을 이용해 촬영한 동영상도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
미 공군 정보장교 출신인 토니 로미오는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자신의 상업 부동산을 처분한 1100만 달러(약 146억원)를 이 탐사에 지원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내 생애 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일일지 모르겠다"며 "보물 사냥에 나선 열살 아이처럼 느껴진다"고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생전에 도전 정신이 충만했던 에어하트는 항법사 프레드 누넌(당시 44)과 함께 1937년 7월 2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첫 여성 비행사가 되겠다며 태평양 횡단에 나서서였다.
두 사람이 사라진 뒤 대대적인 수색 작전이 시작됐다. 미 해군과 해안경비대도 참여했다. 하지만 끝내 동체와 시신도 찾지 못했고, 2년 뒤 두 사람의 사망이 선언됐다.
이번에 에어하트의 비행기 동체로 보이는 물체가 포착된 지점은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연료를 공급받은 하울런드 섬으로부터 160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의 수심 4800m 지점이다. 탐사진은 더 정밀한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수중 드론을 동체에 더욱 가까이 접근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소나 전문가들도 더 근접한 사진이 있어야만 에어하트의 비행기가 맞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에어하트가 어떻게 실종됐는지에 대해선 다른 가설도 적지 않았다. 수십년 그녀의 행적을 추적해 온 릭 길레스피는 2018년 CBS 뉴스 인터뷰를 통해 그녀가 하울런드 섬으로부터 350해리(nautical mile, 648km) 떨어진 가드너 섬에 불시착, 비행기가 바다에 휩쓸리기 전까지 일주일 가까이 도움을 요청했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그녀의 도움 요청을 미 해군뿐만 아니라 수천 마일 떨어진, 예를 들어 플로리다와 아이오와, 텍사스주 등의 많은 이들이 무전 교신을 통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캐나다의 한 여성은 "물이 들어온다. 우리는 더 이상 붙들고 있을 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현지 언론에 알렸다.
길레스피가 만든 the International Group for Historic Aircraft Recovery는 그 섬에서 유골들이 나왔는데 에어하트의 것으로 보인다는 부검 증거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로미오는 이번에 나온 소나 사진이 마침내 수수께끼를 풀 수 있게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의 형제 둘도 파일럿으로 탐사에 함께 하고 있다. 그의 말이다. "우리는 항상 해양 쪽 사람들이 아니라 파일럿 집단들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껴왔다."
캔자스주에서 태어난 에어하트는 당시에 굉장히 새로웠던 비행기 조종에 관심을 갖고 1920년대 초에 비행 교습을 받기 시작했다. 그 뒤 1928년 정치평론가이자 출판가인 조지 퍼트넘으로부터 파일럿 윌머 슐츠와 부조종사 루이스 고든의 팀에 공동 파일럿으로 초대돼 팀이 뉴펀들랜드를 떠나 웨일스에 도착하면서 여성 최초로 대서양 횡단에 성공한다. 퍼트넘과는 부부의 연을 맺었다. 유명세를 탄 그녀는 1932년 단독 대서양 횡단 비행에 나섰다.
1932년 5월 20일 캐나다 뉴펀들랜드의 하버그레이스를 이륙해 최종 목적지인 파리를 향해 비행한다. 그러나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심한 뇌우와 맞닥뜨리면서 고도계가 고장 나고, 날개는 얼음으로 뒤덮였으며, 다기관(多岐管)에 불이 붙는 악재까지 겹쳤다. 그러자 에어하트는 파리 대신 아일랜드에 착륙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해 이륙 후 총 15시간의 비행 끝에 북아일랜드 런던데리 외곽의 목장에 불시착했다. 그럼에도 대서양을 최초로 횡단한 공로를 인정받아 여러 훈장을 받았다.
그 뒤 그녀는 비행기를 타고 적도를 따라 세계 일주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1937년 5월 20일 에어하트와 누넌은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이륙, 플로리다의 마이애미에 들러 비행기를 수리했다. 6월 1일 마이애미를 떠나 브라질로 향했다. 그곳에서 대서양을 건너 아프리카에 도착,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 반도에 이르렀다. 그 후 파키스탄의 카라치, 인도의 캘커타 그리고 버마(오늘날 미얀마)에 차례로 도착했다. 이들은 6월 30일 뉴기니에 도착해 여정 중 가장 어려운 일정을 준비했다.
태평양 한가운데 4km 길이밖에 되지 않는 하울런드 섬을 향해 4184km를 비행해야 했다. 다음날 뉴기니를 출발했는데 7월 2일, 미 해군은 연료가 바닥났다는 에어하트로부터의 메시지를 전해 들었지만 추가 교신에 실패했다.
앞에 음모론도 있다고 했는데 에어하트의 세계 일주 임무 가운데 일본 소유의 태평양 섬들을 정찰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검증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