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떠난 피서
보름 전 여름방학에 들어 다음 주 개학이다. 그간 이주일은 보충수업이 짜여 학생들과 일부 동료들이 학교로 나갔다. 나는 수업 부담은 많지 않았으나 가끔 학교로 나갔다. 이제 남은 일주일이 사실상 방학이다. 남은 방학 기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근교 숲속으로 들어가 묵상에 잠기거나 무념무상 걷고 싶다. 이럴 땐 혼자면 좋고 동행이 한 명 정도는 있어도 그리 심심하지는 않다.
팔월 첫째 목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배낭에는 생수 얼음물만 달랑 한 통 넣고 길을 나섰다. 집 앞에서 105번을 타고 동정동에서 북면 온천장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탔다. 외감마을 앞에 내려 동구 밖을 지났다. 달천계곡은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하고 나간다. 나는 계곡으로 들지 않고 남해고속도로 지선 창원터널 곁으로 올랐다. 그 터널은 사고가 많았다.
터널 곁까지 가는 길섶에는 여러 잡풀들이 무성했다. 그 가운데 한여름에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노란 달맞이꽃이었다.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달맞이꽃은 귀화식물이지만 토종과 진배없다. 강가 모래밭에는 그 개체가 많아 군락을 이룬다. 산간에서도 달맞이꽃은 쉬 볼 수 있다. 며칠 전 용제봉 정상에서도 달맞이꽃을 보았다. 파랗게 피어난 달개비의 꽃도 이 계절을 대표하는 꽃이다.
단감과수원을 지나서부터는 오리나무가 주종인 숲이 우거졌다. 아까까지 들려오던 자동차 바퀴 굴러가는 소리는 점차 희미해지고 매미를 비롯한 풀벌레소리가 더 또렷이 들려왔다. 물소리까지야 들을 수 없는 곳이지만 새소리 벌레소리는 공으로 들을 수 있는 숲이었다. 숲속 공기는 한층 더 서늘하고 깨끗했다. 이럴 때는 발걸음은 천천히 더 천천히 내딛으며 느긋하게 걸음이 좋다.
오래 전 송전탑을 세우면서 중장비가 지난 자리엔 편백나무를 심어 놓았다. 세월이 흘러 그 편백나무가 자라 삼림욕을 즐기기 좋을 만큼 되었다. 양미재 못 미친 산자락에서 등산로를 벗어나 숲을 헤집고 걸었다. 영지버섯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영지버섯은 좀체 그 모습을 드러내 주질 않았다. 한동안 숲속을 다녔는데 이제 작은 갓을 펼쳐 나온 영지버섯을 고작 한 개 찾아낼 수 있었다.
양미재 아래 너럭바위에 앉아 쉬었다. 워낙 이른 아침 산행을 나섰기에 산속에 든 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여덟 시가 되지 않았다. 땀이야 흘렀지만 숲속이라 그런지 더운 줄은 몰랐다. 배낭의 얼음물을 꺼내 한 모금 마셨더니 시원했다. 결가부좌로 묵상에 잠겨보았다. 그대로 시간이 더 흘러가도 좋았겠으나 모기가 날아와 목덜미와 팔뚝을 물어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일어섰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양미재를 비켜 올랐다. 예상대로 그곳에서 갓을 크게 펼친 영지를 몇 개 찾았다. 그 정도면 산행에서 소득이 제법 된 편이었다. 앞에 가로 놓인 산등선을 넘으면서 그 산마루에서도 영지를 몇 개 만났다. 이제 아침 해가 떴을 법도 한데 짙은 안개가 끼어 시야를 가렸다. 평소 그 산마루에 서면 주남저수지와 진영 일대까지 보이는데 가까운 구고사도 보이질 않았다.
산등선 너럭바위에 앉아서 몇 지기에게 문자를 넣었다. 나는 단독 산행 중 쉬는 자리서 가끔 지기에 문자를 넣는 버릇이 있다. 상대방에게 안부를 전하는 기능도 되지만 내가 현재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자신에게 확인해 두기 위해서다. 숲속 배경과 영지버섯 사진을 보고는 무척 신비롭다는 회신이 왔다. 산등선을 넘고부터는 이제 내리막이었다. 등산로가 아닌지라 조심조심 내려갔다.
활엽수림이 우거진 숲속은 아주 고요했다. 샘터를 만나 얼음물을 보충시키고 남은 산자락을 탔다. 등산로가 없는 곳이라 평소에도 그곳은 다니질 않는 곳이다. 그렇지만 낭떠러지가 있는 곳은 아니었다. 산짐승이 다닌 듯 희미한 길이 보였다. 그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영지를 더 찾았다. 숲속을 빠져나가니 향토사단이 옮겨가고 택지를 개발하는 산기슭이었다. 감계 신도시가 가까웠다. 16.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