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대륙 9성(大陸九城)을 왜 반도 9성(半島 9城)이라 하나 ?>
- 출 처 : 국사광복의 횃불 187페이지
- 글쓴이 : 김영호
단제 신채호(丹薺 申采浩)는
“고려사지리지에 두만강 건너 700리 선춘령 밑에 윤관이 세운 정계비(定界碑) 가 있는데
9성의 위치가 왜 함흥평야로 내려오는가 ?“하며
“조선역사상 1,000년 이래 제일 대사건”속에서 지적하고 있다
물론, 뒷날의 공양왕(恭讓王) 실록이나 세종실록 등에서 공험진은 두만강 이북 간도성에
있는 선춘령이며 그 곳에 “윤관이 세운 비”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공양왕 4년에 올랑합(兀良哈)과 알도리(斡都里)족에 속하는 (兀 : 우뚝할 올, 斡 : 관리할 알) 여진인들이 래조(來朝)했을때, 그들의 말중에“시중(侍中) 윤관이 우리영토를 평정하시고 비를 세워 고려의 경계를 하시었다”는 구절이 있다
그들 부족은 윤관 북벌 당시 동만주 송화강 하류(北伐當時東滿洲松花江下流)쪽으로
쫒겨난 족속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말하는 정계비는 두만강 이북에 있다는 뜻이다
세종실록에는 “거양성 선춘령에 윤관의 입비처(立碑處)가 있고 비문에는 고려지경(高麗之境)이란 넉자가 새겨져 있다 한다“
선춘령에서 수빈강(愁濱江)을 건너가면(-> 수빈강(愁濱江) : 흥개호 인근에 있을 것으로 추정, 찾는중) 옛 성지(城址)가 지금도 남아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사적 지내굉(日本史賊 池內宏 : 역사도적놈 일본인 지내굉 - 宏 : 크다 굉)이 9성이 두만강 이북에 있지 않고 함흥평야에 있다고 “날조”한 것을 이적사가(적을 이롭게 하는 OO학자들)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2) 각종사서에 기록된 윤관의 9성 위치
-> 우리의 사서의 기록 등에 의하면 윤관의 9성은 두만강 북쪽에 있어야 한다
(3) 역사 도적놈들 : 이들은 공통적으로 역사 도적놈들이다
-> 상기 지도 노란선은 송령산맥 - 철령위 - 화주 - 고려모 - 선춘령을 연결하는 선이다
-> 고려의 강역은 과연 어디까지 였는가 ?
(4) 기타 확인중
- 세종실록 등 원문 확인후 스캔받아 올리겠음
- 수빈강 위치는 확인중(이 북쪽에 고려의 성이 있었을 것이다)
- 이름도 이상한 지내굉은 추적중
선춘령(先春嶺)의 고려 비석 -> 고려 경계는 두만강 북쪽 700리
(출처) 다음 카페에 “갈릭브레드 님”이 올려주신 글 (지도 등 운영자 일부재편집)
<선춘령(先春嶺)의 비석>
▒ 척경입비도(拓境立碑圖) -> 고려대 박물관 소장
고려 예종 2년(1107) 평장사 윤관(尹瓘, ?-1111) 등이 17만 군사를 이끌고 여진족을 물리친 뒤 국경을 넓혀 그곳에 육성을 쌓고
마침내 선춘령(先春嶺)에 '고려지경(高麗之境)' 네 글자가 새겨진 비를 세움으로써
경계를 삼은 사실을 그린 것이다.
그렇다면 선춘령(先春嶺)의 위치는 어디일까요? 다음의 古地圖를 봅시다
선춘령(先春嶺)의 비석은 두만강의 북쪽에 있습니다..
현재의 지도로 보겠습니다. 지금 현재 선춘령(先春嶺)의 비석은 어디있을까요?
1900년초 일본이 작성한
'통감부 임시 間島 파출소 기요' 극비보고서 이 책에는 아주 중요한 실마리가 있습니다.
"중국 연길국자가 서쪽 1리반 지점에 있는 포이하통하 강물에서 커다란 석비를 발견 하였는데 비문의 대부분은 알아 볼 수 없고 남은 20여자의 글자 중 다행히 무자년이라는 기록을 알 수 있다"
'무자년은 고려 예종 삼년으로 윤관이 비를 세운 해와 일치한다' 지금의 그 비석은 중국에 의해 사라져 버렸습니다.
“高麗之境” 4글자가 씌여져 있었던 그 비석을 꼭 찾아 보고 싶습니다.
(운영자 추가게시 자료)
(고려의 동북쪽 경계는 함경남도가 아니라 두만강 북쪽 700리 밖)
지금까지는 고려 동북 경계는 함경남도 정도로 배워 왔으나 고려사와 고지도는 두만강 북쪽 700리 임을 나타내고 있다.
고려사 권46에 의하면 서북쪽은 압록강 동북쪽은 선춘령을 경계로 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선춘령에 대해서는
중앙도서관 소장 한 61-77(고지도) 및 규장각 소장 고 4709-89-2(고지도)에 의하면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림을 보면 위쪽 원안에 선춘령(지금은 윤관비로 표기)이 있으며 아래 원이 두만강 표시이다
서북쪽 압록강을 현재의 압록강으로 볼수 있지만 만주원류고 신라항목과 고려사 137권 철령위 및 고려사 42권에 동령부 기록에 의하면 현재의 요하가 압록강으로 불리웠음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