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오시면
요 21;15-23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에 비해 열정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마16:16)라고 고백했으며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자신은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자신 있게 장담했던 사람이었습니다(마26:33).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고난당하시는 주님 앞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하고 맹세를 하였습니다(마26:70,72,74).
그 후 베드로는 끊임없이 죄책감에 사로잡혀 냉대와 고통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토록 믿고 사랑했던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사실 때문에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의 얼굴조차 뵐 면목이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본 후에(요20:19-21)
갈릴리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베드로를 주님께서 찾아가셔서 만나 주셨고
새로운 사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 버렸던 처음의 직업으로 다시 돌아간
베드로를 다시 부르시기 위해 주님은 베드로를 실패와 낙심의 현장으로
찾아가셔서 모든 것을 고쳐 주셨습니다
베드로의 시선을 교정하셔서 주님의 제자로 세워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세상에서 살면서
영적
근시,
원시,
난시,
백내장,
녹내장,
사시로
주님의 모습과 사명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의 도우심과 말씀으로 영적 시선을 교정하여
다시 새롭게 주님의 사명을 베드로처럼 잘 감당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첫째로; 주님이 오시면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본문 15절 “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베드로는 얼떨결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함으로써 반석이라는
의미의 이름에 걸맞는 행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책망하거나 자격을 박탈하거나 나약함을
들추어내지 아니하시고 깨닫고 회개하여 새로운 소명을 주셨습니다.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에 걸쳐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라는 뜻입니다.
또한 세상 사람이나 부귀영화나 모든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뜻입니다.
사랑하느냐의 헬라어 ‘아가파오’는
하나님의 사랑,
신적인 사랑,
숭고하고 헌신적인 사랑,
완전히 이타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베드로가 실수는 하였어도 아직도 베드로에 대한 애정과 열심과
소망을 가지고 계신 예수님의 사람을 귀하에 여기시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실수하는 즉시 다 실망하고 버리신다면
주님 앞에 설 사람과 쓰임 받을 사람은 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일꾼들의 모든 내용과 능력과 축복은
하나님 사랑 안에 다 포함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 때에 우상 숭배와 수많은 유혹과
교만에 빠져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됩니다.
하나님 사랑의 기초와 뿌리가 깊이깊이 박혀 있을 때에는
어떤 고난과 유혹의 바람과 지진이 흔들어도
당당히 그 자리에 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거나 부족하면 떠나고 멀어지고 결별하게 됩니다.
사랑 없는 일과 말과 모임은 의미와 가치도 없고 불행하고 지옥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배우고 갖추어야 할 것이 많지만
먼저 예수님을 가장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면 다 참고 견디고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순종할 수 있고 순교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곳에서의 시선을
예수님을 사랑하는 시선으로 교정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둘째로; 주님이 오시면 주님의 양을 먹이게 됩니다
본문 17절 “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랑을 확인하신 후에 주님의 양을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대상이며 동시에 연약한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도를 양으로 비유한 말씀이 많습니다(요10:1-6).
주님의 양을 먹일 자격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대한 신앙은 자신의 구원의 조건입니다.
주를 향한 사랑은 주의 일을 맡을 조건입니다.
사랑은 조건이고 사명은 사랑을 충성케 합니다.
어린 양을 먹이고 치라고 하셨습니다.
먹이는 것을 포함해서 기르고 인도하고 광범위한 목자의 책임 전체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사랑을 세 번 확인하였고
동일한 사명을 세 번 반복하여 주셨습니다.
분명한 의미가 있습니다.
세 번 부인과 질문과 사명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함으로서 실축된 명예를 회복해 주는
의미가 있고 또한 교회에서의 베드로의 지도권이 다시 위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따뜻한 교육과 배려와 회복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요란하게 책망하고 망신을 주고 상처를 주시는 주님이 아니라
인간의 부족과 연약함을 아시고
품어 주시고
치유해 주시고
안고 가시는
부드럽고 따뜻한 목자장 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크게 팔을 벌리시고 너 같은 사람까지도
다 오라고 부르시고 사랑해 주시는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예수님도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이나 명령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양이 아니라 예수님의 양입니다
교회와 성도는 예수님께 속하여 있습니다.
인간의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의 양을 먹여야 하는데 게으르고 무능력해서 양들을 때리거나 굶기면
책임을 물으실 것이고 직분을 파면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양들을 잘 먹이고 보호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양들에게
말씀과
사랑과
은혜와
음식과
좋고 신령한 것들을 먹여야 합니다.
주님의 양들이 건강하고 기쁘고 행복하도록 끝까지
주님의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모든 양들은 내 양이 아니며 때리고 굶기는 것이 아니라
잘 먹여야 하는 예수님 같은 귀한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의 양들에게 교정하여 잘 보호하고
먹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셋째로;주님이 오시면 주님을 따르게 됩니다
본문 22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베드로가 초대 교회설립에 맹활동을 한 후 노후에
끌려가서 순교할 사실을 가장 확실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이 살며 또한 같이 죽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순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요한은 어떻게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냉정하게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의 장래사에 베드로가 관여할 것 없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는 베드로의 길이 있고 요한에게는 요한의 길이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모든 길은 그리스도께로 통하는 것입니다.
자기 일을 태만히 하고 있는 사람이 남의 일에 흥미를 느끼는 법입니다.
베드로의 길은 순교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으나
요한의 길은 산 제사(롬12:1)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가 많습니다.
남에 대한 관심과 부러움과 시기가 많습니다.
요한에 대하여 묻는 베드로에게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라고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의 호기심을 막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사명에 충실하기만 하면 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예수님께 달려 있고
모두는 각각 독립적인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길은 각각 달라도 하나님 나라에서 함께 만나는 것입니다.
각자 땅 끝에 있다가 천국 중심에서 반가이 만나는 운명입니다.
나의 욕심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의 시선에서
주님의 길에 시선을 교정하고
고정하는 베드로 같은 일꾼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결론으로;
거북이와 토끼의 경주에서
토끼는 경쟁의식으로 거북이를 상대했으나
거북이는 토끼와의 경쟁이 아닌
결승점을 목표로 삼았기에 결국은 승리하였습니다.
세상이 복잡합니다.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릅니다.
시선을 수 없이 빼앗깁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우리의 주님을 사랑하고 양을 먹이고
주님을 따르는데 시선을 교정하고 고정하는
베드로와 같은 최고의 일꾼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