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신록의 계절 5월이 되었다.
세월호의 참사로 온 세상이 침울과 분노로 들끓고 있지만,
계절의 변화만은 어김없이 변하고 있다.
따스한 햇볕을 받아 푸른 녹차의 여린 잎이 새움을 티우고,
여린 녹차잎을 따서 좋은 녹차를 만들려는 녹차농가의 일손은 바쁘다.
한국에 전통차가 들어온 것은 멀리 김수로왕비 허황옥이
서기 42년 무렵에 인도의 차를 들여왔다고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통일신라 흥덕왕때(828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씨를 받아온 때를 그 기원으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기록에는 없는 또 다른 차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한국에는 자생차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기원이야 어떻든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까지는 차를 무척이나 아끼고 애용했다는 기록들이 있다.
유학인 성리학이 통치이념이 된 뒤로는 전통차는 차츰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조선 말에는 완전히 그 명맥이 끊기기까지 하였다.
그런 전통차가 되살아난 것은
1800년대 다산 정약용이 해남으로 귀양을 가면서 차를 가까이 하고
사찰에서 그 명맥이 남아있던 차를 그가 애용하면서
호까지 다산으로 바꾸고 많은 차에 대한 글을 남기면서부터다.
당시 다산과 교류하던 초의선사가 한국의 차를 노래한 동다송이 저술되면서 그 명맥을 이어왔다.
하지만 그것으로 한국의 차가 되살아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양반유생들은 전통차를 멀리하고 술을 가까이 하였기에
전통차는 산업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근근히 명맥만을 유지하였다.
이후 세월이 흘러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광복이 된 후로는
우리의 전통차대신 일본의 녹차가 도입되어 산업화가 시작되었다.
3공화국 때 제주에 대형 차밭이 조성되었고,
본래 차나무가 많던 보성 하동 고창 부안에는 야생차를 되살리는 운동도 일어났다.
그리하여 차는 한 때 많은 애호가도 생기고
차를 마시는 차도구와 다기들이 문화인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하였지만,
그도 잠시일 뿐 차는 이제 커피에 몰려서 설자리를 찾지못하고 서서히 시들고 있다.
불가에서는 부처님께 차를 바친다.
가장 훌륭한 음료로 차를 바치지만 요즈음에는 차대신 정안수를 바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있다.
제가 지금 청정수를 삼보전에 바치오니 기쁘게 받아주소서!
바로옵건대 감로차(다)로 변하게 하옵소서!
청정수 보다는 차가 더욱 더 귀하고 좋은 음료라는 것이다.
다산이 선언했던 차에 대한 칭송도 다시금 생각난다.
"음다흥 음주망(飮茶興 飮酒亡) 차를 마시면 흥할 것이고, 술을 마시면 망한다"
이제 또 다른 선언이 나와야 할 것 같다.
차와 커피를 비교하는 그 어떤 선언이 나올 것 같다....
오랫동안 우리의 좋은 음료문화의 최고로 쳤던 차가 과연 어찌 될 것인지 궁금해진다.
커피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차의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녹차의 최대산지인 전남 보성을 다녀와 그 아름다운 전경처럼 차산업도 번창하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