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024년 물량까지 예약 꽉 찼다”… 해저케이블 특수 누리는 LS전선
LS전선 올해 매출액 5조원, 영업익 2000억원 전망
LS전선 동해공장에서 생산한 해저케이블이 배에 선적되고 있다./LS전선
이윤정 기자
입력 2021.06.29 06:00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통상 8월 초 하계휴가 기간엔 공장 전원을 모두 차단하고 설비에 대한 예방 정비와 개선 작업을 실시하는데, 올해는 이 기간에도 최소 50%는 가동해야 할 것 같아요. 에너지 패러다임이 바뀌는 그 중심에 LS전선이 서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전 세계가 2050년 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도입을 서두르는 가운데, 케이블 종합 솔루션 기업 LS전선이 에너지 전환 정책의 수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해상풍력 에너지가 탄소중립을 이룰 수 있는 핵심 수단으로 꼽히면서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는 해저케이블 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 2007년 해저케이블 사업 방침을 발표한 이후 14년 만에 LS전선이 결실을 보고 있다.
◇ 세계는 해저케이블 선점 전쟁 중… LS전선에 ‘러브콜’ 쇄도
지난 25일 찾은 LS전선 동해공장은 동해항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었다. LS전선 관계자는 “해저케이블 공장은 대부분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며 “수천, 수만톤(t)에 달하는 케이블을 옮길 수 있는 방법은 선박 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동해공장은 면적이 22만㎡(약 6만6500평) 규모로 총 3개동에서 해저케이블과 선박용·차량용 등 산업용 특수 케이블을 생산한다. 해저케이블 생산능력만 봤을 땐 세계 네 번째 규모로 알려져있다.
해저케이블 공장에 들어서자 케이블을 감아 보관하는 대형 턴테이블을 볼 수 있었다. 턴테이블은 500t에서 1만t의 케이블을 감을 수 있는데, 동해공장 내에는 다양한 크기의 턴테이블 30개가량이 있었다. 케이블 길이가 60㎞만 돼도 무게는 4000t에 육박한다. LS전선 관계자는 “케이블을 끊김 없이 얼마나 길게 생산할 수 있는가가 기술력”이라며 “LS전선은 최대 150㎞의 케이블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LS전선 동해공장 직원들이 턴테이블에 해저케이블을 감고 있다./LS전선
각 턴테이블마다 어떤 케이블이 감길지 미리 배치되는데, LS전선은 이미 턴테이블의 배치를 대부분 끝냈다. 해저케이블 수주가 물밀듯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LS전선은 대만 정부가 2025년까지 진행하는 1차 해상풍력 사업의 초고압 해저케이블 공급권을 모두 따낸 것을 비롯해 네덜란드(1340억원)와 바레인(1000억원), 미국(660억원) 등 해외에서 총 3000억원이 넘는 대형 수주를 따냈다.
국내 해저케이블 역시 LS전선이 싹쓸이하고 있다. LS전선은 지난해 11월 세계 최대 해상풍력 디벨로퍼인 오스테드와 5년간 초고압 해저케이블 우선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향후 오스테드가 국내에 건설하는 해상풍력단지 해저케이블은 모두 LS전선이 공급하게 된다. 전남 완도와 제주 간 약 90㎞를 잇는 해저케이블의 생산·시공도 LS전선이 수행한다.
LS전선에 이처럼 수주가 몰려드는 이유는 해저케이블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데 비해 생산 가능 업체는 극히 소수이기 때문이다. 해저케이블 생산은 고난이도 기술력을 요구하는 데다 특수 설비가 필요해 진입장벽이 높은 산업이다. 이 때문에 해저케이블 제조·시공 산업은 넥상스(프랑스), 프리즈미안(이탈리아), 스미토모(일본), LS전선 등 4개 기업이 과점하고 있다.
실제 해상풍력 발전소에 해저케이블이 들어가는 시기는 2025년 전후이지만 생산업체가 워낙 적다보니 세계 각국이 해저케이블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 LS전선 관계자는 “2023년 물량은 이미 끝난 지 오래됐고, 2024년 물량도 거의 다 찼다”며 “이전까지는 지중케이블이 매출액과 영업이익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올해를 기점으로 해저케이블의 실적이 지중케이블을 제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 프랑스서 문전박대 당한 LS전선, 이제는 유럽과 어깨 나란히
지금은 전 세계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LS전선이지만, 한때 기술력 부족으로 인한 굴욕을 겪기도 했다. 지난 1997년 제주시와 전라남도 해남 간 101㎞ 구간 초고압 해저케이블 사업이 대표적이다. 당시 LS전선의 해저케이블 기술력은 걸음마 단계라 프랑스 기업 넥상스가 수주를 따냈다. 한국전력 (24,850원 ▼ 100 -0.40%)은 유지 보수 이슈가 발생하면 국내 업체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 LS전선이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도록 넥상스 실사에 동행을 요청했다. 그러나 LS전선 관계자들은 넥상스 공장 앞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 2005년 제주 해저 송전 사업에서는 실적과 공장 등 설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입찰이 어려울 것이란 핀잔을 듣기도 했다.
LS전선은 2007년 해저케이블 사업 확대를 확정하고 2009년 동해공장을 준공, 본격 가동을 시작했다. LS전선의 해저케이블 실적은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동해공장이 위치한 강원도의 수출액 중 전선 부문으로 유추가 가능하다. 올해 1~5월 강원도 전선 수출액은 전년 대비 386.1% 늘어난 1억138만달러(약 1144억원)를 기록했다. LS전선의 전체 실적 역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지난 2017년 3조5268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4조8315억원으로 3년새 37%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1146억원에서 1649억원으로 44% 증가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LS전선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5조원, 2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LS전선은 해저케이블 호황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동해공장 내 남는 부지를 활용해 설비를 더욱 확대할 예정이다. 당장 국내만 봐도 정부는 2030년까지 13GW의 해상풍력 설비를 설치할 계획이다. 해외에서는 LS전선이 아시아 물량 확보에서 유럽 기업 대비 우위를 보이고 있다. LS전선 관계자는 “해저케이블 가격은 선박 운임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유럽 공급에 있어서는 LS전선이 유럽 내 기업보다 15%가량 비싸다”며 “유럽 해상풍력 시장은 포화 상태가 머지 않았고 아시아가 시작 단계인만큼, 거리가 가까운 LS전선이 유럽 기업 대비 가격경쟁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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