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7주간 금요일
예레미야 26,1-9 마태오 13,54-58
2024. 8. 2. (역사가) 에우세비오
주제 : 하느님의 기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큼은 세상에서 착하고 선하게 산다고 말합니다. 그런 소리에 관하여 우리가 굳이 반박해야 할 일은 아니지만, 악하게 사는 사람조차도 자기 자신을 드러낼 때는 착하게 산다고 말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가리켜서 착하게 산다고 하는데 무슨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자기의 삶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그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결과를 남길 때가 문제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슬프게 산 사람이었다고 흔히 말합니다. 그가 삶에서 선포한 것이 실제로 그의 말대로 실현된 좋은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독서에서 그런 모습의 한 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성전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셨습니다만, 예레미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태도에 있습니다. 마치도 예언자가 커다란 잘못을 한 것처럼 사람들이 반응했다는 것입니다. 예언자가 자기의 사명을 다 마쳤을 때 성전에서 못된 말을 듣습니다. ‘너는 죽어야 한다’는 소리였습니다.
한 사람이 거침없이 다른 사람을 ‘너는 죽어야 한다(!)’고 거침없는 소리를 말할 때, 과연 그 말을 듣는 사람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그리고 실제로 예레미야 예언자는 그들의 소리에 따라 힘겨운 삶을 맞이하게 됩니다.
복음에서 들은 말씀은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셨을 때, 사람들에게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다는 안타까운 소리를 말합니다. 동네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경직돼 있었을까요? 그들은 어찌하여 하느님의 소리를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안타깝고 아쉬운 소리를 합니다만, 현실적으로 세상에서 신앙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돌이킨다면, 이 말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웬만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잘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말하는 사람 앞에서도 자기의 생각과 사정을 말합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변할 생각을 하지 않고 하느님이 너무 심하게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말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행동할 바는 한쪽으로 정해집니다. 그런 사람에게 미래는 어떤 모양으로 다가오겠습니까? 하느님의 소리를 협박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과연 나는 하느님의 뜻이라고 선포되는 소리를 어떻게 듣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