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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사회성의 진화는 유전적 반응”…사회생물학의 등장, 지식사회 파장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에드워드 윌슨 ‘사회생물학’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사회생물학의 논리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이론과 방법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론적 근거이기도 하다. 자기 복제자는 기나긴 길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이제 그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며, 우리는 그들의 생존기계다.”
전후에 쓰인 과학 관련 저작들 중에서 이 구절만큼 유명한 말도 찾기 어렵다.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1976)에 나오는 표현이다.
1970년대 세계 지성사에서 주목할 사건의 하나는 사회생물학의 도전이다. 사회생물학은 이제까지 인문·사회과학의 탐구 대상이었던 인간의 사회적 행동에 대한 생물학적 해석을 내놓았다. 사회생물학을 이끈 이들이 바로 도킨스와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1929~ )이다. 대중적으로는 <이기적 유전자>가 더 유명하지만, 지식사회 안에서 사회생물학의 등장을 알리고 격렬한 논쟁을 일으킨 저작은 윌슨의 <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Sociobiology: The New Synthesis)>(1975)이다.
찰스 다윈으로부터 시작된 진화론을 인간 연구에까지 확장시켜 보려는 <사회생물학>의 야심만만한 도전은 <인간 본성에 대하여>(1978), <통섭: 지식의 대통합>(1998)으로 이어졌다. <사회생물학>, <인간 본성에 대하여>, <통섭>은 서구사회에서 자연과학자들은 물론 인문·사회과학자들, 나아가 교양 시민들에게까지 널리 읽힌 저작들이다. 사회생물학의 논리와 방법론에 대해 불편해하는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하지만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지난 40년 동안 지식사회는 물론 세상을 뒤흔들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회생물학의 도전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두 버전이 있다. 하나는 1975년 출간한 저작이고, 다른 하나는 1980년 대중적 개론서로 나온 축소판 저작이다. 우리말로 옮겨진 것은 축소판이다. 축소판이라 하더라도 이 책은 3부 26장의 800쪽이 넘는 방대한 저작이다. 사회생물학이란 모든 사회적 행동의 생물학적 기초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회생물학>은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진화론의 시각에서 사회생물학이란 무엇인지를 설명(제1부)하고, 의사소통·공격·순위체제 등 동물의 사회적 행동 메커니즘을 서술(제2부)한 다음, 군체성 무척추동물, 사회성 곤충, 인류를 제외한 영장류 등의 진화와 행동을 주목(제3부)한다. 3부 마지막에는 사회생물학에서 사회학까지 인간의 사회적 행동에 대한 윌슨의 견해가 덧붙여진다.
이 저작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사회성의 진화가 생리학적 관성의 구속 아래 이뤄지는 유전적 반응이라는 것이다. 윌슨에 따르면, 생물은 그 자신을 위해 살고 있는 게 아니다. 생물의 주요 기능은 유전자를 재생산하는 데 있고, 따라서 생물은 유전자의 임시 운반자로서의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윌슨의 견해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타성에 대한 해석이다. 이타적 행동이란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갖는 개체를 남기려는 적응 활동인 동시에 혈연자와 공동체를 구하려는 집단 선택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윌슨은 사회생물학의 논리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이론과 방법론이 될 수 있고, 결국 인문·사회과학이 생물학의 소분야로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과감한 주장을 내놓는다.
이러한 주장은 사회과학으로부터 거세게 비판받았지만, 윌슨은 문화·성·종교 등을 포함한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생물학적 현상으로 파악한 <인간 본성에 대하여>를 발표했다. 나아가 이러한 월슨의 사유는 생물학을 바탕으로 한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통합을 제시한 <통섭>으로 나타났다.
■생물학과 사회과학의 격렬한 논쟁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출간되자마자 격렬한 논쟁에 휩싸였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생물학적 기초 위에 이뤄진다는 주장은 사회과학으로부터 거센 반론을 낳았다. 윌슨의 견해는, 도킨스와 비교해 환경의 요인을 상대적으로 더 주목하지만, 기본적으로 생물학적 환원론 또는 유전자 결정론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환원론과 결정론은 제도와 문화가 미치는 영향을 부정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게 반론의 핵심이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은 유전자 못지않게 교육을 포함한 사회적 요소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생물학 안에서도 사회생물학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윌슨의 하버드대 동료인 생물학자 리처드 르원틴과 스티븐 제이 굴드가 이끈 ‘민중을 위한 과학의 사회생물학 연구 그룹’은 이 비판을 주도했다. 이들은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미국의 이민제한법이나 독일의 인종차별주의 부활을 시도한다고 격렬하게 비판했다. 이에 윌슨은 자신이 인간을 유전과 환경 간의 중간에 있는 존재로 파악한다고 반박하고, 사회생물학이 현상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함의를 갖고 있지 않다고 반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1990년대에 진행된 인간 게놈 프로젝트와 스티븐 핑커, 로버트 라이트 등으로 대표되는 진화심리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과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등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21세기에 들어와 진화심리학은 점점 더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40년 동안 사회생물학은 인간이란 누구이고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질문과 연구에 패기만만한 문제제기를 해왔다. 사회학 연구자인 내가 보기에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인 동시에 사회학적 존재다. 인간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도 아니며, 사회와 문화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도 아니다. 인간의 삶은 각기 독자적인 사회생물학과 사회과학 모두의 이해를 여전히 요구하는 셈이다.
■한국어판 저작은
윌슨의 <사회생물학> 축소판은 이병훈 전북대 명예교수와 박시룡 한국교원대 교수에 의해 2권으로 나뉘어 우리말로 옮겨졌다. 사회생물학을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선 문제적인 베스트셀러인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다.
■이병훈, 국내 첫 소개…‘윌슨의 제자’ 최재천, 대중적 저작으로 관심 높여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였다. <사회생물학>, <이기적 유전자>, 스티븐 로즈 등의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가 번역되면서 사회생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사회생물학의 도입과 연구에는 <사회생물학>을 번역한 이병훈(전북대 명예교수·생물학)과 윌슨의 제자인 최재천(이화여대 석좌교수·생물학·국립생태원 원장)의 기여가 컸다. 특히 최재천은 전문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동시에 윌슨의 <통섭>을 번역하고, <개미 제국의 발견> 등 대중적 저작들을 발표함으로써 사회생물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난 20여년 동안 우리말로 출간된 사회생물학 관련 저작들은 적지 않다. 사회생물학을 둘러싼 논쟁 또한 다양하게 진행됐다. 그 가운데 특별한 주목을 받을 만한 저작은 김동광(과학저술가·고려대 연구교수), 최재천, 김세균(서울대 명예교수·정치학)이 편집한 <사회생물학 대논쟁>이다. 이 책은 2009년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이화여대 통섭원, 한국과학기술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심포지엄 ‘부분과 전체: 다윈, 사회생물학, 그리고 한국’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모았다.
이 저작은 사회생물학을 둘러싼 세 주제를 다룬다. 사회생물학은 환원주의인가, 생물학으로 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가, 한국에서 사회생물학은 올바로 수용됐는가의 문제가 그것들이다. 뜨거울 수밖에 없는 이 주제들에 대한 발표를 맡은 이들은 사회과학자인 김환석(국민대 교수·과학기술사회학), 이정덕(전북대 교수·문화인류학)과 자연과학자인 장대익(서울대 교수·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중환(경희대 교수·진화심리학), 이병훈, 김동광이었다. 여기에 최재천과 김세균이 ‘서문’과 ‘후기’를 덧붙였다.
이 책에 실린 논문들 가운데 특히 흥미로운 것은 문화의 생물학적 이해를 둘러싸고 상반된 견해를 펼치는 이정덕과 전중환의 주장이다. 이정덕은 문화가 갖는 다양성을 사회생물학은 설명하지 못한다고 보는 반면, 전중환은 문화가 기본적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에서 비롯된다고 파악한다.
책의 편집자들 역시 서로 다른 견해를 내놓고 있다. 최재천은 문화가 결국 긴 유전자의 팔 안에 있다는 주장을 제시한다면, 김세균은 사회과학자답게 생물학적 환원주의는 배격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보인다. 사회생물학을 둘러싼 논쟁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