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표범의 여인 / 문혜진
낯선 여행지에서 어깨에 표범 문신을 한 소년을 따라가
하루 종일 뒹굴고 싶어 가장 추운 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섹스를
나누다가 프러시아의 스켄헤드에게 끌려가 두들겨 맞아도
좋겠어 우리는 무엇이든 공모하기를 좋아했고 서로의 방에
들어가 마음껏 놀았어 무례함을 즐기며 인스턴트 커피와
기타의 선율 어떻게 하면 인생을 망칠 수 있을까 골몰하며
야생의 경전을 돌려 보았지 그러나 지금은 이산의 계절
우리는 춥고 쉬 지치며 더, 더, 더, 젊음을 질투하지 하지만
네가 잠든 사이 나는 허물을 벗고 스모키 화장을 지우고
발톱을 세워 가터벨트를 푼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하이힐을
벗어 던지고 사로잡힌 자의 눈빛으로 검은 표범의 거처에
스며들 거야 단단한 근육을 덮은 윤기 흐르는 검은 벨벳, 흑단이
전율이 폭발할 때까지 이제 동굴보다 깊은 잠을 자야지
도마뱀자리 운명, 진짜 내 목소리를 들려줄까?
- 문혜진 시집 <검은 표범 여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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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효하는 검은 암표범처럼…문혜진 시집 <검은 표범 여인>
반항과 불온의 시인 문혜진씨가 <검은 표범 여인>을 펴냈다.
1998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시단에 나온 그는 26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 나긋나긋한 서정성을 깔아뭉개는
도발성과 연·행 구분이 없는 파격을 즐기는 건 여전하다.
첫 시집 <질 나쁜 연애>에서 "이 여름 낡은 책들과 연애하느니/
불량한 남자와 바다로 놀러 가겠어"라고 내뱉었던 당돌한
모습도 변하지 않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씨가 문 시인을
"한국 시사 최초의 여성 로커"라 지칭한 대로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팔뚝에 표범 문신을 새기고 열창하는 록가수를 떠올리게
한다. 시집을 열자마자 여성의 욕망이 직설적으로 표출된다.
욕망은 검은 표범의 야성에 기대어 더 거칠고, 더 순수해진다.
문명이 욕망을 야만과 불결로 여겨 싹을 쳐버리는 것과 반대다.
시인은 시집에 야수를 떼로 풀어놓아 인간의 억눌린 본능을
되살리고 있다. 시집에는 표범을 비롯해 시베리아 호랑이 등
맹수가 자주 출현한다. 인간의 살을 달게 씹는 악어, 백상아리,
검독수리가 등장해 피에 주린 이빨과 눈을 번뜩인다.
'시베리아의 밤'은 호랑이가 발산하는 절대 공포를 매혹적으로
표현하고, '백상아리 레퀴엠'은 야성적인 죽음을 찬양한다.
인간이 야생동물의 사나움을 동경하는 이유는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서다. 표범, 사자,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쓰는 일은
힘에 대한 욕망이자 열등감의 표출이기도 하다.
문 시인의 시에서는 야생을 꿈꾸지만 차마 문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몸부림이 읽힌다. 여성의 욕망을 힘주어 표현하는
행위 역시 여성의 본능만 죄악시하는 현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그의 새된 목소리는 현대인을 불쾌 속으로 몰아넣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달래는 기능을 한다. "내 시가 마음껏 울부짖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작은 위로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시인의 말과 맥이 통한다. 최승호 시인은 "그의 시는
방어적이기보다는 공격적이고 도발적"이라면서 "대담한 성적 표현,
억압적인 제도에 반기를 드는 불온한 진술을 구사하는 시는
미지근하거나 밋밋하지 않다"고 평했다.
/ 심재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