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 소설12: 4일 동안, 고양이와 혈투
그의 팔자에는 천고(天孤)가 있다. 그는 많은 사람 속에 둘러싸여서 지내나 항상 외로움에 휩싸여 산다. 항상 그의 자리는 망망대해 속의 외딴 섬이었다. 그의 옆에 사람이 있으나 그 사람과 사이에는 큰 바다가 있어 서로의 마음에 다리가 이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만든 그의 자리 밖의 바다는 현실적인 것이 아니고 그의 대뇌 속에 그 지도가 있어서다. 그의 마음이 그의 자리 밖에 바다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분명 마누라가 있으나 그가 술에 취했을 때는 그에게 마누라는 없다. 그에게 형제자매가 있으나 그가 취했을 때는 이웃만도 못하다. 부모님은 일찍 세상을 떴다. 그가 취하면 아무도 그의 곁에 가지 않는다. 그가 술이 취하면 눈이 돌아간다. 초점을 잃는다. 광기가 눈 가득 고인다. 그는 답답하다며 창문을 연다. 전축을 튼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가 방안 가득 울려 퍼지다가 열린 창을 타고 넓은 공간을 퍼져서 밤공기를 울린다. 이웃집 아저씨가 창문을 드르륵 열고 잠을 설쳐서 분함을 터뜨리는 목소리로 꽥 지른다.
“잠 좀 잡시다!”
그는 얼른 창문을 닫는다. 전축의 볼륨을 올린다. 손 벽을 치며 방안을 돈다.
“산유화야 산유화야!~~~~~~”
옆집에서 벽을 두드린다. 시끄럽다는 뜻이다. 그는 난청증이 있어서 그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다. 그리고 전축 소리를 더 높인다. 술이 취해갈수록 그의 난청증은 심해간다. 신경이 마비되어 가는가 보다. 이 정도 되면 그의 마누라는 구석진 골방으로 들어가 두터운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어설픈 잠 속에서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를 오락가락 한다.
한밤중, 새벽 2~3시 쯤 되었을 거다. 찌르릉! 찌르릉! 찌르릉! 현관문 초인종 소리가 밤공기를 울린다. 마누라는 초인종 소리를 듣고도 자는 척 가만있다. 안에서 기척이 없자. 복도에서 여럿이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난다. 그의 방에서는 여전히 꿍짝! 꿍짝! 입으로는 소리를 내고 두 손으로 손 벽을 치며 이제는 앉아서 몸을 좌우로 흔들며 신이 나서 초인종 소리도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듣지를 못한다. 그래도 그 마누라는 꼼짝 않는다. 복도에서는 더 많은 동네 사람이 모였다. 일부는 긴 장대를 들고 그의 창문 앞으로 가서 문을 막 두드린다.
“어떤 놈이 남의 집 창문을 두드려!!!!!!!!!”
“야! 니가 이 동네 전세 냈냐!”
“며칠 째냐!”
“지금 아이들도 잠을 못 잔다. 이 미친놈아!”
“뭐가 시끄럽다고 ...이렇게 조용한 소리를 가지고 야단이여...”
그리고는
“야 문 열어! 여기 경찰도 와 있다!”
“경찰입니다! 문 열어 주세요!”
현관문 밖에서 굵직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그의 귀에 들어간다. 그가 일어나 마루로 나와 현관문을 열자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의 멱살을 잡는다.
“왜 이래요?”
“야! 술을 쳐 먹으면 곱게 자라 응!”
“여기서 술 안 먹는 놈 다 나와 봐! 술 좀 먹고 흥 좀 돋우는데 왜 이리 야단들이야!”
“야! 아줌마는 어디 갔니?”
그가 비틀거리며 게슴츠레한 검붉은 얼굴로 마누라 방을 열자 없으니까 골방으로 간다.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자는 척 하는 마누라를 막 흔들어 깨운다.
“일어나봐 웬 사람들이 몰려와서 자네를 나오라고 하네.”
마누라는 잠에서 깬 척 하고 그의 손에 이끌려 현관문 앞으로 나온다. 그녀를 본 사람들이
“아니 정말 어쩌면 그럴 수가 있어요. 이웃들은 잠을 하나도 못 자는데 그 속에서 자고 있어요?”
안하무인으로 멸시하는 눈초리를 발사시키던 반장 아주머니가 그녀를 아래로 팍 뭉개듯이 막말을 뱉어낸다. 누군가가
“미친놈 마누라가 미친년이겠지. 그러니 끼리끼리 살지..” 하고는 침을 바닥에 탁 뱉는다.
분위기가 살벌해지자. 경찰이 그를 붙잡고 파출소로 끌고 간다.
“그래 가자 파출소로 가서 따지자!”
술에 절여져 있는 그의 대뇌도 이런 상황이 되니 마비되려다 교감신경의 아드레날린 분비로 비상체제로 돌아가면서 주변을 경계태세로 주시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술이 확 깨버리고 정신이 번쩍 든다. 그는 파출소에 들어오자 그의 광기어린 얼굴이 정상을 되찾는다.
“제가 술만 먹으면 꼭지가 돌아서 엉뚱한 짓을 합니다. 앞으로는 절대 안 그럴 터이니 한번만 용서 해 주십시오.”
그는 자진해서 반성문을 쓰기 시작한다. 그와 경찰을 따라 파출소에 왔던 사람들이 그의 돌변한 태도에 어리둥절해서는 그냥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술만 안마시면 샌님처럼 얌전하신분이 왜 그렇게 마시고는 우리들을 잠도 편하게 못 자게 하는지 모르겠네.”
“그러게 말일세.”
“지금 몇 시오?”
“5시오.”
“완전히 날 샜네.”
그는 파출소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다가 은행나무 아래 까만 얼룩점이 있는 하얀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살금살금 다가가서 안는다. 고양이 목에 리본이 있는 끈이 매어진 것을 보니 집을 나온 고양이다. 그래서 어슴푸레한 새벽빛에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안긴다. 며칠을 굶었는지 배가 딱 붙었다. 사람의 품이 그리웠나 보다. 아니 사람 냄새가 그리웠겠지. 그는 고양이를 안고 들어온다. 목에 예쁜 리본이 있고 고양이털이 더러운 것을 본 마누라는 얼른 주인이 나타나기 전에 제자리에 두고 오라고 야단이다.
“아니야! 마실 술도 없고 이 야옹이와 지낼 거다.”
고양이 얼굴에 그는 뽀뽀를 한다. 그의 입술은 안주거리가 묻어서 지저분하다. 그는 고양이를 안고서 그의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안주거리를 고양이에게 준다. 고양이는 너무도 배가 고픈지 두부와 돼지고기와 김치를 넣고 끓인 찌개를 먹는다.
그는 고양이와 한 이불속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둘은 잘 잤다. 그런데 그 다음날 그는 이불을 들고 나와 빤다. 고양이가 오줌을 쌌단다. 그날 밤에는 고양이가 문을 박박 긁었다. 그는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창문도 열지 않는다. 문을 조금 열고 그의 방을 들여다보니 고양이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는 상처투성이다. 고양이가 밖으로 나가고 싶어 말리는 그의 얼굴을 할퀸 것이다.
“고양이 갖다 버려요?”
그는 발바닥을 보여 준다. 고양이가 온통 할퀴어서 피가 흐른다.
“고양이 내가 키울 거야.”
그는 단호하게 자기를 난폭하게 할퀴고 있는 고양이를 품에 꽉 껴안고 있다. 고양이와 함께 덮은 담요에는 고양이 똥이 묻어 있다. 그래도 좋단다.
그와 고양이와 동거한지 4일째 되는 날
“나비야! 나비야!”
애타게 부르며 동네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는 모녀가 나타났다.
“아주머니! 혹시 나비가 고양이 이름이에요?”
“네 하얀 바탕에 까만 얼룩점이 있고 목에 리본을 매었어요.”
“이리 와 보세요. 우리 아저씨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4일 전에 고양이를 가져 왔어요.”
‘고양이 집 나간 지 일주일이에요
그녀는 모녀를 데리고 그의 방문 앞으로 데리고 가서는 손짓으로 문을 두드리라고 하고는 안에다 대고서
“고양이 주인이 오셨어요. 문 열어요?”
“문 열면 고양이가 나가. 이 고양이는 내 고양이야.“
“나비야! 나비야”
“나비야! 나비야!”
모녀가 부르는 소리를 고양이가 안에서 듣고는 방문을 요란하게 발톱으로 긁는다.
“야옹~ 야옹~야옹~”
방안에서는 나가려는 고양이와 그의 사투가 벌어진다.
“아저씨! 우리 나비 내 보내 주세요?”
한 시간을 방문을 사이에 두고 고양이 주인과 고양이의 애절한 사랑이 오고 간다.
“나비야! 그러니까 왜 집을 나갔어?”
“야옹~ 야옹~~~~~~~~~~”
그는 방문을 연다. 나비가 방문 앞에 있다가 잽싸게 날라서 주인 딸의 품에 안긴다. 고양이 몸은 오물이 더덕더덕 붙어서 말라비틀어지고 눈에는 눈곱이 가득하고 발톱이 모두 망가졌다.
방안은 아수라장이다. 냄새가 지독하고 사방에 고양이 똥과 오줌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의 얼굴과 목 가슴 그리고 손과 발 팔과 다리 심지어 배와 등까지 고양이 발톱에 할퀸 자국에서 피가 흐르고 어떤 자국은 딱지가 졌다.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아주머니가 그의 몰골과 방의 난장판을 보고 혀를 찬다. 고양이가 오줌과 똥을 싸면 그 위에 새로 다른 이부자리를 깔고 해서 여러 겹의 이브자리가 방안 가득 하다. 옷도 흩어져 있다.
“아저씨! 이 고양이는 밖에 나가서 대소변을 해요. 그렇게 방에 가두어 두면 고양이가 대소변을 못하니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세상에나 고양이가 생똥을 다 쌌네 그려.”
딸은 고양이를 안고는 재빨리 현관문을 나서며
“엄마! 나 동물병원에 갔다 올게.”
“아저씨도 병원에 가셔서 치료 받으세요.”
아주머니는 한심하고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그를 처다 보며 마누라에게 동정어린 눈으로 정말 불쌍하다는 눈치를 내 쏘며 현관문을 나선다.
마누라는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사서 방에 깔아 놓은 그의 이브자리를 모두 버린다. 그는 모두를 버리지 못하게 하고 몇 개는 비눗물을 풀어 담가 놓는다. 그는 씻을 수도 없다 상처가 심해서 물이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아서다. 창문을 활짝 열고 냄새제거제를 뿌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냄새가 난다. 창문으로 새로운 공기가 방안으로 들어오자 그의 냄새감각이 피로현상에서 벗어나 냄새를 다시 맡게 된다.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가 지독하다면서 그냥 목욕을 한다. 그가 목욕을 하자 그의 마누라는 약국에 가서 지혈제와 연고를 여러 개 사온다. 피가 흐르는 상처에는 지혈제를, 피가 멎은 상처에는 연고를 바르고 딱지가 앉은 자리는 그대로 둔다.
“정말 앞으로는 술을 마시지 않아야지. 고양이가 그렇게 난폭한 줄 처음 알았어.”
마누라는 아무 말도 않고 그냥 미소만 짓는다. 그의 마누라는 그의 실수를 그대로 둔다. 어쩜 그가 실수 하도록 유도 하는지도 모른다. 그가 실수를 하는 것이 바로 그를 휘어잡는 방법이니까. 술이 깬 후에 그는 자기 실수를 알고 부끄러워한다. 그리고 얼마 동안은 그 실수를 만회하려고 고분고분해진다.
林光子 20070922
삽화: 이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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