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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내가 같이 있는 순간에 충일감을 느낍니다”
작가 한강 씨가 처음으로 에세이를 펴낸다. 지난 98년 미국 아이오와 대학 주최의 국제창작프로그램(IWP)에 참가해 만난 세계 18개국에서 온 시인, 소설가들에 대한 이야기다. 봄 햇살이 완연한 4월 중순, 경희대 앞 카페에서 작가를 만났다.
한강(34) 씨와 너무 오랫동안 통화를 해서인지 막상 만나니 낯선 사람 같지 않았다. 아버지 한승원 씨와의 대담, 에세이 청탁 등 소소한 것들로 전화를 했을 때, 작가는 늘 한결같은 목소리로 “죄송해서 어떡하죠?”라며 미안해했다. 섭외를 거절당하면서도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아서 기자는 그녀가 착할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카페 앞에서 처음 마주친 작가의 모습은 무척 앳된 느낌이 들었다. 생머리에 화장 안 한 얼굴, 갈색 배낭을 멘 모습이 아들을 둔 엄마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6월말에 출간될 에세이는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가제/열림원)이란 여행 에세이다. 지난 1998년 여름, 첫 장편소설 ‘검은 사슴’을 낸지 열흘 만에 작가는 혼자 아이오와시티 향했다.
3개월 동안 체류하며 아이오와 대학 주최의 국제창작프로그램(IWP)에 참가했다. 세계 18개국에서 온 시인, 소설가들과 기숙사 8층에 함께 묵으며 자유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작가는 한 달쯤 이곳저곳을 여행한 뒤 돌아왔다.
“월간 ‘샘터’에 1년 반 정도 연재하던 것을 묶었습니다. 한동안 망설였어요. 시간이 흘러 생각과 감정의 틀 자체가 변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쓰거나 쓰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까요. 여러 날, 여러 마음 끝에 결국 책으로 묶게 되었습니다.”
첫 에세이를 쓴 느낌을 물었다.
“소설은 자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아닌 데 반해 산문은 자연인으로서의 제 모습이 드러나잖아요. 편했어요. 연재할 때 사람들로부터 ‘소설과 느낌이 참 다르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힘들게 읽지 않아서 좋다고 하더군요.”
작가는 “신변잡기적인 얘기들로 묶은 에세이라면 쓰지 않았겠지만 주제가 있는 것이어서 펴냈다”고 말했다.
“제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소설을 통해서 드러내야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옛날 원고를 묶은 것은 밝고 담담한 그때의 제 모습이 싫지가 않은 이유에서입니다. 두고두고 자신에게 위로가 될 것 같아서요.”
이 책에는 작가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인디언 여인 살리달, 유쾌한 불평쟁이 에란디스, “This is life”를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팔레스타인 출신 작가 마흐무드, 미얀마에서 온 의사 출신 작가 페이민 등등. 사람들은 그녀를 ‘스위트 강’이라고 불렀다. 누군가는 그녀에게 새 같다고 했다. “얼굴도, 걸음걸이도, 목소리도 새 같아.”
◆ 사진설명: 한강씨 |
정말 귀중한 것은 숨쉬는 공기와도 같았던 것들
이번 에세이에는 잔잔한 일상 속에서 느끼는 작가의 단상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20년 가까이 살았던 수유리를 떠나 회기동의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하지만 곧 도시의 겨울이 얼마나 삭막한가를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흙을 밟을 수 없어서 봄이 빨리 와서 아파트 뒤편의 나무들에
새잎이 돋기를 기다렸다.
수유리에 있을 때는 오래된 집에다 바퀴벌레가 나왔고, 수압이 낮아 세탁기를 돌리려면 두 시간 가까이 걸렸고, 빨래 널 데도 마땅치 않아서 하루바삐 그곳을 빠져나오고 싶어했다. 하지만 걸어서 2분이면 큰산에 이어지는 숲이 있었고, 약수를 길어 먹을 수 있었고, 흙을 밟을 수 있었고, 나무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정말 귀중한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우리는 좀더 쾌적한 집과 좀더 많은 수입, 좀더 나은 생활을 동경하며 살아가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곳에 있는가 보았다. 정말 귀중한 것은 값나가고 어려운 것들이 아니라, 숨쉬는 공기와도 같았던 것들, 가장 단순하고 값나가지 않은 것들, 평화, 우정, 따뜻함 같은 것들이었나 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귓바퀴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던 이 진부하기 짝이 없는 진리가 어느 날 가장 생생하고 낯선 메시지가 되어 가슴에 꽂힐 때, 그때 우리는 나이를 먹어 가는 것인지.”
한강 씨는 ‘서점을 여는 것’과 ‘작은 라디오 방송국을 여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거기서 매주 금요일 밤 소설과 시 낭송회를 여는 것.
“누구에게나, 실현 가능하지는 않으나 생각하는 것만으로 즐겁기 때문에 꿈꿔보는 일들이 한두 가지쯤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서점을 하나 여는 것이다. 생각해둔 장소는 인사동, 경인미술관 골목이다. 골목 깊이 들어가도 상관없지만, 반드시 1층이어야 한다. 규모는 보통 동네 서점의 두 배에서 세 배쯤이면 적당하겠다.
문학, 예술, 인문 서적들을 주로 진열하고 중고등학교 참고서는 팔지 않을 것이다. 대신 아이들과 엄마들을 위한 코너를 갖출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매주 금요일 밤 8시 30분부터 열리는 소설과 시 낭송회다. (…) 간혹 내 꿈은 부풀어서, 작은 라디오 방송국을 여는 데까지 뻗어가기도 한다. 녹음실과 성우, 진행자 몇 명과 있으면 되는, 새벽부터 밤까지 문학작품을 읽어주는 라디오 채널이다.”
작가는 그 작은 도시에서, 서툰 영어로, 연고도 전혀 없던 자신이 그 생활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공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와 오빠가 모두 작가인 문인 가족
한강 씨는 1993년 ‘문학과 사회’ 겨울호를 통해 시를 등단,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소설가로서의 삶을 산다. 95년 발간된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통해 한국 문단의 주목받는 젊은 작가 대열에 합류했다. 이후 98년 장편 ‘검은 사슴’은 일간지 출판 담당기자, 출판사 편집자, 서점 관계자 등이 선정한 ‘올해의 좋은 책 30’ 안에 포함되었다. 다음해에는 중편 ‘아기부처’로 제25회 한국소설 문학상을 받았다.
“작년 1월 ‘그대의 차가운 손’ 펴낸 후 좀 쉬었어요. 아이를 낳고는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 봐주는 분이 오전에
잠깐 오면 그때 경희대 앞 카페에서 원고를 써야 할 정도였어요.”
“작업실이 없느냐”는 질문에 “어느 곳에서든, 몰입하면 상관없다”며 “여유 있는 사람들이야 (작업실이) 따로 있겠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다. 요즘은 아이가 좀 자라서 집에서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한강 씨는 문단의 대표적인 문인 가족이다. 작가 한승원 씨가 아버지,
한동림 씨가 오빠다. 남편 홍용희 씨도 경희사이버대 문예창작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다.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궁금했다.
“어릴 때 아버지가 힘들어 보이고 피곤해 보였습니다. 전 절대로 글을 쓰고 싶지 않았죠. 사춘기 지나면서 내 안에서 올라오는 의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다보니 글을 쓰게 됐습니다. 너무 절실해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쓰는 거죠.”작가는 아버지의 부지런한 글쓰기 태도를 보고 배운 점이 많다고 했다. 새벽부터 눈을 뜨면 늘 아버지의 타이프라이터 소리가 들렸다는 것. 자신도 원래 새벽잠이 없어 일찍 일어나 글을 썼는데, 아이를 낳은 후 리듬이 깨졌다고 한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갔을 때나 잠잘 때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써야 하기 때문.
“막상 소설을 쓰다보니까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분량을 쓰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전 감정의 기복이 있으니까 며칠씩 쉬기도 해요. 예전에는 1시간 쓰고 2시간 자고 1시간 쓰고 2시간 자는 생활을 며칠씩 하면서 글을 쓰기도 했어요. 몰입하다보면 살이 쭉 빠졌죠. 만약 제가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그런 식으로 쓴다면 2007년까지 계속 써야 할 겁니다. 요즘은 건강 때문에 조절하지만, 그러면 굉장히 행복할 것 같아요. 소설과 내가 같이 있는 순간에 충일감을 느껴요. 아무 것도 바랄 게 없는 상태….”
장편을 쓸 때는 소설과 함께 산다고 생각한다. 1년 반 동안 취재하고 1년 반 쓰고 6개월 동안 탈고하고, 꼬박 3년 반이 걸린다.
“다른 건 안 그런데, 글쓰는 데만은 완벽주의적인 면이 있어서, 거의 문장을 다 외울 때까지 씁니다. 원고 마감이 없다면 끝까지 매달리는 스타일입니다. 다듬는 과정이 무척 길고 힘듭니다. 첫 장편소설의 경우 책이 나왔을 때 읽지를 못했어요. 읽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았습니다. 석 달 후 조금 객관화가 되자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난 후 삶이 변화
한강 씨는 아들 홍효(4) 군(애칭은 ‘새벽’)을 직접 키웠다. ‘피붙이가 키워야 좋을 것 같아서’ 란 이유에서였다. 아이를 낳은 뒤 건강이 좋지 않아 병치레를 많이 했다. 하지만 아이는 작가의 삶 자체를 변화시켰고, 책임감을 느끼게 했다. 작가는 지난해, 곁에 누워 방실방실 웃고 있는 새벽이의 두 눈을 들여다보며 썼다는 어른을 위한 동화 ‘내 이름은 태양꽃’을 펴냈다. 올해는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을 펴낼 예정이다.
올해 등단 10년째가 되는 한강 씨. “절실한 것을 쓴다”는 작가의 말을 듣고 돌아서는 길에, 한치 흐트러짐 없는 문장과 탄탄한 구성, 읽고 난 후의 강렬한 느낌 등, 작품이 훌륭한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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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작가 소설 참 좋죠... 그의 모든 문장을 달달 외워도 좋을 만큼... '슬픈사슴'은 정말 대단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전 어지간해서는 소설을 두번 읽지 않는데 이 작품만은 따로 사서 줄을 쳐가며 읽을 생각입니다. 예술이죠, 예술!
저는 [그 여자의 열매]를 읽을 때, 온 몸이 가려워서 혼났습니다.[여수의 사랑]에도 상실감에 상처 받은 사람들이 주로 나오는데요.감정이 배제된 건조하면서도 팍팍한 문장이 아주 마음에 들었지요.
'그 여자의 열매'... 저도 정말 잘 읽었습니다. 단편 중에 드물게 그 깊이를 보유하고 담담하면서도 놀랍도록 서정적이면서도 깊은 생에 대한 관조를 함유한...으...'여수의 사랑'은 후반부로 갈수록 지나치게 어두워서 읽는데 좀 고생했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글이 어떻게 발전되고 바뀌었나 알수있는 좋은 작품이었죠.
헉.내 여자의 열매 아닌가요? 제가 알기론 내 여자의 열매로 아는데...아닌가요?;;
맞소.[내 여자의 열매]
학교 선생님한테 '내 여자의 열매'빌려 봤는데 그때 좀 충격이어서; 아무튼 잘은 모르겠는데 한강님 우리학교 오실 거 같아요- 문예특활반에 작가가 직접 와서 지도해주는게 이번 교육부에서 새로 만들었는데 저희 문예반 선생님께서 신청하셔서 하게 됬거든요^ㅡ^ 한강님이 가장 유력하죠- 아아 좋아>ㅅ<
저 역시 요즘 작가들 중에서는 이 '한강'씨를 가장 좋아하죠.아니 그녀의 작품밖에 읽을 거리가 없다고 생각할 만큼 요즘 작품들 수준이 좋지 않기도 해요.동갑내기에 대한 연대감을 떠나서 역시 집안물이 다르다는 우스운 생각도 들어요.작가 한승원님도 한때는 꽤 좋은 작품이 내놓으셨으니까요.이 집안에 기대가 커요.
연배가 비슷하다는 점 외에, 성이 같은 '한'씨라는 공통점 외에... 흠...그 다음은 공통점 없군. 요즘들어 제목이나 이름을 외울때 암기력이 부족해서... 학교교육의 지나친 암기위주 방식의 역작용이군요. 흐음... '그 여자의 열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