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감독의 경질소식을 전해 들은 축구계 인사들이 한목소리로 대한축구협회를 비판하고 나섰다.
열번 잘하다가도 한두번 실수하면 실업자로 전락하는 것이 지도자의 운명이라지만 단 한번의 실패로 경질시킨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월드컵 4강 진출로 가뜩이나 대표팀 감독 자리를 맡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협회가 모든 책임을 감독에게만 지우는 것은 한국축구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프로축구의 고위관계자는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군 사람을 하루 아침에 역적을 만든 꼴이다. 한번의 실수를 빌미로 마녀사냥식으로 자리에서 내쫓는다면 과연 누가 대표팀 감독을 소신을 갖고 맡겠는가"고 말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더 철저히 준비하자는 차원에서 경질했다"는 기술위원회의 입장에 대한 축구계의 입장을 들어봤다.
▲지도자〓차경복 성남 감독은 "한마디로 말도 안된다. 아시안게임 부진에 대해 기술위원회는 왜 책임지지 않느냐"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프로감독들이 한결같이 박감독을 옹호하는 데는 그동안 국내감독에 대한협회의 홀대에 대한 피해의식이 컸기 때문이다. 조윤환 전북 감독은 "박항서 감독도 히딩크 감독 때와 같은 지원이 있었다면 좋은 결과를 냈을 것"이라며 "아테네올림픽까지 임기를 보장했다면 끝까지 지켜봐 줬어야 했다"고 말했다.
프로감독들은 당분간 프로감독 중에서 대표팀 감독을 맡기겠다는 협회의 계획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했다. 최순호 포항 감독은 "프로팀 감독 중 성적이 좋은 사람을 대표팀 감독에 앉히겠다는 발상은 구태의연한 생각이다. 현재 국내감독 중 대표팀 감독을 맡겠다고 쉽게 나설 사람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선수〓2002년 월드컵 때 박감독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선수들도 이번 처사에 불만을 터트리기는 마찬가지다.
월드컵 대표팀의 맏형이었던 황선홍(34·전남)은 "과연 협회가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줬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이운재(29·수원)는 "감독님뿐 아니라 선수들 모두 이번대회 우승을 위해 노력했는데 아쉬울 뿐이다"고 말했다.
▲기술위원회〓기술위원회는 지난 18일 "박감독이 경험 부족으로 선수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고, 상황대처능력이 떨어졌다"고 경질 이유를 밝혔다. 아테네올림픽의 철저한 준비를 위해서는 검증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감독을 선임했던 자신들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기술위는 조만간 신임감독 영입에 나설 계획이며 국내감독들이 고사할 경우 외국인감독 영입도 고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