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내부서도 ‘반도체법’ 비판 “기업에 좌파정책 강요”
[美 반도체 보조금法 논란]
“보조금 준 기업에 비용 전가 모순”
“美, 프렌즈쇼어링 내세우면서
IRA로 동맹국에 등 돌려” 지적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과학법 보조금을 받는 기업에 초과이익 공유를 비롯해 사실상 영업기밀 공개까지 요구하자 미국 내에서도 비판이 일고 있다. 중국에 대항해 이른바 ‘가치 동맹’ 간 공급망을 구축하는 프렌즈쇼어링을 내세우면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비롯한 각종 법안으로 동맹국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설을 통해 “미 반도체과학법이 법에도 없는 기준을 들이대며 기업에 좌파(progressive) 정책을 강요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며 “(사회주의적인) 프랑스 산업정책이 미국에 왔다. 정부가 기업에 돈을 줘서 정부가 원하는 정책을 실행하게 만들려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아시아보다 40% 이상 비싼 생산비용을 만회하고자 보조금을 지급한다면서 기업에 비용을 전가시키는 것은 모순”이라고도 지적했다.
미 상무부가 밝힌 반도체 기업 보조금 지급 기준인 일정 수준 이상 초과이익 공유를 비롯해 ‘공장 근로자에게 노조 제시 임금 지급’ ‘보육시설 설치’ 등은 바이든 행정부의 좌파적 노동정책을 실행하는 도구라고 꼬집은 것이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반도체 기업이 성공하려면 (보육시설 설치로) 여성 근로자에게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WSJ는 “러몬도 장관은 사회주의자가 아니지만 ‘승진’을 원하는지 민주당 좌파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기업이 성공을 위해 누구를 뽑을지는 기업이 결정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야당인 공화당에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과학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공화당 소속 프랭크 루커스 하원 과학위원장은 “이번 조치는 반도체 생산 시급성보다 바이든 행정부의 노동 어젠다를 부각하려는 시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 상무부의 과도한 보조금 규제는 가뜩이나 높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비용을 더욱 높여 반도체과학법 취지를 훼손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반도체과학법으로 보조금을 지급해도 아시아보다 44% 높은 생산비용과 노동 숙련도 부족 등으로 반도체의 아시아 의존도를 줄이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미 일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이날 현대자동차그룹이 테슬라에 필적하는 전기차 경쟁력을 갖췄지만 미국에서 생산된 차에만 보조금을 준다는 IRA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고 진단했다. 현대차가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고 있는 조지아주 팻 윌슨 경제개발부 장관은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법은 미국에 투자하고 미국 시민을 고용하는 회사에 불이익과 모욕을 준다”고 비판했다.
동맹국 기업의 중국 수출이나 투자는 통제하면서 자국 자동차 기업 포드가 중국 배터리 기업 CATL과의 기술 제휴로 IRA법을 우회해 보조금을 받으려 하자 공화당을 중심으로 “해당 계약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뉴욕=김현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