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기사(1)-표류(7)
글쓴이 그라테우스
해가 서서히 떨어져갔고,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붉은 어떤 것이 바다로 가라앉는 것 같은 모습. 뭘까. 저것은. 저 태양이라는 것은.
해가 저무는 것을 보며, 예전부터 궁금했던 태양에 관한 것을 생각해 보았다. 너무나도 멀리있고, 너무나도 뜨거우며, 너무나도 자애로운. 세상의 것들에게 생명의 원천인 빛을 나눠주는 빛의 덩어리. 신관들은 신이라고 하기도 하고, 마법사들은 마나의 원천이라 지껄이기도 하고, 어떤 밤하늘 관찰하며 헛소리 해대는 것들은 우주에 있는 거대한 열 덩어리라고도 하고.
내가 아는 태양에 관한 정보를 떠올려 보았지만 어떤 것도 나의 태양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하긴, 감히 어찌 인간이 저 신이나 다름 없는 존재인 태양을 정의내릴 수 있다는 것인가.
마법으로 조차 갈 수 없는 곳에 있는 저 위대한 빛의 결정체를. 만일 저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밝혀진다고 해도, 나는 태양은 그래도 신이라 믿을 것이다. 나에게 태양은 일종의 신이다. 세상에 빛을 내려주며, 열을, 온기를 내려준다. 저 태양이 없었다면 신전에서 말하는 신이 우리를 창조한 그 순간 우리는 빛을 보지도 못하고, 어둠에 파묻혀서 추위에 떨며 죽어갔을 것이다.
신전에서는 저 태양조차도 신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신빙성이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저런 대단한 것을 만들어낼 정도의 능력이라면 신은 우리를 이렇게 약한 존재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먹어야 하고, 배설해야 하고, 나약하고, 이기적이고, 욕심 많고, 악에 대한 동경까지 있는 이 여린 생명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관들이 말하는 대로 신 자신의 형상을 본따서 만들었다면. 뭐, 태초의 원죄를 지어서 그 옛날의 성스러움을 잃었기에 이리 변했다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태양에 대해서 하던 생각을 중간에 끊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리에 들러붙은 모래들이 우수수 떨어졌고, 그보다 더 많은 모래가 다리에 붙어 있었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별로 거치적거리는 것도 아니니까.
꼬르륵
배에서 재촉이 들려왔다. 검무를 추기 전에 신호를 보냈다가 내가 그것을 잊고 있던 바람에 이제서야 다시 소식을 보낸 것이었다.
배에 뭘 넣긴 넣어야 겠지. 그리고 그 대상은 생선일테고 말이야.
사냥감을 정한 후, 이미 해가 잠겨버려서 어둑해진 밤 바다로 나아갔다. 오전에 얻은 나의 애검을 들고. 오늘 얻긴 했지만 아까전의 그 검무가 있은 후부터는 나의 애검이 된 녀석을 살짝 쓰다듬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다른 명검들처럼 웅웅거리거나 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단지 익숙한 것을 대하는 듯한 느낌만이 남았을 뿐.
검을 만지작거리며 걸어 도착한 곳에서는 어떤 거대한 검은 괴물로 변해서 희생양을 기다리고 있는 괴수로 변화한 바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이 조금 더 세게 불었고, 그 바람에 밀려서 파도가 조금 더 세졌다.
내 발을 감싸려 드는 검은 물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이 내 무릎 정도까지 차는 곳으로 갔다. 간혹 강한 파도가 쳐서 허리를 넘게 물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그런 것으로 나에게 지장이 될 수는 없으리라.
아무리 나의 시력이 좋다고는 해도 이런 어둔 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엘프와 드워프들은 이것보다 더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보인다고는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런 종족상의 이점을 받을 수가 없는 인간이었기에 이런 상황에서 눈으로 사물을 확인하는 것은 확실히 무리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시력을 제외하고도 다른 감각이 있었고, 그것을 지금 사용하려던 참이었다.
잠시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어떤 움직임이 느껴지기를. 한 순간 어떤 움직임이 느껴졌고, 내 손은 그것과 동시에 섬전같이 움직였다. 그리고 다시 물 밖으로 나온 내 목검의 끝에는...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았다.
제기! 이런 황당할 데가!
나의 감각이 잘못 되었을리가 없다고, 나의 실책을 부정하며 나는 다시 손을 움직였고, 그 때마다 나의 검의 끝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젠장! 도대체 왜?!
몇 번더 목검을 움직인 후에야 나의 감각이 잘못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았지만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결론만이 났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강한 파도가 몰아쳤고, 그 때문에 무방비 상태였던 나는 하마터면 뒤로 쓰러질 뻔 했다.
젠장할 놈의 파도! 가만히나 있으면 방해나 되지 않지! 왜 걸리적 거리는... 이거였나.
파도의 흔들거림 덕분에 나의 실책을 겨우 알게 되었다. 분명 나의 감각이 잘못 되지는 않았다. 분명 나는 이 근처에서 움직이는 어류의 움직임을 잡아 내었고, 그것은 정확했다. 다만 내가 잡아낸 움직임이라는 것이 파도를 타고 약간 변화한 위치라는 것을 제하고는.
이런 단순한 것조차도 생각하지 못하고, 엉뚱한 것을 의심하고 있었던지라 나는 애먼 바닷물을 목검으로 내려쳤다.
촤아아악!!
그러자 내 앞에 있던 물들이 내 검의 움직임에 휩쓸려 하늘로 치솟았고, 순간적으로 나의 앞에는 물이 없는 빈 공간이 생겨났다. 그리고 바로 그 공백은 주변의 물들이 밀려들어서 없어졌고, 하늘로 치솟았던 물줄기가 후두둑 하며 물 위로 쏟아졌다.
하아, 다시 해보자. 이번에는 되겠지.
바닷물을 내려친 후 그것에는 바로 신경을 끄고, 다시 감각을 집중했다. 그러자 역시나 느낌이 전해져왔고, 파도의 움직임을 따라서 나의 목검이 바다를 찔렀다. 그리고 손 끝에 전해져 오는 느낌. 생선으로 추정되는 것이 몸을 요동치며,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손 끝의 감각으로는 이미 몸이 목검에 관통당한 상태였기에 그것은 빠져나가지 못했고, 수면 위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30Cm는 족히 될 것같은 생선이 목검 끝에서 퍼덕이고 있었다. 살아 나가려는 그것의 움직임에 나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이것이 낚시를 하는 작자들이 흔히 말하는 손맛 이라는 건가? 확실히 그 치들이 미칠만도 하군. 끝에 따라오는 이 미묘하면서도 약간 무거운 느낌. 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것과 내가 느끼는 것은 아마도 약간 다르겠지. 역시 내 쪽이 받는 느낌이 더 약할 것이고. 그들은 낚시대로 낚으니까 목검으로 낚는 나보다 더 진한 느낌을 받을 테니말야.
검 끝에서 퍼덕이는 생선을 바라보던 중 옆으로 또 하나의 생선이 지나가는 것이 나의 감각에 잡혔고, 생선이 아직도 퍼덕이고 있는 목검이 바닷물을 다시 찔렀다. 그리고 그 끝에는 두 마리의 생선들이 퍼덕이며 놓아달라고 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두 마리면 나 하나가 먹을 만치는 되는 건가. 이정도 크기의 생선이면 그럭저럭 먹을만 하겠지. 어차피 그리 많이 먹을 생각도 아니니까.
더 이상 식량이 필요치 않다는 판단을 내렸고, 나는 바로 몸을 돌려서 백사장으로 향했다. 드디어 오늘의 첫 음식을 먹는 것인가. 완전 하루를 굶은 셈인데 그래.
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오늘의 첫 식사를 한다는 생각에 미묘한 느낌을 받으며, 백사장으로 당도했고, 생선들은 집을 만들고 남은 작은 나뭇가지에 꿰여서 모닥불 위에 굽혀지는 신세가 되었다.
약간 습기가 남아 있는 건지 모닥불에서 연기가 올라 하늘로 승천하듯이 날아갔다. 그 연기가 나의 눈을 스쳤고, 그 덕분에 눈에서 약간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으음, 조금 맵군.
내 눈을 건드린 쾌심한 연기가 사라질 무렵 생선들은 노릇노릇 익었고, 나는 그것을 잘 먹어 주었다. 소금이 조금 있었다면 좋았을 지도...
다시 학교.
아버지가 모뎀을... 그리고 잘못 하면 글을 쓰는 것이 늦어지는 불상사까지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흐음. 되도록이면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겠지요.
그럼, 다음 화에서 무사히 뵙도록 하겠습니다.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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