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을 탓해 주십시오. 일의 고리를 잠시 끊고 떠나긴 했습니다만, 쌓인 숙제가 여간 아니었습니다. 이제사 짬을 내 몇자 적습니다.
편안하고 조용한 여행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굳이 일행들이 이것이 ‘끝’이 아님을 강조한 것도 이번 여행에 대한 미련이 남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긴긴 고독 끝의 탈출이었습니다. 사는게 그렇잖아요. 맨날 눈뜨면 깡충깡충 뛰어다녀야 하고, 뭐 죽고 살 일이라고 창자가 땡기도록 핏대올리고, 그러나 제 성질 못이겨 때론 술먹고 헤롱거려도 보고, 학학거리고 동동거리며 사는게 대부분 비슷하지 않습니까.
일상에서의 짧은 해방이라고 하는게 적당하겠군요. 사실 돌아보면 우린 늘 고독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정 내 속에 것을 토해낼 대상을 찾기가 그다지 쉽지 않거든요. 정서적으로 굶주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늘 뭔가를 갈구하며 빈 들판에 서있는 해바라기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이란게 그런거 아닌가요. 정을 찾기에는 너무 광막하고, 고고하게 살려니 세상은 너무 거칠고, 착하게만 살려니 구리고, 청빈을 구하자니 너무 잔인한 면이 있거든요. 꼭 탁구대 모서리에 쥐어박힌 탁구공 마냥 사는게 우리 해넘이 30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처마끝에 매달린 올망졸망한 메주들처럼 동류의식에 대한 그리움을 놓치기가 싫습니다.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경산의 시지에 있는 할인마트로 모이기로 한 시각이 1시였는데 30분도 채 안넘기고 약속된 멤버가 다 왔습니다. ‘한국인의 못된 버릇’을 감안하면 기적같은 일이죠. 더구나 동희 여사는 마지막 수업 한시간을 빼먹는 성의(?)까지 보여주었고. 가장 멀리서 간 본인 조차 5명 중 4등을 했으니 이 행사가 예사 ‘단풍놀이’가 아님을 짐작케 했습니다.
밥 때가 된 것 같아 칼국수를 시켰는데, 다들 영 면발이 땡기지 않는 듯 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다섯 중 셋이 전날 밤 전야제를 거하게 했다는 군요.
우정은 초상집에서 밤을 반쯤 샜나 봅니다. 강여사는 감정섞인 송별회를 했다 하고, 저 또한 못박아둔 주말 스케쥴을 지키고자 전날 밤 12시까지 일하고 두시간 정도 마셨던 터였습니다.
황태에다 조갯살까지 듬뿍 든 칼국수 국물이 해장국을 능가했지만 속에서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마빡에 육수를 뽑아가며, 걸죽한 국물을 허기가 가시리 만큼 먹었습니다.
사실상 기대감 넘치는 여행이라도 막상 가는 것보다 더 재미난 것이 장보는 일입니다. 커다란 장바구니를 끌고 다니며 이것저것 주워 담으면 본 프로그램들이 머리 속에 죄 그려지거든요. 따라서 장을 잘 본다는 건 그만큼 다음 프로그램에 대한 준비를 한다는 거고, 그렇다 보면 그 이후도 술술 풀릴 게 틀림없습니다.
어른이 다섯, 아니 철이까지 오면 여섯에 애들이 둘. 입이 이쯤 되면 제법 먹게 됩니다. 최소한 8인분씩 두끼에, 안주도 좀 있어야 하니 기본 식량은 든든해야겠지요.
삼겹살 세근에, 큰놈으로 닭 한 마리, 포장된 버섯전골, 쌀한봉지, 파, 오이, 고추, 마늘, 된장, 소금.................... 물론 쥬스, 식수에다 ‘주’자 들어가는 음료(?)도 몇병 챙겼습니다.
그럭저럭 3시가 넘었습니다. 요즘은 해가 짧아 3시만 돼도 맘이 급해집니다. 지금 서둘러봤자 오늘 산행은 물건너갔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맘이 편해지더군요.
[아름다운 밤이여]
경산에서 대구를 벗어나 88고속도로로 들어서는데만도 1시간이 훨씬 넘어 걸렸습니다. 게다가 88고속도로란게 무늬만 ‘고속’이지 영 ‘실속’은 없는 놈이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폼나게 달려보지도 못하고 시들시들 가자니 짧은 해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고령지나 합천, 거창, 함양............ 어둑해진 촌길이라 눈 똑바로 보지 않으면 초행에 오리알(?)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드디어 왔습니다. 성치 않는 몸(?)에 먼길 왔으니 노곤하기도 할 겁니다. 보따리를 풀어 냉장고에 넣고 바로 삼겹살을 구웠겠지요. 맛이요? ‘쥑인다’는 말보다 더 괜찮은 표현이 뭐가 있겠습니까? 맛이 어찌 대단했던지 허겁지겁 9시 넘어 도착한 박철군은 말라 비틀어진 고기일 망정 서너 점이나 집어먹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멀쓱하게 눈만 꿈뻑이며 앉아있는 철을 위하여 ‘도야지 대신 닭’으로 맛을 보여줬지요. 제법 주기(酒氣)도 오르고, 배도 부른데다 이쁜이(?)들이 주위에 즐비하니 또 하나 필요한게 있었습니다.
“거, 함양서 ×같이 번 돈, 지리산에서 정승처럼 써보지?”
이러한 누군가의 제안에 박철군이 노래방을 쏘기로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 총에 기꺼이 맞기로 했고.
60년대 이후 한국사회를 풍미했던 노래들이 거지반 나왔을 성 싶습니다. 사회 나와 십수년 만에 많이들 배웠더군요. 하기사 예전 같으면 소주 한잔 놓고 밤새 ‘제사’를 지냈을 박철군까지 말술을 마다않고 받아마셨으니..... 우리는 386의 기개를 충분히 확인했습니다.
애 둘을 데리고 간 김동희 여사도 미련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기분을 내보려 시도를 했습니다만, 둘째 관이의 견제가 심해서 우리 남정네들로서는 아쉬웠지만 엄마를 돌려주고 말았습니다. 강여사는 남자 넷에도 결코 밀리지 않는 노하우(?)와 배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흔들림없는 그녀의 플레이에 녹아 남정네들은 스멀스멀 꼬리를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리산의 밤은 첩첩한 뱀사골 만큼이나 깊고 길었습니다. 별이 후두둑 쏟아지는 소리를 밤새 들었으니까요.
몇시에나 깨어났을 것 같습니까. 9시가 훨씬 넘었습니다. 멀리서 오신 여학우들을 배려해서 밤늦게 추가로 방 하나를 따로 내지 않았더라면 아침에 헤벌레한 꼬라지들을 서로 보고 보였을 것이니 그 얼마나 민망한 노릇이 되었겠습니까?
아침에는 닭죽이 있어 든든했습니다. 어젯밤 소주안주로 먹어치운 닭고기 삶은 국물에 먹다남은 죽을 넣고 끓였는데 뻑적지근한 속을 달래기에는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시간은 벌써 11시를 넘어서고 있는데, 이것저것 챙기고 길을 떠나려니 마음이 바빴습니다. 광식군의 잽싼 설거지 솜씨가 아니었더라도 그날 스케쥴은 정상대로 풀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실상사에서 들이킨 물맛은 별났습니다. 뜰앞에 어정거리다 물 한잔 들이키고 나온게 고작이었지만, 허허로운 여행길에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우리를 태운 광식의 지프는 산이 높을수록 골이 깊을수록 힘을 발휘했습니다. 힘이 넘쳐 주체를 못하는데 앞뒤로 막힌 길이 한이 될 뿐이었지요. 결국 한시간 이상을 쉬엄쉬엄 올라갔지만 노고단은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눈이 모자라리 만치 펼쳐져 있을 구름바다. 백두대간 그치는 곳에 모여있을 수많은 봉우리가 눈에 밟혔지만 우리의 발길이 너무 짧았나 봅니다.
늘 이런 식이지만 꿩을 대신할 닭을 찾아야 했지요. 돌아나오는 길에 ‘정령치’로 가는 이정표가 눈에 띄어 그리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치’자가 든 걸로 봐서 고갯마루임에 틀림없는데, 경험으로 보면 휴게소 정도에다 가까운 등산코스도 있을 법 하거든요. 실상사 약수 한사발로야 어찌 지리산의 큰 정기를 맛보았다 하겠습니까.
뱀사골을 끼고 도는 가파른 도로가에는 역시나 눈부신 단풍이 때깔을 보여주었습니다. 절정을 조금 지난 듯 했지만, 목마른 이들이 한나절 자연의 허기를 달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단풍이 그렇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그림같은 자연의 칼라를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아 옵니다만 나중에 사진에 나온 그것은 반의 반 맘에도 안 차거든요.
우리 사무실의 사진찍는 직원한테 이런 타박을 한 적이 있었드랬습니다. “볼 땐 괜찮았는데 거 사진 참 볼 것 없구만” 하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카메라라도 사람 눈보다 더 좋은 카메라는 없음다. 사진 탓하지 마십시오. 보는 사람 눈이 너무 좋은 겁니다.”
어찌 필설로, 그림으로, 사진으로야 사람의 감정까지 옮겨주겠습니까? 단풍의 색깔만 욕심이 난다면 그림책을 보면 되지, 뭐하러 꾸역꾸역 사람들 틈바구니를 비집고 돈들여 산을 찾겠습니까? 그 사이에 동희 여사는 차에서 내려 빨간 아기단풍 몇장을 주워 챙겼습니다.
정령치휴게소에서 동동주와 도토리묵, 짜장면 (짜장면은 지리산 휴게소에 매우 안어울리는 메뉴 같아 다들 투덜거렸음) 으로 요기를 하고, 건배를 하고...........
30분 남짓 걸릴 만한 고리봉 가는 길에는 행글라이더 매니아들이 비행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같이 간 인섭이, 관이에게는 색다른 볼거리가 되었을 듯도 합니다.
예까지 와서 정봉이든 잔봉이든 봉우리 한번 안밟고 가는게 아쉬워 영문도 모르고 올라갔는데, 이놈의 ‘고리봉’이 예사봉이 아닌 거 있죠? 뭐 야산 같은 것이 우습게 보였는데, 줄을 잡고 올라가지를 않나, 손을 땅에 붙이고 네발걸음을 할 일이 없나, 그래도 용감무쌍하게 돌진하는 윤씨네 두 형제가 기특했습니다.
첫댓글 감기몸살이 났습니다. 어제 포악한(?) 선배의 호출이 있어 귀가가 늦었습니다. 맨날 이 짝입니다. 고로 사진(.......)을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저녁, 위에 공지한 방법대로 사진 올리겠습니다. 뭐 이런 넘이 다 있노??? 엽기시럽은 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