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사이, 그들만의 정의는 완성됐다”
— 국민을 잊은 엘리트 사법 카르텔의 자가면죄부
우리는 오랫동안 배운 사람들의 말을 믿어 왔습니다.
대법관의 기고는 곧 정의의 기준이고, 고위 판사의 판단은 법의 해석이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믿음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전직 대법관의 글 한 편이 보여준 것은 ‘사법 개혁’이 아니라 ‘권한 유지’였습니다.
국민의 권리와 고통은 뒷전이고, 사법 엘리트의 체면과 이익이 우선이었습니다.
국민의 현실은 '사법 정의' 바깥에 놓여 있었고, 그들은 그 안에서 서로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법과 정의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전직 대법관 김선수는 2025년 6월 12일 기고문을 통해 대법관 증원과 재판소원 제도 도입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하급심 강화'를 강조하며 대법원의 양적 확대보다는 질적 심리를 위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발언은 일견 타당하게 보일 수 있으나, 실제 국민이 마주하는 사법 현실과는 여전히 큰 괴리가 있다. 그의 말이 진정한 개혁 의지를 담고 있다면, 왜 재판의 불투명성과 사법 엘리트의 자기식구 감싸기 문제에는 침묵하는가?
재판소원의 도입이 ‘4심제’가 아닌 헌법적 권리의 회복이라면
김 전 대법관은 재판소원 제도 도입을 "사실상 4심제"라고 비판하며, 비용 부담으로 인해 강자만이 이득을 누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라는 헌법적 가치를 비용 논리로 축소시킨 반론이다. 심리불속행기각이라는 제도로 인해 국민이 대법원의 판단도 받지 못한 채 재판이 종결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현실에서, 재판소원은 오히려 국민의 기본권을 구제할 마지막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
하급심 강화를 말하면서 하급심의 책임은 묻지 않는다
김 전 대법관은 하급심, 특히 1심 판사의 증원이 급선무라 주장한다. 하지만, 단순한 숫자 증가로 사법 신뢰가 회복될 수 있는가? 최근 한 예로, 상가임대차보호법상 연체가 3개월을 넘어야 해지 요건이 되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어떤 판사는 2개월 연체만으로 임차인 계약 해지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와 같은 명백한 법적 오류에도 해당 판사는 징계는커녕 오히려 승진했다. 이는 초등학생조차 수학적 기준을 이해할 수 있는 사안에서조차 법원이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국민의 상식을 무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심리불속행기각의 남용, 그 피해는 국민 몫
현재 대법원은 전체 상고사건 중 약 70~80%를 심리불속행기각이라는 방식으로 사실상 자동기각하고 있다. 이 제도는 국민이 법원으로부터 충분한 이유 설명 없이 재판을 포기당하는 제도다. 판결문 한 줄로 끝나는 '심리불속행'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대표적 사법 절차이다. 김 전 대법관이 대법원 구성과 역할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엘리트 사법 카르텔과 대법원의 자기 식구 감싸기
사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일선 판사 인사에 재판 결과를 연계했다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은 사법부가 사실상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며 '재판 거래'라는 표현조차 정치적 표현으로 몰아가는 데 급급함을 보여준다.
조희대 현 대법원장은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하여 헌법을 넘어선 권한 행사로 비판받고 있다. 사법의 독립을 수호해야 할 자리에 있는 이들이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는 현실은 사법 쿠데타라는 오명을 남기고 있다.
그럼에도 전직 대법관들의 발언은 여전히 "전문성", "정무적 판단", "제도 개선"이라는 포장으로 자신들의 권한을 유지하는 방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들의 개혁 담론은 결과적으로 사법 엘리트 집단, 즉 ‘법조 카르텔’의 권한과 기득권을 유지·강화하는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다.
사법 개혁은 엘리트가 아니라 국민의 상식으로 이뤄져야
사법 개혁은 단순히 제도 몇 개를 뜯어고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국민이 이해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으며, 예측 가능한 판결이 사법 신뢰의 핵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사법부는 "내부자 위주의 승진", "전관예우", "법 해석의 자의성", "국민 기본권 침해에 대한 무감각"이라는 문제들로 인해 국민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김선수 전 대법관의 기고는 일부 문제 제기에는 의미가 있지만, 결정적인 사법 개혁의 뿌리인 사법 권력의 자기 정당화와 카르텔 체계에 대한 반성이 빠져 있다. 진정한 개혁이란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정면에서 보장하고, 심리불속행기각 제도의 폐지 또는 개혁, 법관 책임성 제고, 전관예우 금지 실질화 같은 구체적 조치 없이는 그 어떤 개혁도 국민에게는 허울 좋은 말잔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