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십육 센티미터
유난히 키가 작았던 그 남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나는 구치소로 가서 삼십대 중반쯤이었던 그를 만났었다. 그의 범행은 특이했다. 대충의 사건 개요는 이랬다.
그 무렵 구로동 상가일대는 새벽녘이면 갑자기 폭탄이라도 터지는 것 같은 파열음이 나면서 상가의 유리창이 박살이 났다. 누군가 침입해서 물건을 훔친 흔적은 없었다. 대신 커다란 돌덩이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하루가 아니고 연일 그런 사건이 발생했다. 공포에 질린 상인들이 신고를 하고 마침내 그가 현장에서 체포됐다. 범인은 키가 작은 선량해 보이는 남자였다. 그리고 내가 그의 변호사가 됐다.
“왜 그랬어요?”
내가 물었다. 물건을 훔친 것도 아니고 유리창이 부서진 상점의 주인과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교도소에 들어오려고 그랬어요. 내가 몸이 아파요. 교도소에 들어오면 밥도 먹여주고 병동에 입원도 시켜준다고 들었어요. 제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그동안 가난한 형님과 형수님이 중환자 실에 있던 저의 치료비와 생활비를 대주셨거든요. 형님이나 형수님에게 더 이상 신세를 지기 싫었어요.”
오헨리의 단편소설 중에는 노숙자가 겨울에 감옥에 들어가기 위해 경찰 앞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모습이 내 앞에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나는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인생을 조용히 들어주고 있었다.
“가난한 집 둘째 아들로 태어났어요. 형님은 공부를 잘하고 잘생겼죠. 그런데 못나고 다 컸는데도 키가 백사십육센티예요. 중학교 때 키가 작으니까 가방을 어깨에 둘러냈어요. 그걸 보고 아이들이 나보고 나무에 달라붙은 매미라고 놀렸어요. 아이들이 나하고 같이 다니면 창피하니까 뒤에 따라오라고 했어요. 친구들이 얼굴이 못생긴 나하고는 어울려 주지를 않았죠. 그래서 학교를 때려치우고 검정고시를 봤죠.
그런데 형님은 항상 학교에서 전교 일등을 하고 명문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했어요. 형님은 우리 집안의 기둥이고 아버지 어머니의 희망이었죠.
못난 저는 일찍부터 스포츠클럽의 사우나 구석 자리에서 구두를 닦았어요. 에어로빅도 있고 골프연습장도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었죠. 거기서 십 오년을 일했어요.
그런데 거기서도 저를 보고 ‘너는 왜 그렇게 키가 작니?’하고 놀리는 손님들이 있었어요. 겉으로는 웃어넘겼지만 속으로는 슬펐어요. 저는 결혼도 못했어요. 키가 작으니까 여자가 안오더라구요.”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제가 교통사고가 나서 중환자실에 네 달 누워있었어요. 보험이 되지 않아 형수님이 돈을 댔어요. 형수님 영어 실력이 대단한 분이예요. 대학교수를 하고 싶은데 돈 때문에 학원강사를 하고 있어요. 형님도 벌써 고시에 합격하고 판사를 했을 분인데 대학 때부터 가정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느라고 공부할 시간을 가지지 못했어요.
아이들을 가르치고 먹고사느라고 힘든 형님 부부에게 제가 더 이상 신세를 지기가 미안했죠. 제 경우는 당뇨도 있어 수치가 오백오십까지 올라갔어요. 나이를 먹으니까 구두를 닦는 일도 차츰 스포츠센터 관리자 눈치가 보이구요. 그래서 생각한 게 교도소로 들어오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뭐 범죄를 저질러 봤어야죠”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새벽에 돌을 가져다 상가 유리창에 던졌어요. 아무도 잡지 않는 거예요. 다음날에도 또 다음날에도 그랬어요. 빵집 유리창도 깨고 다른 상가에도 돌을 던졌어요. 그래도 경찰이 잡지를 않더라구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출근 시간에 지하철에 가서 현금서비스를 제공하는 박스에서 이상한 짓을 해도 사람들이 다 그냥 지나치는 거예요. 그러다 마침내 감옥에 들어오는데 성공한 거죠. 지금 밥 얻어먹고 병동에서 치료도 받고 있어요.”
“그래 들어와 보니까 이 생활이 좋아요?”
내가 물었다.
“아니요.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어요. 나가고 싶어요. 음습한 지하 목욕탕에서 일하더라도 휴일이면 햇빛 아래서 고물차를 타고 길을 달리던 그때가 좋았던 것 같아요.”
나는 그의 삶을 변론서에 단편소설같이 묘사해서 재판부에 제출했다. 판사는 나가서 잘 살라고 하며 그를 석방했다.
그 후 소식이 끊겼다가 얼마전에야 그가 죽었다는 얘기를들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그에게 그분을 소개하지 못했던 걸 후회했다. 세상에 ‘나도 그랬소’라는 것 보다 좋은 위로는 없다. 그분 역시 노동자였고 가난했다. 미움을 받아 사람들에게서 버림받고 죄인으로 처형당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그걸 알려 줄 걸....
[출처] 백사십육 센티미터|작성자 소소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