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눈에 다 보이는 데 내 눈에만 당최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가끔 틀린 그림 찾기를 하는데, 꼭 마지막 한 개를 찾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다 힌트 보기를 누르면 그렇게 황당할 수가 없다. ‘저게 어떻게 안 보일 수가 있지?’ 싶은 자리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장철문 시인의 〈반가운 누가〉 역시 달에서 토끼를 찾지 못한 화자가, 드디어 토끼를 발견한 데서 시가 시작된다. 반가움도 잠시, 또 문제가 생긴다. 방아를 찧고 있지 않은 것이다. 화자는 달이 뜰 때마다 방아 찧는 토끼를 찾고 또 찾았을 테지만, 오늘 본 토끼의 모습이 낯설다. ‘두 앞발을 팔처럼 내뻗어서 누군가 맞이하고 있다. 특히 이 대목의 문장 배치가 도치법으로 되어 있어 누군가를 맞이하는 토끼 모습이 더 도드라지게 감각된다.
이 시가 주는 울림은 ‘맞이함’에 있다. ‘걸음보다 팔이 먼저 나가고, 윗몸이 앞으로 쑥 따라 나가고, 토실한 엉치가 뒤로 쭉 빠진’ 토끼의 연쇄적인 움직임은 마치 화면이 재생되듯 생생한 입체감을 더한다. 이어 “어느 달에서 온/ 반가운 누가”일지 묻는 마지막 질문은 읽는 이에게 기분 좋은 상상력의 여백을 남긴다. ‘반가운 누가’는 독자가 가슴 속에 품은 그리운 누군가일 수도 있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우리 자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달 속에 방아 찧는 토끼가 산다’는 오래된 시선이, 시인의 손길을 거쳐 기다림과 환대의 다정한 서사로 바뀌었다. 이제 며칠 뒤면 한가위 보름달이 차오를 것이다. 아마도 이 시를 읽은 독자라면 누구라도 방아를 찧는 대신 반가운 누군가를 맞이하는 토끼를 찾아 밤하늘을 올려다보게 되지 않을까.
첫댓글 추석이면 시골집 동네 어귀에 마중나와 계시던 부모님 이제는 계시지 않지만 달을 보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