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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제국주의 정당화 위한 ‘왜곡된 동양관’ 고발…탈식민주의 담론 확산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서구인들이 갖는 동양에 대한 이미지는 편견과 왜곡에서 비롯된 허구임을 체계적으로 밝힌 에드워드 사이드는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문명비평가였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하고 싶다. 내가 공부하는 사회학은 마르크스, 뒤르케임, 베버가 기초를 세운 서양 학문이다. 어떤 지식이더라도 그것이 놓인 사회적·지리적·역사적 구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사회학은 서유럽과 미국이라는 공간에서 살아온 이들이 자신의 눈으로 사회를 설명하고 분석하기 위해 만들어온 서양 학문이다. 그렇다면, 서구인의 시선으로 구성한 사회학이 비서구사회를 분석하는 데 어디까지 유효한 것일까. 혹시 그 시선 안에 서구사회는 우월하고 비서구사회는 열등하다는 암묵적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품어온 이 질문에 당당하면서도 명쾌하게 응답한 저작이 바로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1935~2003)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1978)이다.
<오리엔탈리즘>이 지식사회 및 시민사회에 준 충격은 결코 작지 않았다. 지식사회의 경우 <오리엔탈리즘>은 탈식민주의 담론의 등장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서구사회는 물론 비서구사회의 인문·사회과학자들에게 자기 성찰을 촉구하게 했다. 이 자기 성찰은 특히 오리엔탈리즘의 대상인 비서구사회에서 두드러졌다.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비서구사회 지식인들은 ‘푸른 눈’이 아닌 ‘검은 눈’으로 자신의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이드의 사상적 기여는 비서구사회 지식인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이 자기 정체성의 거점을 마련하는 데 일종의 인식론적 혁명을 가져다줬다는 데 있다.
■동양 지배 담론인 오리엔탈리즘
<오리엔탈리즘>은 <팔레스타인 문제>(1979), <이슬람 다루기>(1981)로 이어진 중동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주목한 사이드 3부작의 첫 저작이다. 팔레스타인 출신인 사이드에게 이 지역의 문제를 올바로 분석하고 정치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오리엔탈리즘 이론은 중동에 그치지 않고 비서구사회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문제틀이다
사이드가 전달하려는 핵심 메시지는 서구인들이 갖는 동양의 이미지가 편견과 왜곡에서 비롯된 허구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그는 오리엔탈리즘을 세 가지로 정의한다.
첫째, 동양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이 오리엔탈리스트이고, 이들이 생산하는 학문이 오리엔탈리즘이다.
둘째, 오리엔탈리즘은 동양과 서양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존재론적이자 인식론적 구별에 기반을 둔 사고방식이다. 셋째,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제도와 스타일이다.
요컨대, 오리엔탈리즘이란 이런 의미들이 서로 연결돼 있는, 곧 동양이라는 독특한 존재가 문제되는 경우에 언제나 그곳에 조준되는 관심의 네트워크 총체를 말한다. 이 오리엔탈리즘에 기반을 둔 유럽 문화는 일종의 대리자이자 은폐된 자신이기도 한 동양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킴으로써 힘과 정체성을 획득했다는 게 사이드의 주장이다.
사이드의 결론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인식이 식민지를 지배하기 위한 제국주의 권력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점이다. 사이드는 지식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아이디어를 프랑스 사상가 미셸 푸코의 사회이론으로부터 빌려온다. 오리엔탈리즘이 친구(유럽, 서양, ‘우리’)와 이방인(비유럽, 동양, ‘그들’) 간의 차이를 규정하고 타자인 이방인을 배제하려는 지식이라면, 이 지식은 식민지에 대한 제국주의 권력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담론이라는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의 극복 대안
그렇다면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출간한 지 15년이 지난 후 발표한 <문화와 제국주의>(1993)에서 이에 응답한다. 사이드가 제시하는 대안은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모든 문화는 기본적으로 혼합이자 혼종이라는 데 중요한 특징이 있다. 다문화주의란 서로 다른 문화들을 동등하게 인정하고 포용하는 태도 및 전략을 말한다. <오리엔탈리즘>이 서양 문명에 대한 적극적 비판을 겨냥한다면, <문화와 제국주의>는 서양과 동양의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오리엔탈리즘 이론과 다문화주의에 대해선 다양한 토론들이 진행됐다. 먼저 오리엔탈리즘 이론에 대해선 오리엔탈리즘이 획일성·고정성·영속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그 내부의 모순과 외부의 도전을 과소평가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다문화주의에 대해선 지배와 피지배의 정치적 관계가 공존과 타협이라는 탈정치적 관계로 변형되어버릴 위험이 존재한다는 비판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들이 서구중심주의의 이론적 근거를 파헤친 오리엔탈리즘 이론의 통찰을 본질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흥미로운 것은 오리엔탈리즘 이론에 대응하는 옥시덴탈리즘 이론이다. 옥시덴탈리즘은 오리엔탈리즘과 상반된 이분법의 논리로 구성된다. 옥시덴탈리즘에 따르면 서양은 비인간적이고 물질적인 반면, 동양은 인간적이며 정신적이라는 것이다. 사이드 역시 오리엔탈리즘의 거울 개념으로 옥시덴탈리즘을 주목한 바 있다. 서양중심주의의 오리엔탈리즘과 동양중심주의의 옥시덴탈리즘은 자문화중심주의라는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셈이다.
이러한 토론 과정에서 오리엔탈리즘 이론은 서구중심주의를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문화이론으로 자리를 잡았다. 21세기 현재의 시점에서 영토 제국주의는 사라졌다 해도 문화 식민주의는 비서구사회에 여전히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서구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고, 문화 식민주의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사이드의 사상은 이제 하나의 문화 교과서로서의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한국어판 저작은
<오리엔탈리즘>은 박홍규 영남대 교수에 의해 우리말로 옮겨졌다. 최근 판본은 사이드의 ‘1995년 후기’와 ‘2003년 후기’를 담고 있다. <문화와 제국주의>는 박홍규 교수에 의해 옮겨진 판본과 김성곤 서울대 명예교수와 정정호 중앙대 명예교수에 의해 옮겨진 판본이 있다. 사이드의 삶과 사상에 대해선 평전인 <박홍규의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를 읽어보면 좋다.
■강상중의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 ‘탈아시아 지향’ 일본의 식민주의 비판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비서구사회 학자 중 한 사람이 강상중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66·사진)다. 강상중은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재일 한국인 2세 지식인이다. 그는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1996)에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이론에 입각해 근대 일본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역사적 탐구를 시도한다. 이 책은 우리말로도 옮겨졌다.
강상중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미국에서 활약하는 이 팔레스타인 지식인은 실로 강력한 청소기로 내 머릿속에 쌓인 먼지를 빨아들이듯 그때까지 안개가 싸인 것만 같던 나의 의문을 말끔히 거두어 가 주었던 것이다. 그 상쾌한 체험을 통해서 나는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근대와 식민지주의 문제에 접근하기보다는 좀 더 보편적인 컨텍스트 가운데서 그 문제를 근원적으로 생각할 확실한 예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강상중이 겨냥하는 것은 ‘일본적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분석이다. 그에 따르면 사이드가 주목한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주의가 일본에선 동양에 대한 일본의 우월주의로 재현됐다. 그는 고토, 후쿠다, 니토베, 야나이하라로 대표되는 식민정책학과 시라토리로 대표되는 동양학에 담긴 오리엔탈리즘적 이항대립 구도 속에 아시아가 타자로서 배제돼 왔음을 부각시킨다.
요컨대, 일본문화는 일종의 대리자이자 은폐된 자신이기도 한 아시아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킴으로써 힘과 정체성을 획득하고 서양과 대등하게 대화하기 위해 동양학을 발견하고 또 발전시켰다는 게 강상중의 주장이다. 강상중이 도달한 결론은 아시아 또는 동양이란 바로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의해 형성된 지역적 질서를 지칭하고, 동양에 대한 이런 일본식 식민주의 담론은 전후에도 계속해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적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이러한 분석은 일본 식민주의 담론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를 갖는다.
강상중은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 사이드의 전략을 숙고한다. 그것은 보편주의라는 문화의 헤게모니를 거부하고, ‘서구/비서구’, ‘고급/저급’, ‘적절/부적절’로 나누어진 문화본질주의의 경계선을 적극적으로 폐기해 버리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그는 이 책의 ‘보론: 내적 국경과 래디컬 데모크라시’에서 재일 한국인 문제를 날카롭게 다루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