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풍경
博川 최정순
자식 키워 대처 내보내
둘 남은 산촌 노인네
척박한 손바닥 논
써레질하는 할아버지
못밥 나르는 할머니
염천 달래려
얼음 둥둥 띄워 마시는
막걸리 탁배기잔에
어리는 자식들
밤 오면 평상 누워
눈길 뜨락 돌리면
은빛 달 먹고
지천으로 피어나는 달개비꽃
개구리 개골개골
쓸쓸함만 더 하네.
봄(1)
博川 최정순
저 멀리서 여명 기웃거리는
청갈치빛 유리창 활짝 여니
깊고 깊은 대지 자궁 속
겨우내 숨었던 양기 기지개 켜자
온몸으로 봄 부르며 다가온 밤비
옷자락 길게 끌고 간 자리엔
나뭇가지마다 생명 아롱아롱
비둘기 빗물에 세수하며
웃구구구구 노래하는데
황홀하게 활짝 웃는 햇살
개나리 진달래 살포시 내려앉고
깊은 계곡 얼음장 녹이며
저 먼 언덕에서
봄 개화開花하여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봄(2)
博川 최정순
머리 헤치고 달려오다
바람 쉬어 가는 보갑골
하늘 눈물 뚝뚝 흘려
실개천 보태는,
호드기 불던 선돌
이남박 인 언년
남몰래 눈 얽혀
가슴 터지는,
백년해로 부뚜질 마주하며
씨앗 뿌려 울고 웃던
그림자 품은 언덕에
산벚꽃 흐드러지는,
온 산야 얼음 털고
알몸 드러내 네 활개 활짝 펴고
양광 악수하며 기지개 펴는,
그네들의 봄. 봄. 봄.
봄꽃
博川 최정순
어린 별 종종종 내려와
눈물방울 흩뿌려지는 밤
닫혔던 꽃잎 살며시 열며
여명의 길 숨가쁘게 달려온
눈부신 햇살 가득 먹고
전신 불태우며 가냘픈 날갯짓
붉은 얼굴 가득 미소 물들이고
독보다 더 짙은 향기 품어
섬세한 미소로 아침 인사하며
활짝 웃는 너의 꽃다운 모습
호수 같은 그리움 밀어 올려
온몸으로 벌 나비 유혹하여
자연을 재창조하는 너는,
신의 축복 어린 선물이구나.
헤이리의 봄
博川 최정순
명지바람 나풀나풀 춤사위
새초롬히 버들가지 애무하는데
감자 고구마 어린 손 슬그머니 벌리네
미소로 정다웁게 재롱떠는 꽃길
봄 햇살 자박자박 까치걸음
순진무구한 아기처럼 날아들고
쇼윈도 책 찢어 마구 던진 모습에
창작의 무늬 쑥쑥 발돋움질
작가의 고뇌 반추하며 흩어져 있네
헤이리 봄의 향연
여기저기 꿈틀꿈틀 속살거리며
생명의 꽃 피우고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