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자 하늘은 청명하여 먼 산의 나무 한 그루마저 선명하게 보이고
햇살은 따끈하지만 바람은 시원하다.
산 아래 비탈진 밭에서 옥수수와 감자는 익어가고
농부들은 이 때라 잠시 쉰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잠시 쉴 수 있는 이 때를 기다려 강물에 발을 담그어
천렵을 하고 어죽을 끓이나,
동네의 연로한 어르신들은 그저 그늘에 앉아 부채질로 한낮을 보낸다.
아침이 되어 밭을 둘러본다 하여도 따로이 바쁜 일은 보이지 않고
아침상에 올릴 풋고추나 서너 개 따는 일이 전부라,
동강이나 돌아보자 하여 자전거를 끌고 나선다.
아우라지에서 흘러내려오는 조양강은 나전에 내려서며 지척이다.
임계 높은 땅에서 발원한 골지천과 왕산 대기리 맑은 물 송천이 만나 어우러지매
사람들은 아우라지라 불러 오늘에 이르고,
이제서야 비로소 냇물은 川이 아닌 江이 되어 조양강이라 강물은 유유하다.
유유한 강물은 산비탈을 깍아 정선에서는 보기 드문 논을 만들었으니
양식 걱정없는 동네라 하여 사람들은 餘糧이라 부른다.
강물이야 평소에는 고요하여 오가는 나룻배로 건너기도 하였으나
칠팔월 장마에는 물은 불어 속절없다.
그리하여 어느 날 강 건너 그리운 이를 만나지 못 하여 처자는 뱃사공을 부르니
비가 올라나 눈이 올라나와 함께 아라리의 시원이라 한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릿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님그리워 내 못 살겠네
때는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하느라 임계 땅 곧은 금강송이 많이도 필요하매
베어진 나무들은 아우라지강물에 모여 뗏목으로 엮인다.
그 뗏목을 뗏군 서넛 올라타고는 용산나루로 향하니 그 노래도 있음이라,
강원도 금강산 제일 가는 소나무
경복궁 대들보로 다 나가네
뚝 떠나갑시다 뚝 떠나갑시다
용산나루로 배 떠나가듯이 뚝 떠나갑시다
강물은 흘러 장열 나전 너른 벌을 지나 오대산에서 흘러내린 오대천 물을 합하여
문곡 좁은 여울 구비구비 돌고도니,
이 골 저 골 절경이고 물은 맑아 이 세상 모습 아니건만
젊은 처자는 좁은 하늘 아래 답답하기만 하누나...
이웃집은 다문다문 산은야 울우리 창창하니
산수좋고 인심좋아서 무릉도원일세
정선의 구명은 무릉도원 아니더냐
무릉도원 어데 가고 산만 층층하네
저 건너 저 묵밭은 작년에도 묵더니
금년에도 날과 같이 또 한 해 묵네
오라버니 장가는 명년에나 가시고
검둥송아지 툭툭 팔아서 날 시집보내주
페달을 밟아 달리느니 절경이 아까워 내려 끌고 느릿느릿 걸어
정선읍내에 들어선다.
작은 읍은 병풍같은 산이 둘러 포실하고 봄볕은 제일 먼저 산마루를 비추니
정선의 주산이라 그 이름 비봉산이고,
오래 전의 정선읍내는 노래를 유추하여 알 수 있음이라
일백오십 가호가 살았으매,
지금보다야 식솔이 많아 한 집에 일곱을 잡아도 읍내 인구 얼추 일천이다.
읍사무소 마당에는 노래에도 있듯이 지금도 물레방아가 쉬임없이 돌고
떨어지는 물 속에서는 커다란 물고기가 힘차게 노닌다.
사람사는 곳이야 예나 지금이나 사랑도 있고 이런저런 애환도 있게 마련이라
과년한 처자는 나이어린 서방님을 모시고 시집살이 구슬프다.
산설고 물도 선데 무엇하로 나 여기 왔나
임자 당신 하나만 바래서 나 여기 왔오
앞남산 적설이 다 진토록 봄소식 몰랐더니
비봉산 행화춘절이 날 알려주네
정선읍내 물레방아는 사시장철 물살을 안고 빙글빙글 도는데
우리집의 서방님은 날 안고 돌 줄을 왜 모르나
정선읍내야 백모래 자락에 비오나 마나
어린 가장 품 안에 잠자나 마나
잘 살고 못 사는 건 둘의 본분인데
중신애비 원망은 아예 하지 맙시다
십오야 밝은 달은 운무 중에서 놀고
백옥같은 우리 님은 어데 가서 노나
당신은 나를 알기를 흑싸리껍질로 알아도
나는야 당신 알기를 공산명월로 알아요
우리 집의 시어머니는 정말 꾐주머니
잠자는 척을 하면서도 생코만 곤다네
우리 집 시어머니는 왜 이렇게도 약빨러
울타리 밑의 개구녕을 다 틀어막네
그 서방님은 철들자 어쩐다더니 바람이 들었다.
정선읍내야 일백오십호 몽땅 잠들여놓고서
임호장네 맏며누리 다리고서 성마령을 넘자
조양강은 정선읍을 휘돌아 가리왕산을 바라고 회동마을로 들어서니
또 다시 자전거를 끌고 소나무가 끼끗한 솔치재를 넘는다.
재를 넘고 물을 건너면 미탄이라 평창이 지척이고
강을 따라 내려서면 귤암리에 들어 내쳐 가수리에 이르매,
얼마 전 개장한 병방산 자락 병방치의 스카이워크가 아스라이 보이고
동양 최대라 하는 짚와이어는 바람을 가르고 내려온다.
병방치 스카이워크 유리통로에서 내려다보는 동강은 구불구불 한반도지형인데
밑에서 치어다보아서는 산이 높고 숲은 울창하여 도시 종잡을 수 없다.
언젠가 좋은 벗들 함께 하는 날엔 오를 수 있을게다.
귤암리 강 건너에는 깍아지른 절벽이 백 척이요 강물에 비친 그림자도 백 척이라
멀리 중국의 적벽이 예로구나...
이러한 절벽을 이 곳 말로 뼝대라 부르니 뼝대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며칠 전의 비로 강물은 맑아 여기저기에서 다슬기를 잡는 아낙들 여럿 보이고
장정들도 여럿 반도들어 물고기를 잡는다.
이른 봄이면 귤암 마을의 뼝대에는 눈 속에서 동강할미꽃이 피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사진으로도 찍히우니,
행여 지금이라도 보이나 느릿느릿 하여도 이런저런 풀에 치여 보이지 않는다.
귤암에서 가수리는 내내 평탄하여 물살 또한 유유하고 길도 산뜻하여
페달은 절로 밟힌다.
드문드문 강 건너 밭으로 넘나드는 작은 나룻배 두어 척이 한가롭고
누렁이는 송아지를 데리고 나와 풀을 뜯는다.
정선읍을 돌아 가리왕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또 합친 조양강은
여기서부터 동강으로 이름이 바뀌어 영월로 흐른다.
가수리에는 오백 년 세월을 푸르른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동강을 바라고 섰기에 자전거를 걸치고 강물을 바라본다.
동강을 내려가는 뗏군들은 이 나무를 치어다보고는 이제 영월이 저기다 하였고
영월로 들어서는 초입에 물살센 황새여울과 된꼬까리가 있으니,
이 곳만 무사히 건너면 한양 땅은 수월하기에 목청을 합하여 노래한다.
황새여울 된꼬까리에 떼를 지어놓았네
만지산의 전산옥이야 술상차려 놓아라
이 여울들을 지나 만지산에는 주막들이 있어 그 중에서도 전산옥의 인물이 출중한데다
아라리도 잘 불러 뗏군들은 좋아했고,
이 주막은 키를 넘는 풀더미 속에 지금은 안내판 하나로 바뀌어
전산옥이 실존했음을 알려준다.
이러저러 열흘 남짓 걸리는 한 행차에 뗏군들은 후한 삯을 받아 돌아오니
떼돈벌었다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하고,
오는 길에 이 주막 저 주막을 모두 거쳐 돈은 떨어지고 세월은 흐르매
이 정경을 노래로 남긴다.
개구리라는 놈이 뛰는 것은 멀리 가자는 뜻이요
이 내 몸이 웃는 뜻은 정들자는 뜻일세
술은야 안 먹자고 맹세를 했더니
술잔보고 주모보니는 또 한 잔 먹네
술 잘 먹고 돈 잘 쓸 적에는 금수강산이더니
술 못 먹고 돈 떨어지니 적막강산일세
세월이 갈라면 저 혼자나 가지
알뜰한 청춘을 왜 다리고 가나
곤드레 만드레 늘어진 골에 당신은 나물뜯고
나는야 꼴베며 단 둘이나 가자
옥수수와 감자가 익어가는 여름날에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서 동강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옛날을 돌이켜보는 한낮이다.
정선오일장 야외공연장에서 장날이면 부르는 아라리는
반갑소야 반갑소야로 시작하여 이렇게 끝낸다.
정선같이 살기 좋은 곳 놀러 한번 오세요
검은 산 물 밑이라도 해당화는 핍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 고개로 날 넘겨주게
금년에도 정선에는
해당화가 피었고,
아라리가 흐르는 동강에는
세월이 멈추었다.
첫댓글 정선나그네님 자전거 타고 가는뒷모습이 선하네요,나그님 집에 금강송 소나무 17그릇 지금도 잘크지요, 집지을때 땅을사면서 나무는 거져 사셨다니 복을 받을신분, 나그네님 소나무 를 애지중지 잘키우시면 나중에 큰돈(지금도 수억) 될텐데,뭐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앞전에 누가 댓글을 그렇게 써떼요,ㅎㅎ~~ 요번 비로 옆집에 참외 오이가 다 타들어가서 뽑아야 되는구나 걱정 했는데 오늘보니참외 오이 엔제 그래느냐고 아주 잘자라서 마음이 흐믓 햇어요,나그네님 정선소식에 기분좋게 읽고갑니다, 정선나그네님,
그저 좋아하는 소나무라 셈하지는 아니 했는데...
더운 여름인데 건강에 유의하시구, 또 뵈요.
세월이 갈라면 저 혼자나 가지
알뜰한 청춘은 왜 데리고 가나?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세월은 왜 그리 심청스러운지요...
노랫말을 보면 옛 사람들이 더 음탕한것 같아 웃고 갑니다...ㅎㅎㅎㅎㅎㅎㅎㅎ
그러게 예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모습은 모두 같지만,
이 곳에서는 음탕이라고까지 표현은 아니 하지요.ㅎ
정선..그리고 동강에 이리도 아리아리한 사연이 있었군요ㅎ
아라리가 흐르는 동강~~꼭 가보고 싶습니다.
나그네님 더워진 날씨에 건강하세요
정선은 구비구비마다 이야기가 많아 매력이 있는 곳입니다.
술 잘 먹고 돈 잘 쓸 적에는 금수강산이더니
술 못 먹고 돈 떨어지니 적막강산일세~ 의 가삿말이 가슴에 와 닿네요.
말씀을 어찌 이리 글로 잘 풀어 내실까, 정선소식도 알려주고, 그래서 팬이 많은가 봅니다.^^
공감하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러게요
세월이 갈라면 저 혼자나 가지....
세월 뿐만 아니라 백발이 먼저 왔다라는 노래도 있어요.ㅎ
백발가(白髮歌)...난 벌써 흰머리가 많은디...애효~
저도 울 아들이 흰머리 뽑아줘요
흰머리 뽑기 올림픽 나가면 지가 금메달 이라고,.,ㅎ ~
세월도 동강의 흐르는 물처럼 저혼자 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꼭 아까운 우리네 청춘을 동행하려구 하니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네요
그러게요, 먼저 가라 해도 아니 갑니다.ㅎ
우리주위에 떠도는 유행어는 부부함께살고있으면 만고강산,
여자혼자살면 금수강산, 남자혼자살면 적막강산이라고 합니다.
사실인지는 몰라도 공감은되는말 같습니다. 더위에 건강하세요.
만고강산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지요.ㅎ
구구절절 가슴에 와닿네요. 잘보고갑니다.
공감하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마치 김삿갓이 풍월을 읊으며 정선땅 곳곳을 방랑하는 듯 아주 정겹습니다.
형님 닉네임을 김(?)삿갓이라 바꾸시면 잘 어울릴 듯 합니다..ㅋㅋ
근데요~ 아우라지가 두 냇물이 어우러져 아우라지라 한다구요..
구경 갔을땐 그런 뜻두 모르고 걍 쳐다만 봤으니...에혀...
다시한번 가보고 싶은곳~ 형님 때문입니다..ㅎㅎ
이제 알았으니 또 와야지요.ㅎ
행복 바이러스 터트리며 잘 읽고 갑니다.
잘 읽으셨다니 기쁩니다.
형님~옥수수 정말 묵고 싶은디 포기하고 애들에게 감자케기 체험이나 하게
해주고 싶어요...7월말엔 친구들하고 군산에 배낚시 가기로 약속해서...
감자케기도 당일로 다녀와야 할것 같아요... 오호 통제라~...ㅎㅎㅎ
그렇지 않아도 대궁이 모두 말라 영감님은 장마 전에 캐라 하는디 언제 올라우?
일요일에 영월 곰봉을 올랐는데 소나무 참 좋더군요.
골 깊고 산 높은 강원도 ~~사연들도 많았겠죠.....
영월은 정선과 지척이라 산도 물도 비슷하여 정감이 가는 곳이지요.
정선 나그네님!~~^^*
필력 정말 좋습니다.
정선 동강물 처럼
유려한 필체
읽는 사람을 흐믓하게 합니다.
제가 요즘 바빠서````
시간나면 글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흐뭇하다 하시니 기쁜 일입니다. 더운 여름에 건강 유의하시고...
카아...비는오는데..전산옥 주모가 따라주는딱배기 한잔에 나루배사공..운치가 있습니다..
동강에 래프팅 이좋아서 몇번 같는데..한번은 비가 많이와서 못하고 백암온천서 온천 하고온 생각이 납니다..
세월은 동강물 처럼 흘러 가고..추억만 남습니다..휴가철에..강원도 산천이나 두루 두루 유람 해볼람니다..
아리랑 잘배우고 감니다..좋은 하루 되세요..
우리나라에서 마지막 남은 땅이 강원도라 합니다. 좋은 여행하시길...
지난 날! 동강이며 정선 장날 구경을 헛하고 온걸 이제사 알았으니...
꼭~ 다시가서 의미 있는 구경을 해야겠습니다.
친구들 대동하고 님께서 읊어주신 멋진 풍월을 머릿속에 담고 흉내도 내면서요.
그러시라고 부러 올렸습니다.ㅎ
세월마저 멈춘 아라리가 흐르는 동강에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오래전 정선 오일장 갔던 추억도 새롭고...
오늘도 마음속에 그리운 풍경 하나 담아갑니다^^
정선은 오래 전부터 누구에게나 그리운 곳...
제게도 정선은 늘 그리운곳이죠~~
오랫만에 들어왔더니 그리움이 더욱더 진하게 밀려오네요
방학은 했는데 7월 한달내내 꼬마 천사들과 씨름을 해야 하네요...
8월을 기대하고 고대하고 있답니다~~
여러모로 어려운 요즘, 바쁘다니 반가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