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
글쓴이 For.20C.Boy
Part.4 자석과 동전 1
1
나는 어렸을 때 자석을 갖고 놀기를 좋아했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여하튼 미끈하면서 서늘한 감촉, 붙었다 떨어졌다하며 손을 간질이는 힘의 쾌감은 어린 나를 찌릿하게 했고, 나는 아직도 그 느낌을 잊지 못한다. 찰싹 찰싹 소리를 내며 자석에 쇠가 달라붙고, 그것을 떼면서 반항하는 힘을 느끼는 것은 어린 나의 철없는 즐거움이었다.
그러다가 그것이 조금 시들해졌을 무렵, 그러니까 자석으로 쇠를 잡아당기고 잡아떼는 일이 별 감흥이 없어졌을 때, 나는 2번째 자석을 받았다. 그것은 확실히 별천지였다. N극과 N극이 밀어내고, S극과 N극이 서로를 잡아끄는 이 자석의 오묘한 이치는 놀랍기 그지없었다. 나는 한 번만이라도 S극과 S극이 서로를 잡아당기고, N극과 N극이 찰싹 붙어있는 모습을 보고싶었다. 틈만 나면 개선문처럼 휘어진 말굽자석 푸른 다리에 막대자석의 S극을 비볐다.
그랬을 때 나타나는 광경은 정말 경이로운 것이었다. 내 손안에서 말굽자석의 푸른 다리는 막대자석의 푸른 머리와 조용히 조우했고, 나는 그것을 보고 흐뭇해했다. 하지만 내가 손을 놓으면 곧 두 자석은 서로를 밀어내더니 N극과 S극끼리 달라붙어 버렸고, 내가 바라는 광경, 곧 S극과 S극이 머리를 맞댄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모습은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2개의 자석이 만드는 별천지에도 흥미를 잃은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극이 써있지 않는 자석이었다. 가끔 TV에서 바둑을 중계해줄 때 쓰는 자석 바둑알이 그런 류였는데 그것은 파란색과 빨간색으로만 나뉜 무미건조한 자석들에 흥미를 잃은 내게 또다른 탐구심을 일깨워주었다. 나는 아버지를 졸라서 그닥 좋아하지도 않는 바둑을 둔답시고 5000원짜리 장난감 같은 자석 바둑 세트를 샀다. 거기에는 극이 써있지 않는 자석들이 수두룩했다. 나는 이 자석들이 N극도 아니고 S극도 아닌 Z극쯤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도 안 가서 이 극이 써있지 않는 자석들 역시 단지 극이 써있지 않은 것일 뿐, N극과 S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버리고 말았다.
그후로 한참이나 자석에 대해 흥미를 잃고있던 내가 다시 한번 자석에 대한 호기심을 발동시킨 때는 중학교 때쯤이었다. 아마도 과학시간이었을 텐데, 여하튼 선생님은 자석의 N극과 S극을 절대로 분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으로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도 양끝은 N극과 S극이 된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집에 있는 막대자석의 정 중앙을 똑 자르면 빨간 쪽은 N극이 되고 파란 쪽은 S극이 될 것만 같았다. 그때의 나에게 N극이 있으면 S극도 있다는 말은 너무 철학적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마치 정의의 편이 있으므로 악이 있고, 반대로 악인이 있기 때문에 주인공이 있다는 말과 비슷했다. 나는 과학 선생님에게 자석의 극을 왜 분리할 수 없는가를 물었다. 나는 그가 '자석의 극은 분리할 수 있어'라고 말하길 바랬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오랜 설명, 그러니까그당시 내 지식체계로는 수용할 수 없었던 원자와 전자, 전자의 궤도 따위에 대한 논의 앞에 나는 무릎꿇고 말았다. 나는 그때 '자석에 N극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S극도 있기 마련이다. 왜 인지는 모른다.'라는 결론을 내린 채 KO당했다.
나는 초등학교때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구를 지키는 정의의 용사는 물론이고, 선동렬을 능가하는 강속구투수에 허재 뺨치는 농구선수도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으스스하지만 여하튼 그때 '20세기 소년'을 보았다면 나는 '켄지'가 되겠다고 말했을 지도 모른다.
그것이 중학교에 들어오면서 좀 더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자면 지구를 지키는 독수리 5형제에서 민간인을 보호하는 경찰정도로 격이 떨어졌다고 할까. 그리고 그 꿈의 모습은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또다시 바뀌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꿈은 세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시대를 바꾸는 것은 인간이며,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한 세기에 1명 나올까말까한 인물이란 소리는 듣고 살아야 마땅하다라는 생각이 그 당시의 나를 꼭 붙잡았다. 그런 내가 꿈꾸었던 직업은 대체로 문학가나 작곡가, 피아니스트 같은 예술계열의 직업이었다. 천재 피아니스트나 위대한 작곡가, 대문호쯤은 되어야 뭔가 사회를 안다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기 직전에서야 현실을 자각하고 결심한 것이 선생의 길이었다. 그때에 와서는 스케일이 완전히 작아져 더 이상 전 지구적인 문제를 논하지 않았고, 감히 사회를 좌지우지한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단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선생님이란 직업은 참으로 매력 있는 직업이며, 자라나는 후학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사회를 바꾸는 일이라 되뇌일 뿐이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의 독수리 5형제부터 시작하여 선생의 길에 들어설 때까지 꾸준히 변하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언제나 나는 정의의 편이었고, 올바른 쪽에 서서 검은 그림자의 면상을 후려갈긴다는 믿음이었다. 퍼펙트를 노리던 투수가 완투승을 노린다고 하여 승리를 포기한 것은 아니듯, 내 꿈의 스케일은 비록 작아졌을 망정 내가 올바른 쪽에 서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끝까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고, 임용고시에 합격하면서 점점 선생이란 직업에 이끌린 나는 내 꿈의 스케일을 조금씩 확장해나갔고, 보다 더 정의의 편에 서서 완봉까지 노려보기로 한 것이었다.
2
고등학교 시절, 이정철이란 국어 선생님이 있었다. 그는 30대 초반의 노총각이라면 노총각이었는데, 이봉주를 닮았다고 해서 '봉주샘'으로 불렸다. 여하튼 그는 인기가 좋은 선생님이었다. 그는 개그맨이 될 소질이 다분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서 뭔가 학생을 위한다는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사람이었다. 5교시 지루하고 졸린 시간에 그는 어설픈 고무줄 마술이나마 보여주어 아이들을 깨웠고, 가끔은 기타를 가지고 와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수업을 할 때도 그의 유머감각은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하여, 그의 수업은 웬만해선 지루하지 않았으며 큰 소리가 오가는 법도 거의 없었다. 아이들은 그의 수업을 좋아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시험이었다. 그에게서 국어를 배운 반은 다른 반보다 국어 평균이 3~4점쯤 낮았다. 그는 시험성적따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그에 대한 평가는 어느 날부터 '재미있고 좋은 선생님이지만 실력은 없다.'라고 바뀌었다. 아이들은 그의 수업시간을 여전히 좋아했고, 그의 개그에 웃고 맞장구치고 했지만 그 이면에는 '저 사람은 실력이 없다'라는 냉소 비슷한 것이 자리했다. 그러다 시험 때만 되면 그 냉소의 본질이 한 꺼풀 감춰놓은 장막을 열고 고개를 디밀었다. 그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는 그를 인간적으로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그와 같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 비슷한 것이었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렸다. 안타깝게도 그는 내가 졸업할 때까지 동전의 한쪽 면을 버리지 못했다. 그는 끝까지 동전의 양면처럼 '좋은 선생님'과 '실력 없는 선생님'이란 두 모습을 간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선생님이 되었을 때, 그처럼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니까 나는 동전의 양면에서 좋지 않은 일면을 거세해버리고 좋은 면만 취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무슨 일이든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좋은 선생님'의 모습과, 박학다식하고 아는 것이 많은 '실력 있는 선생님'의 모습을 다 갖추기 위해 다분히 노력했으며, 이성과 감정, 저항과 순응사이의 위태한 줄타기를 노렸다.
내가 선생님이 되어 처음 발령 받은 K중에 갔을 때 느낀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훌륭한 선생님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나이 50,60이 된 선생님들은 거개가 가부장적 권위의식에 찌들어 학생을 힘으로 억누르고 대충 가르치는 것에 익숙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바라보았던 교장, 교감의 이미지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선생님'답게, 의식이 깨어있었고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학생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했고, 학생들의 권리에 대해 생각했으며, 가부장적 권위에 물든 전근대적인 학교 시스템을 타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입시위주의 교육이 학생들의 창의성을 망치고 있으며 뭔가 개혁이 필요하다는 인식 역시 모두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었다. 여하튼 확실한 것은 대부분이 '좋은 선생님'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나만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한 줄기 희망을 본 듯도 싶었다.
나는 아이들과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원했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 알고자 했으며, 내가 그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선생님의 상이 되고자 했다. 나는 교단에서 스스로 내려서서 학생들과 스스럼없는 대화를 시도했으며, 아이들은 내 기대 이상으로 잘 따라주었다. 학급은 적어도 내 수업시간만큼은 굉장히 민주적으로 돌아갔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나는 수학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수학 이상의 것을 가르치려고 노력했고,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는 것을 깨우쳐주기위해 많은 말들을 했다. 그것은 다른 선생님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 나는 학교가 상당히 민주적이고 근대적으로 변화하였으며 긍정적인 의미를 띄게 되었다고 지레 짐작해버렸다.
3
경수는 확실히 내 제자였다. 그는 똑똑하고, 눈빛이 맑으며, 정신이 깨어있는 아이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를 특별대우했다거나, 편애한 것은 결단코 아니다. 비록 그의 여동생인 경희까지 바로 다음해에 나의 반으로 들어왔으며, 그에게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고, 가끔 사적으로 만나기도 했지만 나는 단 한번도 그를 특별하게 여긴 적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만큼 나는 모든 아이들을 똑같이 대우하려고 노력했으며, 겉보기 등급은 어떨지 몰라도 학생들 개개인의 절대등급만은 동일하게 점수 매겼다. 나와 그는 지금까지 그저 사이좋은 사제지간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그는 내 삶에 뛰쳐들어왔다.
그는 2년전 내 학급의 학생이었다. 2년전의 아이들은 크고 작은 사고가 있긴 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아이들이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확실히 나는 가끔씩 그 아이들을 회상하며 켜켜이 쌓여 가는 연륜을 즐기곤 할 정도였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생각나는 몇몇의 아이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경수였다. 나는 경수가 중학생치고는 보기 드물게 생각이 깊고 속이 차있는 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것은 사소한 집안 문제나 장래희망같은 식상한 상담의 틀을 벗어난, 사회전체를 보는 눈에 대한 논의라고 할만한 것들이었다. 그는 그 이야기들을 잘 이해하고, 소화하며 그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 같았고, 그것에 흥미를 느끼는 듯도 했다.
나와 그는 그후로도 몇 번의 만남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가졌고, 나는 그에게 촉새처럼 평상시에는 꺼내지 않았던 말들을 꺼내어놓았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도 즐거운 일이었다. 나는 어쩌면 내 치부를 들어줄 벽이 하나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5시를 넘어 학교 교문을 나섰을 때, 어떤 중년의 여자가 나를 붙잡았다. 그녀는 파마머리에 160언저리의 키, 70년대 스타일의 양복차림이었는데, 풍기는 분위기가 너무나 전형적이었다. 어디가 그렇게 전형적인지는 나도 확실히 몰랐지만, 왠지 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까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은 밑도 끝도 없는 확신이었다.
그녀는 나를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사실 워낙에 평범한 얼굴에 평범한 옷차림, 평범한 학부모 상이라 어제 보았다해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경수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나를 끌고 학교로 다시 들어갔다. 나는 그녀가 디딛는 발걸음에 사뭇 힘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경수가 가출을 했어요."
경수모는 휴게실 의자에 앉기가 무섭게 다짜고짜 말했다. 나는 조금 놀랐다. 경수모의 말에는 묘한 가시가 돋쳐있었다.
"가출을요? 언제요?"
"2일전이에요. 학교에도 자퇴한다고 말하고 나왔나봐요... 그럴 애가 아닌데..."
"왜 그랬을까요?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요."
"뭐, 요즘에 공부하기 싫다고 불평을 좀 하긴 했었어요. 하지만 고등학생이 공부 안 하고 뭘 하겠다고... 어디서 쓸데없는 사상이나 주워와서는... 정말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건지..."
나는 그제야 경수모의 말에 돋친 가시의 정체를 알았다. 경수모는 '니가 내 아들한테 이상한 사상을 불어넣어서 내 아들이 공부 안하고 반항하고 있잖아, 어떻게 책임질 거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억울했다.
내가 경수에게 사회를 보는 눈 따위에 대한 상담을 하면서 우리 나라의 입시제도라던지 사교육에 대한 내 견해를 피력한 적이 있긴 하지만, 나는 결단코 그에게 가출을 권한 적은 없었다. 가출을 하고 자퇴를 하겠다고 말한 것은 순전히 경수의 자의였지, 내 입김이 미친 곳은 단 한군데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수모는 내가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자 그에게 쓸데없는 생각을 불어넣은 악마쯤 된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것은 상당히 불유쾌한 일이었다.
물론 경수가 가출에 이르기까지 내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경수에게 한 말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수모의 생각은 달랐다. 경수모는 내가 한 번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그럼으로 해서 경수는 내 삶에 뛰쳐들어왔다. 나는 또다시 이성과 감정, 저항과 순응 사이의 위태한 줄타기를 노렸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꼭 공부만이 능사는 아니지 않을까요?"
"그것을 누가 모르나요? 경수는 정도가 심해요. 다른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을 그 아이 혼자 고민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요. 누구나 다하는 야자를 갖고도 그 애는 불평이에요."
"경수에겐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지도 모르지요."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요? 그런 것 없어요. 그냥 반항에 불평일 뿐이에요. 그 반항에 불평을 다 들어주다가는 인생 망치기 딱 좋은데 어떻게 그냥 놔둬요? 다른 애들은 다 학원에 독서실에 과외해가면서 죽어라 공부하는데 경수혼자 딴 길 헤매게 놔두라고요? 그런 건 말도 안 되지요. 그런데도 그 놈의 자식은... 지가 뭐 쥐뿔이나 잘난 게 있다고 가출이야, 가출은..."
경수모의 손끝이 떨렸다. 경수모의 손은 주름지고 뼈가 굵어 반지가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손이었다. 그 손은 지금까지 경수모의 세대가 겪어온 삶의 깊이를 말하고 있었다. 그 손은 불의를 몰랐다. 그 손에 닿는 것이 모두 정의였으며, 그 손에 의해 아파트가 생기고 자동차가 굴렀다. 나는 그것 때문에 경수모가 더욱 혼란스러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경수는 지금까지 불의를 모르던 경수모의 투박한 손을 불의로 보았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경수는 곧 돌아올 것이며 나도 경수를 찾는데 도움을 줄 테니 이만 가보라고 달래어 경수모를 보냈다. 하지만 경수를 찾을 마땅한 방법도 없었을 뿐더러, 딱히 경수를 찾고 싶은 마음도 내겐 없었다. 일단 경수를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마뜩찮은 것이 문제였다. 사실 지금까지 내가 너에게 한 이야기는 다 헛소리였고, 너가 가출한 것은 매우 좋지 않은 행동이었어라고 말하는 것은 내 얼마남지 않은 양심이 강렬히 거부했다.
내 마음속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경수와 경수모의 다툼이 있었다. 그것은 자석의 N극과 S극이나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상반되면서도 거세할 수 없는 모순 덩어리였다. 경수의 생각을 쫓다보면 어느새 경수모의 생각에 다다라있고, 경수모의 생각을 쫓다보면 어느새 경수의 생각에 다다라있는, 그것은 마치 자석의 N극을 따라가보면 종내엔 S극이 도사리고 있는 형상과 비슷했다. 나는 일찍이 자석의 한쪽 극을 버리고 동전의 한 면만 취하고자 했다. 그러나 한극자석과 한면동전따윈 이 세상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묘하게 동전의 윗면에 서고자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동전은 경수모의 쪽으로 기울었다. 나는 그 위에 서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아이들에게 사회를 바꾸라고 말했지만, 내심은 그렇지 않았었다. 나는 누구도 사회를 바꾼답시고 나서지 않기를 바라면서 사회를 바꾸라고 했다. 그것은 마치 떡 줄 생각도 없으면서 '먹을래?'라고 하는 꼴과 닮아있었다. 그래도 별 문제가 없었던 것은 그 연극을 나뿐만 아니라 나의 아이들 모두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직 경수만이 그 연극을 진지하게 보고 있었을 뿐이다.
4
나는 아주 우연찮게 경수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웬만해선 가지 않는 편의점을, 그것도 집과 먼 역 근처의 편의점에 딱 한 번 갔다가 그곳에서 경수와 맞부딪친 것이다. 경수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듯 했지만 곧 반갑다는 듯 웃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너 이런 곳에서 아르바이트 하냐?"
"용돈이 좀 궁해서요..."
경수는 내가 그가 가출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 싶었다. 경수는 삼각김밥을 종류별로 정리하면서 싱글거렸다. 그의 손은 아직 여리고 가늘었으며 여자의 그것처럼 고왔다. 나는 그 손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
"너, 가출했다며. 네 어머니가 찾아오셨다."
경수의 표정이 굳었다. 삼각김밥 부스럭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집으로 돌아가."
"싫어요."
"가출을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잖아. 반항일 뿐이야."
"아니요, 반항이 아니에요. 선생님이라면 아실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니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인지는 알고 있어. 하지만 니가 가출을 하고 사회에 반항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지. 너의 인생만 망가질 뿐이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어요."
"학교는 변하고 있어. 선생과 학생의 관계는 점점 민주화되고 있고, 입시위주의 교육의 폐단 같은 것은 모두가 인식하고 있지. 이제 학교도 곧 변할 거야."
"아니요. 전혀 변한 것은 없어요. 학생과 선생의 관계는 민주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한 꺼풀만 뒤집어보면 그렇지 않지요. '학생'과 '학교'의 관계는 아직도 전근대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리고 누구나 다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지요. 그러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요."
"네가 움직여도 변하는 것은 없어."
"그 생각이 변할 수 없게 만드는거에요."
창밖으로 BMW한대가 지나갔다. 나는 그 차의 앞뒤가 너무 다르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너의 가출을 용납할 수 없고, 그러니까 너희 어머니에게 전화할거야."
Part.4 End
의외로 길게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퇴고도 안 하나 봅니다 --;
에... 이 글 자체를 본인이 썼을 뿐만 아니라 아직 어설프기 그지없는 연습에 불과하므로 나는 멍청이가 아니다라고 자위하지만 보면 볼수록 저역시 멍청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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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매번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힘 내시고, 건필하세요.
아아, 재밌는걸요. 다음 글도 기대할게요.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