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우리나라 말이건 영어건 간에, 한 집단의-그 집단이 한 나라건, 전문사회건 상관없이-의사소통의 수단이 된다. 구성원들은 말과 글로 된 타인의 의사나 지식, 그리고 정보 등을 읽고 들어 취하며, 자신이 아는 것을 말과 글을 통하여 그들에게 전달한다. 민족이나 나라라는 구성체에선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문화와 정체성을 이루어 나가고, 전문집단이면- 이 집단이 범세계적이라면 당연히 세계 공용어(Lingua Franca)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이를 통하여 구성원들 끼리 발표와 논쟁을 하며 진리에 가깝게 접근하려하고, 글로벌 시대의 비즈니스 세계에선 공용어를 알아야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자국의 언어 이외에 다른 언어를 잘 구사하고 쓸 줄 알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여러모로 혜택이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엇보다도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힘이 세고 또 지식이나 정보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언어를 자국의 언어만큼이나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줄 알면 미래를 살아가는데 이보다 더 중요한 능력은 없다. 즉 이 언어에 대한 네 가지 능력(읽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며 쓰는 능력들)을 갖추면 이 언어가 지니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를 번역을 하여 우리나라 말로 알려주는 수단으로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여러 분야에서 우수한 것들을 전 세계에 알리는 수단을 우리가 확보를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언어를 통해 능숙하게 말하고 쓸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확보하는 것은 개인이나 우리나라의 장래를 위해선 필수불가결하다. 국가 간 통상, 이로 인한 제반적인 법적 문제들, 한류의 세계화, 영토문제, 인문과 과학, 체육, 예술의 발전 등,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세계인들에게 한글을 배우라고 하면서 우리 것을 강요할 수 없다. 그들에게 우수한 한글을 배우라고 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우리가 그들의 언어를 먼저 배워야 한다.
세계 공용어에 속하는 영어를 배워야 하는 일은 세계 속에서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약자인 우리로선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이다. 세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과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곤 우리의 말을 아는 이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우리의 것을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선 공용어를 통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여러 전문 분야에선 아직도 세계 공용어에 속하는 언어로 우리의 것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많지 않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을 보라-심지어는 북한도 영어 배우기 광풍이 일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영어 배우기를 결코 게으르지 않는다. 영어가 가져다주는 이득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영어로 우리를 표현하지 못하면 현재로선 우리는 우리를 원하는 방향으로 세계에 알릴 길이 없다. 도서관에 가보라. 영어로 쓰여 있는 책들 중에서 우리의 것들에 대하여 쓰여 있는 책들은 상대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 중국이나 일본에 대한 것은 전 분야에 걸쳐 셀 수 없이 많다. 책들을 뒤적이다 보면 우리 자신이 우물 안의 개구리임을 발견하게 되어 자존심도 상하고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인터넷 시대에 모든 정보의 85% 이상이 영어로 된 전자도서관도 거의 같은 상황이다. 영어로 우리가 자신을 알리지 않으면 세계 사람들이 우리를 알 턱이 없다. 그들에게 한글을 배워 우리의 지식이나 정보를 가져가라고 할 순 없다. 또 우리가 영어를 몰라 남의 힘을 빌려 우리를 알리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를 바라다보는 관점이 우리와 다르거나 왜곡되기 십상이다.
어떤 이들은 차기 정부가 왜 전 국민들이 이 어려운 언어배우기를 강요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사실 전 국민이 타국의 언어를 배울 필요는 없다. 즉 필요치 않은 이들은 배울 필요가 없다. 어떤 목적이나 이유든 국제적으로 사람들을 만나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사람만 배우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뜻을 품고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의 전문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으면, 영어에 대한 읽고, 듣고, 사고하고, 말하고, 글 쓰는 능력은 필수적이다. 국제 변호사로서 논쟁을 벌인다거나, 우리나라 역사나 문학을 세계에 소개한다거나, 분쟁이 생겨 우리의 입장이나 진실을 알린다거나, 교수가 자신이 연구한 주제를 세계적인 학계나 학술잡지에 발표를 하거나 강단에 선다거나, 예술작품들을 알린다거나, 프로 선수들이 강의를 한다거나, 혹은 우리나라 이외의 곳에서 전문직업을 얻는다거나 하려면 이에 대한 언어는 반드시 필요하다. 박세리를 보라 그가 얼마나 영어 말하기를 잘하는지. 이런 능력들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는다.
또 어떤 이들은 또 우리나라의 국어교육도 제대로 안되는데 왜 어려운 외국어를 어려서부터 가르쳐 우리의 정체성을 파괴하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영어 배우기가 어려워 배우려고 하는 이들만 배우게 하면 후에 큰 문제가 발생한다. 영어를 잘 할 수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사회에서 상하 계층이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영어를 할 수 있는 자와 못하는 자의 수입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게 되며, 중요성을 늦게 깨닫고 배우기를 시작하면 여러모로 너무 어려운 상황에 마닥뜨리게 된다. 예를 들어 언어배우기는 사춘기를 지나면 습득능력이 현저히 감소가 되며 그 어려움이 배가 된다. 발음은 고사하고 언어의 맛을 아는 능력에 대한 습득은 물 건너갔다고 보면 된다. 정부는 현재 잘못된 영어 교육을 고쳐 개인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해야한다. 새로운 제도 내에서 개인이 하기 싫어 못하면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만, 만약 제도 없이 우수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만 우대하면 이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대다수 국민들에게 원천적으로 기회를 박탈하는 정부가 되기 때문이다.
정체성의 문제는 우리의 국어교육을 강화하면서 해결해야 한다. 국어 교육을 하기 위함은 궁극적으로 우리나라 말로 생각하고 이를 조리 있게 말하거나 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어 후에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지식의 창출을 하거나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함에 있는데, 여러 이유로 이를 등한시 하고 있다. 국어 교육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문학과 고전과 그리고 문법에 치중해 있다. 이들 과목엔 우리가 들어 있고, 이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땐 글쓰기 방법이 우선인데, 현재 우리 대학의 일부만이 작문 과목을 채택하여 가르치고 있고, 초중등 교육 과정에선 한 학급의 학생 수의 과다로 인해 효과적인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정말로 우리 국어 교육에 치명적인 결함이다. 선진국의 예를 보더라도 자국의 언어로 자신의 사고를 표현하는 능력을 교육의 근간으로 삼아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글쓰기가(논술이 아님) 교육의 뼈대를 이루게 하지 않으면 한글 사랑과 우리의 정체성의 강화는 어려울 것이다. 한글 교육이 강화가 되어 이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으면 제 아무리 제 2외국어의 힘이 강하더라도 어려서부터 배운 자신의 것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다. 이스라엘 을 보라 나라 없이 2,000년을 지낸 그들이 자신의 문화나 언어를 잃어버렸는지.
영어는 배우는 이가 영어의 맛을 알기 위해 조기 교육이 필요하다. 언어의 맛을 안다는 것은 그 언어의 문화적 요인에 의해 그 언어가 나타나는 미세한 감정이나, 표현의 다양성, 그리고 예절 등을 이해하고 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을 일컫는다. 이에 대한 능력은 교실에서만 습득할 수 없을뿐더러, 사전도 가르쳐 주질 않는다. 이는 일반적으로 어려서부터 그 언어를 사용하여 이에 대한 용법들이 머릿속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어야 가능하다. 제 2의 언어의 습득은 스펀지 같은 머리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딱딱해지면 더욱 더 힘들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단순히 언어로 말하고 쓸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론 생각하고 자신의 의사를 말이나 글로 조리 있게 펼쳐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들이 필요하다. 생활 영어 수준, 즉 문장을 외워서 앵무새처럼 되뇌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길러 낼 수 있다. 하지만 언어를 통한 종합적인 사고 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길러내는 데에는 참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
조기 교육을 하면 그만큼 우리 학생들의 배우는 고통을 감소시킬 수가 있다. 왜냐하면 언어를 직관적으로 배우게 해주기 때문이다. 영어는 다른 언어에 비해 언어 규칙에 맞지 않는 예외조항이 너무나 많아서 이를 모국어로 하는 나라의 자국민들조차도 읽고, 듣고, 말하고, 쓰고 하는 능력을 평생 배워야 하니 말이다. 예를 들어, 그들도 영어로 술술 말한다고 해서 글이 저절로 써지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우리의 언어의 뿌리와 문화가 너무나 다른 영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려고 하는 우리로서는 이에 대한 능력들을 습득하는 일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 머리가 아프도록 읽고, 듣고, 그리고 말하기와 쓰기를 연습해야 잘하면 자신이 원하는 만큼에 반 정도를 이룰 수 있으니 말이다. 어려서부터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방식으로 배우지 못한 우리 대학생이 미국에 연수를 가서, 피나는 노력을 하면서 문화적 충격을 이겨내고 영어로 생각하고, 쓰기는 차치하고서라도, 단지 말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약 2년이 소요된다. 그나마 발음은 우리나라 말의 영향을 받아 여전이 우리나라말 엑센트를 떨칠 수가 없다. 평생을 노력을 해도 원어민처럼 발음을 할 수가 없다. 사용하는 입근처의 근육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아주 간단한 정관사(a, an, and the)의 경우 영어의 맛을 모르는 우리에게는 제대로 사용하기엔 정말로 힘들다. 평생을 연습해도 모를 수가 있다. 일찍서부터 언어를 의사소통 방법으로 배우게 되면 이런 어려움들을 다소나마 경감시켜준다.
한라산 산행을 해본 적이 있는가? 산 밑에서 정상에 다다르려면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온갖 고난을 이겨내야 할 것이다. 나는 영어로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 능력을 습득하는 일을 한라산 산행에 비유하고 싶다. 아니 우리나라 말 배우기도 마찬가지다. 산이 높다고 불만만 토하면 다다를 수 없다. 영어를 학교에서 일주일에 몇 시간 가르쳐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실 무리다. 어느 능력에 대한 습득을 원하는가에 따라 기간이 상당히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작고 힘없는 나라에선 차기 정부의 영어 교육의 방향은 맞다. 차근히 계획을 세워 반드시 영어 교육의 개혁에 성공하여 나라의 또 다른 자원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조제희 : 인수위원회 92번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