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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구석구석 구경하기 글/사진:이종원
철도부터 시작된 중국의 경제 발전속도 대련에서 하얼빈까지 1000km를 고속열차로 불과 5시간 만에 추파한다. 거대한 대륙은 이렇게 속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얼마난 기사를 보니 칭따오 차량 생산기지에서 자체 개발한 고속열차가 시험운행을 했는데 무려 시속 605km로 달렸다고 한다. 종전기록인 TGV 시속 574km를 단축시킨 것이다. 단연 세계 최고로 시속 1000km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고속철도망을 12,500km나 확보했다고 하는데 동서남북을 잇는 한나절 생활권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심양을 지나면 세상은 온통 설경으로 바뀐다. 이 기차야말로 현대판 설국열차
안중근 의사의 혼, 하얼빈 역 하얼빈 역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바로 그 현장이다. 빙등제의 고장 답게 역 광장에는 형형색색의 조명을 가진 얼음탑이 광장에 서 있다.
역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현대자동차 간판이 서 있으니 웬지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현대기아차 역을 해도 해외에 나오면 다른가보다. 하얼빈만은 일본차보다 현대차가 많이 팔려야 하지 않을까? 현지 기사에게 물었더니 자기는 지금까지 일본차 한번도 타본 적이 없다고 한다. 공짜로 줘도 안 탄다고 하는데 역시 안중근의 고장, 731부대가 있는 하얼빈 답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얼빈 역을 찾았다.안타깝지만 표가 없으면 역 구내를 들어갈 수 없단다. 역 주변만 뱅뱅 돌며 안의사의 흔적을 찾았지만 허탕을 쳤다. .
한국으로 돌아와 조간 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바로 하얼빈 역에 안중근 의사기념관을 건립했다는 기사였다. 2013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방문 당시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기념 표지석을 부탁했는데 중국은 더 나아가 안의사 동상을 세우고 그의 생애와 역사적 의미를 담긴 기념관까지 조성한 것이다. 내가 하얼빈 역을 그렇게 샅샅이 뒤졌지만 못 찾았으니 개관전 일본의 반발을 살 까봐 철통같은 비밀을 지켰다보다. 한국으로 돌아와 내가 찍은 역사 사진을 다시 들쳐 보니 바로 저 곳이 박물관임을 알게 되었다. 흑흑흑 다시 갈 수도 없고
기념관은 당시 하얼빈 역사를 대략 60평(200미터 제곱)으로 축소해 놓았다. 저격 현장이 잘 보이도록 통유리를 설치해 놓았고 입구에 걸린 시갯바늘도 정확하게 1909년 10월 26일 9시 30분에 멈춰 있다. 이등박문의 가슴에 총탄을 명중시키고 '우레 코레아(대한민국 만세)'를 외친 그 시간이었다.
그 격한 순간의 의미를 각인할 수 있도록 '안의사 이등박물 격살사건 발생지'라는 문구를 걸어놓았다. 제 2의 이등박문인 아베의 간담을 서늘케 한 쾌거가 아닐까.
일본 관방장관은 "안중근은 일본 초대 총리를 살해하고 사형 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는 망언을 늘어놓으며 기념관 설치에 대해 한국과 중국에 항의를 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이토 히로부미는 대한제국에 을사 늑약을 강요하고 무력을 동원해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침탈을 주도했고,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짓밟아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해악을 끼친 원흉'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은 더 나아가 안의사를 저명한 항일인사이자 중국 인민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며, 아시아 제 1의 협객이라는 칭송까지 했다.
아시아 제 1의 협객. 그렇다. 함경도에 의병활동을 용정, 연길 등 북간도를 주유하고 블라디보스톡에서도 독립운동을 했으니 나라 잃은 울분을 삭이며 이국땅을 떠돌아다닌 낭인이었다.
그의 의거 10년이 지난후 안중근은 역사 전쟁의 한 복판에 다시 서게 된 것이다. 1909년 10월 초순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대장성 코코프체프 대신과 만나기 위해 하얼빈을 시찰한다는 소식을 듣고 안중근은 나라와 겨레의 원수를 갚을 기회로 판단하고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해 하얼빈에 잠입한다.
하얼빈 역의 경계가 삼엄할 것을 판단해 우덕순과 조도선, 유동하는 전 정거장인 채가구역에서 이토가 오길 기다렸고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늙은 여우를 가다리기로 했다. 2번의 기회 중 한번은 성공하리리 믿었을 것이다. 러시아가 제공한 특별 열차는 채가구역을 그냥 지나쳐 거사의 기회는 안의사에게 넘어갔다. 그는 7시부터 역대합실에서 이토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러시아군은 동양인에 대해 검문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오히려 일본이 반대했다. 국력팽창에 대한 자신감이랄까.
9시 쯤 도착한 이토는 영접나온 코코프체프와 열차안에서 30분간 회담을 나눈 후 열차에서 내려 군악대 열병식을 마치고 환영나온 일본 인파와 인사를 나눈후 마차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이때 러시아 군대 뒷편에 기회를 노렸던 안중근이 뛰어 나와 권총 3발을 발사했다. 역사에 멈춘 오전 9시 30분이다. 3발의 총알은 정확하게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을 명중시켰고 얼마후 그는 절명하고 만다. 혹시나 해서 그 뒤에 있는 일본인과 비서도 총을 쏜다. 총 7발 중에서 6발을 쐈고
'코레아 우레(대한민국 만세)"를 세 번 외친 뒤 안중근은 러시아 헌병에게 총을 거꾸로 한 채 전해 주었다.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지만 안의사는 그리 하지 않았다. 바로 하얼빈 주재 일본 영사관에 인계되었다. 우리말로 해봐야 알아 듣지 못하니까~~~러시아 어로 외쳤던 것이다. 나중에 이토가 죽었다는 소릴 듣고 하늘 향해 성호를 그었다고 한다.
"탕탕탕" 그 총소리의 울림은 기차의 기적소리만큼 컸고 “우레 코리아” 란 외침은 오랫동안 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그가 쏜 통탄은 십자가 모양으로 팠다. 피부에 닿으면 치명적이다. 거기다 종교적 신념이 있었지 않을까 싶다.
거사를 꿈꾸다. 제홍교 미리 하얼빈에 도착한 안중근은 하얼빈 역사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제홍교 위에서 역 구내를 조망했고 가슴팍의 숨겨둔 권총을 어루만지며 이토히로부미를 져격할 연습을 했을 것이다.
지금도 다리 위에 서면 하얼빈 역사가 한 눈에 잡힌다. 탕탕탕~그 총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하얼빈에서 안중근을 만나다. 안중근 기념전 하얼빈에서 안의사의 행적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전시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하얼빈시 안승가(安昇街)에 자리한 조선민족예술관이다. 2층으로 올라가면 안중근의사기념전이 꾸며져 있다.
입구에는 안의사 동상이 서 있고 저격 현장과 단지 동맹에 관련된 이야기를 부조로 조성해 놓았다. 2006년 7월에 개관한 박물관은 안의사의 유묵과 각종 역사자료 등 안중근의 삶이 그려졌으며 총 3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국내에서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섰던 안중근은 연해주로 건너가 의병부대를 조직해 활동했으며 하얼빈으로 넘어와 대한제국의 원흉과 중국침략의 수괴 이토 히로부미를 처형했다고 적혀 있다. 중구인들도 중국 침략의 수괴로 보고 있었다. 기념관은 하얼빈시의 비준을 거쳐 설립되었으며 전시 자료와 설계는 한국의 독립기념관에서 지원과 협조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러시아에서 단지동맹으로 손가락이 잘렸다.
하얼빈 현장의 부조
안의사의 삶은 한국- 상해-북간도-연해주-하얼빈- 여순 순으로 이루어졌다.
출생과 성장. 독립운동, 거사과정 등이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하얼빈에서 만나는 안중근이기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좌로부터 조도선, 우덕순, 안중근, 유동하
나도 이 애국지사 대열에 살짝 들어갔다.
저격 현장을 밀랍인형을 이용해 생생하게 꾸며 놓았다.
난 2014년 이토 히로부미인 아베에게 한 방 쏜다.
안중근 의사의 흉상
거룩한 손
시대의 암흑을 밝히는 자유의 등불로 인류를 위한 단지 공양, 거룩한 손 퇴비 되어 미래 영광 싹 틔우니 아시아는 그를 일러 영웅으로 노래하네 -홍석원
2014년 그는 아시아의 영웅이 되어 다시 나타났다.
안중근의사의 유언, 조린 공원 동북항일연합군의 지도자였던 이조린장군의 묘소가 있는 시민공원. 예전 이름은 하얼빈 공원으로 겨울에는 작은 빙등제가 열리고 있다. .
이곳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유언에 나오는 장소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 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안중근 의사가 뼈를 묻히고 싶었던 바로 이곳 조린공원이었다.그러나 아직도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가울 따름이다. 그만큼 그의 거사가 있었던 하얼빈을 사랑하고 있었다. 조린공원 안에는 옥중에서 쓴 글을 새긴 유묵비가 서 있다.
하얼빈 최대 번화가인 중앙대가 하얼빈 멋쟁이 들이 걷는 거리 인 중앙 따지에. 중앙대로는 도보길이다.
남북을 관통하는 도보길로 남쪽 신양광장에서 북쪽 방홍기념탑이 있는 스탈린공원까지 1.4km 직선으로 이뤄져 있으며 양쪽에 최신유행의 번화가와 맛집이 가득. 특히 중국에서 미인으로 소문난 멋쟁이 하얼빈 여인들을 만날 수 있다.
차가 다니지 않고 로마제국처럼 벽돌이 깔려 있어 걷기에 그만이다. 가로 18센치, 세로 10센치 화강암을 인공으로 쪼아 만들었다고 한다.
흑룡강성의 성도인 하얼빈. 그중 최고 번화가는 중앙대가다. 원래 하얼빈은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1910년대까지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하얼빈은 동청철도가 건설되자 하얼빈은 철도 기지가 되었다. 그때부터 근대 도시로 거듭났고 중앙대제는 당시 노동자들이 만든 거리다. 러시아풍의 오래된 건물이 즐비한데 중국과 서구문화가 혼합하니 무척 독특하게 보인다.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 건물이 즐비해 사진 찍기에 그만이다.
방홍탑에서 바라본 중앙대제
이곳은 우리네 대학로처럼 하얼빈 최대의 문화 예술의 거리이기도 하다.
특히 빙등제가 열리는 시기에는 형형색색의 등과 눈과 얼음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마이클잭슨의 눈조각
코카콜라를 마시고 있는 북극곰
역시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하얼빈에서는 아이스하드를 먹어야 제맛. 이냉치냉을 즐기는 중국사람들. 냉장고도 없이 상온에서 하드를 판다.
하드 파는 사람도 단단히 무장
하얼빈의 멋쟁이들은 이렇게 단단히 무장하며 마지막으로 하드를 입에 물어야 패션의 완성
추워 죽겠는데 나도 한 입~~입 안이 덜덜덜
하얼빈에 가면 탕후루를 놓칠 수 없다. 한겨울 이걸 먹어줘야 추위를 이길 수 있다.
사과, 귤, 딸기, 포도, 파인애플, 은행 등 생과일을 꼬치에 꽂고 설탕물을 입혀 놓은 과일 먹을거리. 영하 30도에서 먹는 중국 길거리 음식으로 지금은 중국 전역에 퍼졌다.
탕후루의 종류도 다양
사과, 포도~~
이빨이 다 시릴 정도
스탈린 공원과 송화강 중앙대제 끝자락은 송화강 홍수방지 승리 기념탑이 차지하고 있다. 일명 방홍기념탑. 1958년 대홍수를 막아낸 하얼빈사람들의 노고를 기념하기 위한 탑으로 강물 수위가 얼마까지 올라왔는지 보여주고 있다. 1998년 8월 22일은 역사상 대형 최대 홍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부조를 보면 머리를 딴 한복 입은 여인이 보인다. 그만큼 하얼빈에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산다는 방증이다. 이 추운 곳에서 땅을 일구고 사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러시아거리 끝자락 송화강 가는 스탈린 공원. 태양도와 송화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봄에는 꽃이 만발하며 나무가 울창해 산책코스로 좋다.
송화강은 하얼빈을 관통하는 강으로 로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해 북서쪽으로 흘러간다. 그 길이가 무려 1,960km를 자랑한다. 한때 하얼빈은 고조선의 영역이었고 부여가 이 곳에 기반을 닦았다. 발해의 북쪽 국경은 송화강 근처다. 태양도를 잇는 케이블카가 놓여 있다.
송화강 관광마차
송화강변은 겨울 놀이의 천국. 중국의 팽이는 한국의 2배 크기
미끄럼, 썰매, 스케이트 등 다양하다.
문어 모양의 연
밤이 되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영하 30도에 매서운 바람까지 더하니 동토의 날씨를 온몸으로 실감하게 된다. 하얼빈에서 볼수 있는 자동차 누비 커버
러시아 건축의 백미인 성 소피아 성당 1907년에 건설된 러시아 정교 교당이다. 지면에서 꼭대기 십자가 까지 높이가 무려 53m로 동아시아에서는 가장 큰 성당이다. 둥근 돔형태로 비잔틴 양식을 띤 고풍스런 성당으로. 웅장하고 섬세한 자태가 특징이며 내부는 현재 하얼빈건축예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만주철도가 개설되면서 러시아 병사를 위한 군 예배당으로 활용되었으며 지금은 하얼빈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밤에 보는 성당이 아름다운데 주변 상가의 호텔의 주황색 조명도 성당에 맞췄다.
성소피아 성당 측면.
세밀한 조각이 돋보이며 건축예술의 백미로 손꼽힌다.
세련된 LED 가로등
인간으로서의 가장 참혹한 만행, 731부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동서고금을 통털어 가장 잔인한 놈들이 731부대가 아닐까. 화학세균전 준비를 위한 연구와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한 현장이 바로 이곳이다. 하얼빈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부대 인근 지역을통과시 열차 커튼을 모두 내려야 하고 무대 창문밖으로 내단 본 승객은 그 자리에서 체포했다고 할 정도로 보안에 신경을 썼다.
마취 없이 성인남녀, 청소년, 어린이. 심지어는 임산부까지 배를 가르고 출혈 연구를 위해 팔다리를 절단해 반대편에 붙이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이들에게 인간은 그저 실험실 개구리였다.
이런 죄악을 저지르고도 이 부대에 대해서는 묵묵부답. 오히려 지난해 5월 아베신조는 731 표시가 선명한 전투기에 올라 범죄의 산실인 731부대를 회상하게 만들었다. 전투기에 올라 미소 짓는 모습은 군국주의 기치를 내세우고 아시아인에게 고통을 준 과거 카미나제의 얼굴처럼 보인다.
한때 하얼빈 25 중학교였던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지독한 인권유린의 현장 1~2층을 둘러보면서 일본인의 만행을 볼 수 있다.
한국어 자동 안내기가 있다. 혼자서도 설명을 들으며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다. 15위엔...2500원 정도
수감자의 고통을 그린 작품. 인간이 어쩜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천황의 칙령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부대로 이시이 시로가 주도해 이시히 부대로 불린다. 히로히토 왕의 막내 동생이 이 부대의 장교로 복무해다고 한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패스트 균 주입
하얼빈의 차가운 온도에 물을 뿌리고 영하 30도 야외에 내몰고 동상으로 죽어가는 시간을 기록
폭탄을 근처에 떨어뜨려 파편이 몸에 박히는 정도를 실험.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을까 볼 수 있는 대목.
중국, 몽고, 러시아 군인과 일반 시민 등 약 1만명이 행화학 실험의 마루타가 되었다. 대다수가 항일운동가다. 심득룡은 공산주의자, 김성서는 함북 길주출신으로 항일운동가
죽어간 사람들의 명패 중에 한글 이름을 발견하니 속에서 울컥거린다.
"과거의 만행을 잊지 말고 훗날 사표로 삼자'라는 글귀와 종이학을 접어 보낸 일본인. 일본인 스스로 반성하게 만들어야한다.
731 부대 터. 그 야만적인 행위를 단절시키지 못한 것이 역사의 한이다. 731 부대와 관련된 과학자는 훗날 일본의 학계, 정치, 의학 부문에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에 항복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러시아에 제공하지 않는 대가로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이 비인륜적인 행위는 미국이 면죄부를 줬다고 해도 무방하다. 만약 미국인이 이렇게 당했다면 그렇게 관대할 수 있을까. 오늘날에도 미국은 일본 편을 들고 있으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전쟁이 끝나 일본으로 도망친 부대원들은 일본 의학계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반성은커녕 영화를 누렸다. 교토대 의학대 학장을 지낸 요시무라는 신생아의 손발을 인위적으로 얼리는 실험을 자행했고 또 그 자료를 통해 논문발표까지 하면서 의학자의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논문의 내용을 보면 생체 실험을 하지 않았다면 그런 데이터가 나올 수 없다고 한다. 일본 노벨상 수상자의 이면에는 이런 죄악이 숨어 있다.
일본 녹십자 회장, 의과대 학장 등은 모두 731부대의 가담자였고 훗날 훈장까지 받았다니 죽은 자는 아직도 구천을 헤메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인간으로서 가장 추악한 범죄가 바로 이곳 731부대에서 자행되었다.
삶애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세계 최대의 호랑이 공원, 동북호림원 백두산 호랑이를 가까이 보고 싶다면 세계에서 가장 큰 호랑이 번식 공원인 호림원을 찾으라. 총 4개 구역 철조망이 쳐진 들판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호랑이를 사파리 버스에서 내려다 보게 된다.
호랑이 화장실 입구에 있는 조형물에서 한 컷. 내가 연기를 너무 잘했나.
사파리 관람차 입장권. 10원이면 저렴하네
철조망을 쳐진 버스를 타고 호랑이를 가까이 보게 된다.
유리틈 사이로
백두산 호랑이, 즉 시베리아 호랑이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그 자태가 대단하다. 백두산을 호령하며 시베리아 벌판을 휘저었을 우리네 호랑이다.
길이는 무려 3미터 정도 될 것 같다. 표정이 살아 있네
호랑이가 고양이만큼이나 많다. 사파리 버스에서 내리면 우리에 갇힌 호랑이 감상
먹이주기 체험도 남다른다. 고기 덩어리는 8위안 정도 . 특이한 것은 생닭도 산채로 던져줄 수 있는데 얼마나 불쌍한지 모른다. 생닭은 30위안(우리 돈으로 6천원 정도)
눈깜짝할 새에 하늘로 뛰어 고기덩어리를 낚아챈다.
닭은 털을 뽑고 뜯어 먹는다. 뒤에는 까마귀가 청소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 아이고 무서워라.
2층에 오르면 우리 위쪽에서 내려다 볼 수 있다 저기 떨어지면 끔찍
백호도 볼 수 있다.
흑룡강성 박물관 간체자가 아니 우리가 쓰는 번체자 한문을 보니 반갑네. 자연박물관과 역사박물관 두 곳으로 나뉘어진다. 명색이 성급 박물관인데 옷가게가 붙어 있고 고복잡한 도심에 자리해 집중도가 떨어진다. 토큰 판매소 처럼 생긴 매표소에 여권을 제시하면 무료
7백만년 전 공룡화석
맘모스 뼈.역사박물관에는 발해, 요, 금송 원, 근대까지 도자기등을 볼 수 있다.
양꼬치집, 금강산 하얼빈 역 근처 금강산이라는 양꼬치집인데 1~2층에다가 중간층까지 공장처럼 크다. 종업원에게 물어보았더니 한국의 '금강산' 이름을 따왔다고 하니 괜히 기분이 좋다. 주방에서는 다양한 꼬치를 구워내는데 아무리 주문이 많아도 금방 구워오는 것이 이 집의 특징
매번 양, 소고기, 닭 이런 것만 먹다가 이번에는 특별한 꼬치구이를 주문했다. 바로 돼지 꼬리 구이~꼬리에 은근히 살이 많이 붙었던데 . 비게가 많아 조금 느끼하지만 나름 괜찮아.
이것은 오리 혓바닥구이. 오리주둥아리에서 이 혓바닥을 어떻게 뺐지.. 살다보니 별걸 다 먹어 보네
난 하얼빈의 밤을 이렇게 보내고 있다. |
첫댓글 돼지꼬리구이..오리혓바닥구이...음식도 입맛도 글로벌시대...ㅎㅎ
안중근 의사의 혼이 살아있는 하얼빈 여행기를 보면서
나라잃은 통한의 눈물을 흘리시고 그 살을 에이는 추위를 격으시며
독립을 외치신 안중근 의사와 애국지사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직도 반성을 안하고 망발과 파렴치한 행동을 하고 있는 일본인들이 있다는 것을 좌시하지 말고
대응책을 잘 세우고 우리 모두가 각성해야 하는데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걱정도 많이 되네요.
역사적인 의미도 되새기고 볼거리도 먹을거리도 많은 하얼빈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대장님~ 감사합니다. *^^*
대단히 감사합니다~~
정말 대단하신 대장님이셔~~ 어쩌면 이리 글재주도 대단하실까??? 세계일주여행기 나올 날도 머지 않을 것 같네요!!!!
기대합니다~~~ 대장님 최고!!!! 이공공삼공삼공삼~~~
가슴 뭉클한 여행기 잘 보았습니다
2010년에 다녀온것입니다 ~~ 할빈 안중근기념관장님외 많은분들 잘 알고있답니다~~ 오랜만에 생생한 뉴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