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11월30일자로 백마29연대장 직을 마치고 귀국하니 공수단 중에서도 최고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제1공수특전 여단장직을 전두환 대령은 맡게 되었다.
1973년 1월1일 전두환 여단장은 준장으로 진급했다. 육사시절부터 별을 꿈꾸며
용성(용성)이라는 별칭까지 불렀던 그가 비로소 별을 단것이다.
육사11기중 그와 함께 별을 단 선주주자는 손영길, 김복동. 최성택. 등 네명 이였다.
마음의 고향 1공수특전단장으로 부임 후 최고의 부대 을 만들기에 자신이 걸어온
그의 경험을 부대원에게 전수하기 시작했다. 그때 부대에는 1공수만의 독특한 제식
동작이 있었다. 신고식을 할 때면 몸을 움직여서도 안 되고 눈을 깜박거려서도 안 되었다.
눈물이 흐르더라도 그대로 있어야 했다.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면 몸을 움직인 것으로
간주되어 그 자리에서 엄격한 여단장에게 지적당하고곤 했다. 이 제식동작은 全여단장이
고안해낸 작품이었다.
집총제식 때는M16을 붙잡고 미국식으로 어깨에 맨 채로 열중쉬엇 과 차렷을 붙이는 것도
그가 고안한 것이다. 이러한 동작들은 어떤 면에서는 공수교육 보다도 참기 어려울
정도였다. 저녁에는 다른 여단은 실내점호 정도로 끝냈지만 1공수특전여단은 전원이
연병장으로 나와 인원 점검을 받고 군가를 부르면서 끝내게 되어 있었다.
이렇게 군기가 엄했던 것은 특전사모체인 제1공수특전단을 최고의 공수부대로 만들고자
했던 全여단장의 지휘 통솔이었다.
지금도 그 시절에 공수교육을 받았던 나로서도 그때 있었던 일들이 잊을 수 없다.
한여름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삼복이 들어있는 날씨에 공수교육을 받았을 때는
일부러 물을 먹을 수 있는 음용수 자리를 휴식하는 자리와 300m 이상 멀리 있게
만들어 하루 종일 뛰면서 교육받고 있던 우리들을 구보로 가서 물을 먹게 하는 정신을
교육시키기도 했으며 그 무더운 날씨에도 철모도 못 벗게 하니 교육 중에는 자연이 땀이
눈에 들어가 깜박이면 그때는 얼차려 을 당하기도 했다. 휴식 시간도 없이 하루 8시간의
강도 높은 훈련으로 우리의 정신자세를 한층 더 높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 후 자대로 가서도 공수단 요원으로써의 자긍심과 더 힘들고 어려운 훈련을 견디며
지낼 수 있는 용기와 기백을 심어준 그 1공수단의 교육이 밑거름 된 것이다. 당시의
1여단의 군기는 다른 여단의 군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 정도로 엄중했다.
全여단장은 다소 충동적인 면은 있으나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이면 벌을 주지만 반대로
잘한 것이 눈에 띄면 표창이나 특별휴가도 서슴치 않고 보내주곤 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그때는 힘들고 고된 훈련이었지만 그렇게 하므로 해서
군에서의 사기와 부대 운용을 아주 잘한 거라 여기게 되었다.
지금도 사회생활 하며 살아가는데 많은 교훈이 되어 그때 일을 회상하곤 한다.
첫댓글 부산의 천마님~ 건강하시죠? ......
네..잘있습니다. 덕분에.. 님도 건강 하게 잘지내고 있는지요?
천마님 고생하신 모습 조금은 알것 같습니다. 가끔 뵐때마다 보이는 주름 역사의 훈장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