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성 이사장 "부모가 행복해야 자식이 큰사람 된다"
희생하는 모습만 보여주는건 바람직하지 않아
'붕어빵 교육'은 아이 망쳐…소통 능력 키워줘야
예일대 의대를 졸업한 장남(고경주·하워드고)은 미국 오바마 행정부에서 보건후생부 차관보를 지냈고, 삼남(고홍주·헤럴드고)은 예일대 로스쿨 학장을 거쳐 국무부 법률고문을 맡았다. 6남매 중 5명이 하버드대, 1명이 예일대를 졸업해 예일대 로스쿨 석좌교수, 의사, 예술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을 키운 어머니 전혜성 예일대 동암문화연구소 이사장(83)이 자신의 자녀교육법을 담은 책 《생의 목적을 아는 아이가 큰사람으로 자란다》(센추리원)를 들고 고국을 찾았다. 이 책에는 자녀를 글로벌 리더로 키우고 부모의 인생도 가치 있게 만드는 교육법이 담겨 있다.
그는 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자녀를 위해서라도 부모의 인생이 행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모가 인생을 가치 있게 사는 모습을 보일 때 자녀도 큰사람으로 자란다는 설명이다.
또 부모가 아이들을 위해 희생만 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잘 먹이고 잘 입히는 것보다 타인과 의사소통을 잘 할 수 있도록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부모도 책과 신문을 읽고 세상을 알아야 아이가 컸을 때 대화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끊임없이 배우고, 배운 걸 남에게 풀어놓고 봉사할 때 아이들도 '아, 저렇게 살아야 하는 구나'라고 생각하죠. 부모의 자긍심이 높아야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자랍니다. 저는 단 한번도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얘기를 한 적이 없어요."
그는 "교육문제는 곧 노년문제이기에 더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에서는 손자가 결혼할 때 자기는 돈이 98명 초대할 만큼밖에 없으니 그 이상 부르지 말아 달라고 부모에게 말하더군요. 한국은 어떻습니까. 교육시키고 결혼시키느라 돈을 다 쓰면 노년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죠."
자녀들의 특징을 살리는 교육도 주문했다. 개개인의 특징이 모두 다른데 똑같이 법대나 의대를 바라는 풍조가 자녀를 망친다는 얘기다.
"교육은 솥에 물을 붓는 게 아니라 아궁이에 불을 때서 끓게 하는 겁니다. 교육열이 높은 건 좋지만 다른 사람과 똑같이 시키지는 마세요. 싸이도 우리 음악의 흥을 잘 살려내서 성공했습니다. 사람마다 재주는 다 달라요. 손자들이 싸이 말춤을 모르고 한국에 가면 안 된다고 저를 가르치더군요(웃음)."
그는 한국 문화와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라며 세계화 시대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야 다른 것(세계 문화)과 섞였을 때 새로운 걸 창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용 세계은행 총재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김 총재의 어머니가 동양철학을 공부했고, 김 총재는 이를 번역하면서 한국의 정신과 역사를 알게 됐다는 것. 우리 전통을 알아야 세계무대에 나갔을 때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그래서 조기유학을 결정할 때도 신중해야 한다"며 "가정에서 자라며 전통과 유대감을 배우는 것만큼 중요한 교육은 없다"고 덧붙였다.
그 자신도 세계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열심이다. 4년 전 예일대 근처의 실버타운에 들어가 살며 '노년 문화'를 연구하는 그는 칠순, 팔순 등 큰 잔치문화를 현지 동료들에게 알리고 있다.
"서양에는 이런 문화가 없어 노년에 허무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잔치를 갖고 축하를 받으면 '이만하면 뜻깊게 살았다'는 자부심을 갖게 돼요. 우리의 좋은 문화죠."
박한신 기자hanshin@hankyung.com
[女세상의 중심] 전혜성 박사…애업고 논문써서 보스턴대 박사 받아
이 땅의 어머니에게 자녀 교육은 절대적인 가치나 다름없다. 우리 주변에는 자녀교육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희생하는 어머니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재능과 자녀교육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를 꼽으라면?
초대 주미 특명전권공사를 지낸 고광림 박사(작고)와의 슬하에 둔 6남매를 모두 미국 하버드대ㆍ예일대에 보낸 전혜성 박사(81)는 두 가지 모두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그녀는 '자녀교육에 성공한 어머니'의 대표사례로 손색이 없다. 장녀인 경신 씨는 중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고, 장남 경주 씨는 미국 보건부 차관보, 차남 동주 씨는 매사추세츠주립대학교 교수, 3남 홍주 씨는 예일대 법대학장을 거쳐 버락 오바마 정부 국무부 차관보급인 법률고문에 올랐다. 차녀 경은 씨는 예일대 법대에 재직 중이고 4남 정주 씨는 화가이자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자녀들을 이렇게 키운 어머니지만 자신이 이룬 성취도 대단하다. 보스턴대 대학원에서 사회학ㆍ인류학으로 박사학위을 받고 예일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부장을 지냈다. 여든이 넘도록 연구를 이어오면서 학술서 6권과 논문 60여 편을 펴냈다. 최근에는 노년연구를 통해 '인생 2막'을 활기차게 열어젖혔다. 놀라운 성취의 비결을 듣기 위해 매일경제가 최근 한국을 방문한 그녀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만났다.
◆ 일과 보육은 얼마든지 병행할 수 있어
= 21세 여름이었다. 유학생이던 그녀는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회도서관에서 일을 하다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남편을 처음 만났다. 남편 지도교수의 지원사격과 남편의 열렬한 연애편지로 두 사람은 가까워져 이듬해 결혼에 골인했다. 남편은 철두철미한 성격이었다. 알고 보니 연애편지는 두 번, 세 번씩 고쳐쓴 것이었다.
그들은 6남매의 교육에 있어서도 철저했다. 자녀들은 학교숙제를 끝낸 뒤 부모가 따로 내주는 숙제를 해야 했다. 반드시 일기와 독후감을 쓰게 해 점수를 매기고, 영어와 라틴어 단어장도 매일 기록토록 했다. 수학과 과학도 따로 교육시켰다. 아침 식사는 반드시 같이했고 아이들에게 '공부하라' 대신 '공부하자'고 말했다. 저녁에는 온가족이 둘러앉아 책과 씨름하거나 토론을 했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가사만으로도 몸은 고달팠지만 그녀는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도 수유 시간이 되면 아이에게 젖을 물렸고 아이를 업고 서서 타이핑을 했다. 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 막내딸을 낳았던 1958년에는 하루 수면시간이 3시간도 안 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아이들을 잘 기른다는 건 급속도로 바뀌는 세상에 아이들을 적응시켜서 내놓는 거죠.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모르는 부모가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겠어요. 좋은 어머니는 열심히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그는 "일과 보육을 함께하는 일이 힘들어 보여도 목적의식이 분명하면 열정이 생기고 만사가 안 되는 게 없는 법"이라며 "여성으로서의 행복도 사회에 참여하고 일하고 공동체를 가지면서 집에서 못 하는 일을 보충할 때 나온다"고 했다.
동반자였던 남편도 큰 힘이 됐다. 나이가 많아 선배 같았던 남편은 양육도 일도 모든 걸 같이했다. 예일대에서도 강의를 함께했고 한국학연구소에서도 동양법과 문화를 가르치는 일도 같이했다.
그가 늘 지켜온 교육철학은 자녀들을 '섬기는 사람'으로 만들고자 한 것이었다. 지금도 홍주 씨는 아침마다 출근을 하면 어머니께 전화를 먼저 드린다.전 박사는 "아들이 국제법을 비롯해 자신이 배워온 모든 지식을 사회를 위해 활용할 수 있어 매우 보람을 느끼고 있더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홍주 씨를 학장님(Dean Ko)이라고 부른다. 법률대학원을 나온 데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높이 샀기 때문이란다.
그 철학은 11명의 손자ㆍ손녀들에게도 이어졌다. 대학 진학을 한 10명 모두 하버드, 예일, 브라운대 등 아이비리그와 MIT에 진학했다.
그는 장남과 3남의 공직 청문회를 겪으면서 미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한인의 위상이 크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지 않으면 아이를 아무리 열심히 길러도 소용없다는 점을 깨달았다는 것. 여전히 미국 주류사회에서 아시아계는 5%, 한국계는 1% 남짓에 불과하다. 그는 "한국인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세계적인 문제에 대해 공헌을 하고 위상을 높이는 것이 한인 3세들을 위해서도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현재 주류에서 뛰는 실력자들도 한국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여든을 앞두고 인생의 2막을 열다
= 78세 가을을 맞으며 그는 자신의 생활 터전이던 예일대 근처 비영리 노인복지단체 휘트니센터로 거처를 옮겼다. 처음엔 막상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살 것이라 생각하니 처량했지만 실제 생활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곳에선 사회에서 은퇴했지만 인생에서는 은퇴하지 않은 노인 175명이 살아가고 있었다.
"90세, 100세에 가까운 노인들이 몸이 쇠약해져 기구에 의지하면서도 한결같이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었어요."
저명한 정치학자였던 한 노인은 공동체에서 캔을 줍는 일을 해서 모은 돈을 사회에 기부하고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한 할머니는 걷지는 못했지만 뜨개질을 해서 병원에 숄을 3000개나 기증하기도 했다. 이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일 가운데 하나가 젊은이들과의 소통이었다. '브리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은 고교생과 모임을 정기적으로 가졌다.
전 박사는 "나이 들었다고 하루하루를 그저 흘려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미국에는 이처럼 노인들이 자랑스럽게 삶을 연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고 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현실은 갈 길이 멀다. 그는 "한국은 65세 이상의 노인이 증가하는 속도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르지만 노인복지시설은 물론 노년층을 위한 프로그램은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한국에도 이런 노력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늘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펴낸 책 '가치 있게 나이 드는 법'에는 그러한 고민이 녹아 있다.
전 박사는 "나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년을 '실버에이지'라고 부르지만 실제론 '골든에이지 같다"고 했다. 나이가 드니 눈도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안 들리긴 하지만 말을 더 잘 들어주고 존중해준다는 특권도 있다는 얘기였다.
이 같은 그녀의 열정적인 모습이 자녀들에게 가장 훌륭한 교육이 아니었을까.
■ She is… 1929년 서울 출생.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영문과 2학년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 가 디킨슨대에서 경제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고학생 시절 결혼한 뒤 보스턴대 대학원에서 사회학ㆍ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보스턴대, 예일대 로스쿨 등에서 강의했고 예일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부장 등을 역임했다. 1952년 남편과 공동 설립한 한국연구소를 계승한 동암문화연구소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2004년 한인이민100주년준비위원회의 '지난 100년간 미국에 가장 공헌한 한인 100인'에 남편, 장남 경주 씨, 3남 홍주 씨와 함께 선정되기도 했다.
[김슬기 기자 / 사진 = 김성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