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숨은 명산을 찾아서
청주-청원 선두산~선도산
한남금북정맥 줄기 따라 청주 제일봉에 오르다
신발끈을 고쳐 메고 배낭끈을 조여 본다. 정상을 한번 보고 숨을 가다듬는다. 선두산 초입, 무더운 날씨에 산봉우리가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너문대월고개를 시작으로 선두산(527m), 안건이고개를 지나 선도산(547m)에 올랐다가 말구리재 갈림길, 한시울 마을까지 오늘의 산행코스. 청주 지역에서 제일 높고 한남금북정맥 마루금에 솟은 산줄기지만 '머르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힘차게 첫 발걸음을 내디뎌 본다.
주말이나 쉬는 날이면 아버지는 으레 "산에 갈래? 너, 바위타고 산 능선을 걸으면 얼마나 좋은지 알아?" 라고 부추겼지만 한번도 밝은 표정으로 따라 나섰던 적이 없었다. 난 늘 "아빠나 가세요. 쉬는 날 힘들에 산에는 왜 가?" 라며 가판대 문어같이 늘어진 자세로 컴퓨터 앞을 지키곤 했었다. 그런 내가 취재를 이유로 산에 간다니... 친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친구들 염려는 아랑곳없이 소풍가는 것 마냥 설렌다.
선두산에 오르기 위해 너문대월고개에 섰다. 보통은 한계저수지 오른편 임도를 따라 걸어서 40분, 차로 10분쯤 걸린다. 오늘은 차로 이동해 너문대월고개에서 출발하기로 한다.
오르내리는 산길에서 배우다
왼쪽으로 들어서자 초입부터 가파르다. 콧잔등에 땀이 맺히고 숨이 차오르지만, 푹신한 흙길과 때마침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때문에 한결 수월하다. 길가에는 밀버섯이 하나둘씩 모여 머리를 내밀고 있다. 그렇게 15분 정도 부지런히 걸어 땀이 솟을 즈음, 선두산 정상에 도착한다. 작은 돌로 만든 정상석이 있고 나무에 매진 색색의 표지기가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준다. 나무들로 둥글게 발을 쳐놓은 것 같은 이곳, 요새 같기도 하고 아늑한 새 둥지 속 같기도 하다. 둘러진 나무 때문에 조망은 시원치 않다. 길 안내를 맡은 '청주삼백리' 김춘곤 대장이 한 나뭇가지에 표지기를 뗀다.
잠시 휴식 후 발걸음을 옮긴다. 진달래군락을 지나 비탈길을 오르니 안건이고개다. 성황당 터의 돌무더기가 오래 전 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던 길이었음을 알려준다. 곧이어 길은 빽빽한 소나무숲으로 들어간다. 햇빛이 들지 않아 어두컴컴하다.
"대장님, 여긴 정글 같네요. 나무가 우거져 전망도 없는데 사람들은 왜 이런 곳을 찾아오나요?" 초보다운 질문을 하자 김대장이 웃으며 답한다. "하하, 산행이 처음이지? 산타는 사람들은 인적이 드문 이런 곳을 자주 찾지.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가끔씩 옛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해. 그것이 산행의 묘미가 아닌가 싶어."
완만하다 싶더니 어느새 내리막길이다. 돌이 거의 없는 푹신한 길이라 가볍게 뛰듯이 내달린다. 그러나 길은 또다시 가팔라진다. 코가 땅에 닿을 듯한 경사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15분쯤 지나자 완만한 길이 다시 이어진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지만 부드러운 흙길과 주위를 감싼 울창한 나무들 때문에 마치 꿈길을 걷는 기분이다. 그것도 잠시, 선도산 능선을 따라 남봉으로 이어지는 5분간의 오르막이 다시금 꿈에서 깨어나게 한다. 울고 싶은 심정이지만 분명히 끝은 있다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다독거린다.
선도산 정상.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어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고, 통신탑과 한남금북정맥 표시가 새겨진 정상석이 전부다. 상상했던 정상의 모습이아니었지만 산꼭대기에 올랐다는 성취감만은 컸다. 역시 나무들이 조망을 가로막고 있어 시원한 느낌은 덜했다.
뜨거운 햇볕을 피해 내려가서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온 길을 되짚어 하산을 시작한다. 선도산 남봉으로 경사진 길을 십분쯤 내려가니 다시 안건이고개와 말구리재 방향으로 길이 갈린다. 말구리재는 선도산 남봉 서남 방향에 있으며 월오동 서운말과 한계리, 낭성면 지산리를 연결한다. 말굽 모양의 고갯길을 가지고 있어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말구리재와 미테재 사이 능선은 완만한 산책길이다. 미테재는 숲길 걷기와 삼림욕 장소로 매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두 시간 정도 걸린다는 김대장의 설명. 오늘은 말구리재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한 시간 정도의 짧은 코스로 하산하기로 한다.
완만한가 싶더니 길은 어느새 가파른 내리막으로 변한다. 이런 급한 내리막은 처음이라 엉금엉금 기다시피 가고 있는데 "포대자루라고 가져와 미끄럼을 타지 그랬나" 라며 김대장이 짖궂게 한마디 한다. 산이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굽이치는 것처럼 인생사도 마찬가지라는 김대장의 말이 귀가 아닌 온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하산을 시작한 지 십여분 후, 멀리 보이는 낙가산 조망을 뒤로하고 한시울 마을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선다. 기복 없는 평탄한 길이라 예전엔 MTB동호인들에게 사랑 받았던 길이었다는데 사유지 문제가 불거운 이후로는 정비가 되고 있지 않아 초행자라면 길을 찾기 어려울 듯하다. 뒤엉킨 풀숲이라 '개척산행'을 하듯 내려가야 한다. 얼마 후 낙엽이 두텁게 쌓인 내리막길이 나타난다. 터널을 지나듯 길을 빠져나오니 개망초꽃이 흐드러진 마을길이다. 문태준 시인이 '공중에 뜬 꽃별'이라 노래한 흰 꽃길과 평화로운 농가, 고즈넉한 오후의 하늘이 지친 몸을 품어주는 듯하다.
*산행길잡이
한시울 마을-(40분)-너문대월고개 정상-(15분)-선두산 정상-(15분)-안건이고개-(20분)-선도산 남봉-(15분)-선도산 정상-(15분)-선도산 남봉-(15분)-말구리재-(30분)-무덤-(60분)-한시울 마을
한계저수지 끌어안은 한남금북정맥의산줄기
한계저수지 오른쪽 너문대월고개 임도를 따라 걸으면 너문대월고개 정상에 다다른다. 좌측 능선을 타고 가파른 길을 오르면 15분 후 선두산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서 비탈길에 서있는 진달래나무 사이로 내려서다 보면 안건이고개를 만난다. 15분 정도 오르면 선도산 남봉이고 갈림길에서 위쪽으로 다시 15분 정도 가파른 오르막을 이어가면 선도산 정상이다. 온 길을 되짚어 다시 남봉에서 말구리재 쪽 우측으로 난 길로 향하면 잠깐의 완만한 길 이후 계속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진다. 미테재와 한시울 마을로 갈라지는 임도에서 길이 나있는 우측이 미테재 쪽의 긴 코스이고, 좌측의 풀숲이 무성한 쪽이 한시울 마을 쪽이다. 정비되지 않은 산길이라 초행이거나 일행이 없는 경우라면 미테재 코스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풀이 우거진 평지를 30분 정도 지나 울창하게 나무로 둘러싸인 숲으로 들어서면 우측으로 나뭇잎이 쌓여있는 경사진 길이다. 이 길을 따라 30분 정도면 한시울 마을에 다다른다.
*교통
청주까지 간 다음 25번 국도를 따라 남일면 두산삼거리까지 간다. 거기서 좌회전해 32번 지방도를 타고 은행리까지 간 후 한계천을 따라 한계리로 들어선다. 한계리 위에 있는 한계저수지안쪽 첫번째 오른쪽 골짜기가 들머리다. 마을 안쪽으로 주차공간이 있다.
대중교통은 청주대학교와 청주시청을 지나 한계리까지 가는 241번 시내버스가 하루 3번 다닌다. 요금은 1,400원.
*잘 데와 먹을 데
산성동의 이름난 닭백숙집인 대우장(043-252-3306)과 모듬회와 장어 등을 내놓는 월오동의 풍차푸드타운(255-5577) 등이 있다. 청주 시내에 청주관광호텔(264-2181), 리호관광호텔(233-8800) 등 음식점과 숙박시설이 많다.
*볼거리
단재 신채호 사당 청주시 청원군 낭성면에 있다. 한말의 민족주의 사학자이며 언론인이고 독립운동가였던 단재 신체호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그의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궁궐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솟을삼문을 한 '정기문'과 정면 3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맛매지붕으로 풍벽이 만들어져 있는 '단재영각'이 있고 뒤편에 묘소가 있다.
목련공원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에 위치한 납골당으로 9900평방미터의 넓은 부지에 산책로와 잔디밭, 여러 편의시설 등을 갖춰 가족나들이 장소로 사랑받는 곳이다. 맨발체험장, 체력단련시설 등이 추가로 조성되고 있다.
글쓴이:황윤선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