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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백제 토론방 백제의 22담로에 대해 질문합니다!!
聖君 光海君 추천 0 조회 923 10.01.06 17:28 댓글 3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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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1.06 18:31

    첫댓글 흑치는 필리핀으로 완전히 비정되는 정설이 아니고 그냥 하나의 가설일 뿐입니다. 흑치를 뜬끔없이 필리핀과 연결짓기보다는 한반도 남부지방 어딘가에 이빨을 검게 하는 풍습이 있었던걸로 보아야 합니다.

  • 10.01.06 20:13

    뜬금없다고까지 볼 주장은 아닙니다. 당시 백제의 해상로 가운데 필리핀을 경유하는 경우가 충분히 있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백제가 부남 등의 동남아 국가들과 교류하고 승려 겸익이 인도까지 갔을 정도입니다). 단지 흑치상지 가문이 분봉된 흑치국의 위치가 어디인가를 아직 단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겠지요.

  • 10.01.06 22:54

    한반도가 아니라 동남아 지역과, 일본 어느 지방에서 흑치하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다큐에도 나오더군요..일본 어느 지역인가..얼마 전까지도 이를 검게 칠하는 풍습..
    그래서 일본이 22담로 중 한두개 지역으로 상정되지 않나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 10.01.06 23:32

    헤이안 시대나 에도시대 등에 일본에는 상류층 여성을 중심으로 이빨을 검게 물들이는 화장법인 오하구로(御齒黑) 또는 하구로메(齒黑め) 또는 가네츠케(かねつけ) 라는 것이 있었다고 하니 이 풍습이 백제 당시 일본은 물론 한반도 남부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부 풍습이 한반도 남부와 왜 지역에서 동시에 나타나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러하지요. 그러니 '흑치黑齒' 라 불리는 지역이 정말 이빨의 검은 색과 관련이 된다면 굳이 필리핀까지 고려할 필요 없이 일본이나 한반도 남부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10.01.06 23:44

    다만 이 '일본식 이빨 염색법' 은 쇳가루와 함께 '차茶' 를 이용하기 때문에 이 염색법이 '흑치' 와 관련된다고 말하려면 차의 도입시기를 고려해야 하겠지요. 만약 이런 '차' 를 이용한 이빨염색법이 한반도 남부나 일본에 나타났다면 과연 그 시기를 언제까지 소급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볼 때 차가 한반도에 전래된 것이 9세기 경이라는 통설에 입각하게 되면 흑치 성씨가 저 이빨염색법과 관련되긴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이미 차가 보급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는데 고구려 무덤에서 나온 덩이차 유물이나 일본의 <동대사요록> 에 백제 승려 행기(668~748)가 동대사에 차나무를 심었다는 기록 등으로 보아

  • 10.01.07 00:00

    삼국시대에 이미 '차' 가 백제에 존재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 10.01.07 00:49

    저 역시 그 주장에 동감 ^^ 삼국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이미 차가 보급되었을 가능성은 아주 높기 때문에 미주가효님의 말씀은 충분히 가능성있다고 봅니다.

  • 10.01.07 17:39

    차라면 고고학적으로도 어느 정도 확인되지 않나 싶네요... 최근 백제고지에서 자주 출토되고 있는 중국제 계수호가 차를 담는 용기로 보기도 합니다만... 하지만 이런 화장 풍습자체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의 문제를 고려해본다면 검은 이빨을 모방하기 위한 것이 아닐런지요? 물론, 한반도에서 먼저 찾아야겠지만...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필리핀설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담로가 꼭 흑치상지와 관련해서 설명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ㅎㅎ

  • 10.01.08 11:04

    흑치상지의 흑치국 아니면 딱히 우리가 필리핀과 연결할만한 고리가 없으니 그런거겠죠. ㅋ 그나저나 우리나라도 외국에 가서 발굴을 좀 많이 하고 그래야 할텐데 참 어렵네요. 중국 애들이 우리나라 발굴조사단을 환영하는 것도 아니고...요즘 중동쪽이랑 러시아쪽은 한국 기관이 종종 나가거든요. 중국 동해안 좀 싹 다 까뒤집었으면 좋겠네요 좀...일본에 있는 고분도 한번 싹 뒤집어 까서 발굴조사보고서도 좀 쓰고...에휴...뭐 맘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다만...

  • 10.01.08 20:12

    또 하나 더불어서 필리핀에는 오랫동안 국가가 없었다는 거...ㅋㅋ(필리핀이라는 나라 자체가 근대 스페인, 미국의 지배를 거치며 형성되었지요) 물론 '흑치'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제기된 가설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다고는 보기 어렵겠죠. 되려 미주가효님 말씀처럼 한반도일 수도 있겠고...(백제는 남방 문화도 어느 정도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 10.01.06 20:16

    정확한 위치 고증은 아직 없습니다. 백제라는 나라의 국력 자체도 학계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천차만별인데다가, 백제를 강력한 해상력을 보유한 나라로 본다고 하더라도 백제의 해상력 자체가 아직은 단편적인 기록으로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백제의 해상력이 강력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 부분은 차후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 10.01.07 00:52

    [참고] 역설적으로 본다면....우리는 지금까지 '백제의 해상력'이라는 '허구적(?) 논리'에 취해서 '백제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즉, 그렇다고해서 백제의 해상력이 취약했다는 것이 아니라,...우리는 그동안 '백제가 해외로 진출했다'고 알았던 그 장소들이 오히려 바로 '백제 그 자체였던 것'이라는 것입니다....즉, 그 중심에 '대륙백제'가 있었고 여기에서 거론된 '흑치국'도 그 '대륙백제의 한 부분'이었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오히려 '한반도 백제'와 '열도백제'가 '대륙백제'에서 해외 진출한 '해외담로'였다고 보여집니다...'백제의 해상력'에 대한 정의가 다시 내려져야 할 것입니다....

  • 10.01.07 21:15

    주장만 내놓으시는 행위는 이제 그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근거가 없다면, 그냥 스스로 신중해주시면 안될까요? 저도 주장하고 싶은게 적지 않은데, 근거가 부족하고 그에 대한 공부도 부족하기 때문에 글을 쓰거나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도 카오스님의, 그 주장만 난무하고 근거가 없는 댓글만 봐 왔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 10.01.07 23:07

    근거가 없어서 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일단 '주장'으로 보지마시고 '참고'로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 10.01.08 20:09

    타인이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라면, 그것을 참고하지도 않을 것임은 당연합니다. 저는 왜 카오스님께서 굳이 타인이 수용할 수 없는 주장을 그렇게 꼭 쓰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거 당장 쓰지 않더라도, 치밀한 논증 작업을 통해서 한꺼번에 내놓을 수도 있는거 아닙니까? 카페에서야 뭐 상관은 없다고 치더라도, 카오스님이 자꾸 그렇게만 글이나 댓글을 쓰시니 카페 회원 분들과 영 토론이 되지 않는 것 아닙니까.

  • 10.01.07 00:37

    음....(우선, 백제를 한반도남부로 보는 것이 문제지만,...그건 너무 '큰문제'여서 생략하더라도)...한반도 남부에서 '흑치' 풍습을 결코 찾을 수 없으므로...결국, '흑치국'은 '흑치' 풍습이 있었던 복건,광동,광서...정도였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봅니다...물론 필리핀에도 '흑치'풍습은 있었을 수는 있겠지만, 그곳은 '흑치상지에게 분봉된 흑치국'은 아니었을 것입니다....오로지 후대인이 쓴 역사서에 '흑치상지'가 백제장군으로 나오니까 흑치국이 한반도 남부라고 단정해서 한반도 남부에 없었던 '흑치풍습'을 찾는 것은...'너무 순진하거나 억지스럽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그 반대의 경우도 상정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 10.01.07 00:51

    현재 담로라는 하는 존재에 대한 정확한 해석 역시 학계에서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거대한 광역주였는지, 아니면 조그만 성읍을 중심으로 한 범위였는지, 아니면 일개 도시국가 수준을 넘어선 소규모 국가단계였는지, 그도 아니면 광범위한 영역을 확보한 제후국이었는지...담로의 정확한 정의도 하지 않고 오히려 담로가 어디에 있었는지, 언제 있었는지, 누가 임명됐는지 등만 논하는 것도 좀 안 어울리는 일이죠. 죽, 백제가 한반도 서남부 일부만 차지했다 하더라도 그 안에 22 담로가 다 있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물론 저는 외부에도 있다고 보는 입장이지만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 10.01.07 10:07

    '이빨이 검다' 라는 것을 두고 필리핀이나 중국 남부를 비정하시는 분들은 대개 특징이 '그곳 이외에는 한반도나 한반도에서 더 가까운 곳에 흑치는 나타나지 않는다' 라는 전제 하에 그런 논리를 폅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필리핀이나 중국 남부보다 더 가깝고 백제와 문화교류도 기록상으로 뚜렷이 보이는 일본에 흑치(아예 한자로도 '치흑' 이라 쓰지요) 풍습이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순 없습니다.
    게다가 '일부러' 이빨을 검게 하는 경우만 생각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이빨이 검어지는 경우까지 고려하면, 한반도에서도 '검은 이빨' 의 예를 못 찾을 것도 아닙니다. 몇 년 전인가 TV에서 아마 충청도 지방

  • 10.01.07 09:44

    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마을 주민들 절반 이상이 검은 이빨을 가지고 있는 곳이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검은 이는 아무리 칫솔질을 해도 바뀌질 않아 다른 마을 아이들에게 놀림받거나 특히 여자의 경우 '게으르다' 고 낙인찍혀 타 마을로 시집가서도 고생했다고 하더군요. 특이한 것은 일정 연령대를 기준으로 그 연령대 이후는 정상적인 흰 이를, 그 연령대 이전 사람들은 검게 변색된 이를 가지고 있는데 그 시점이 '수도 공급' 시점과 일치합니다. 요컨대 그 마을의 '검은 이' 는 지하수에 들어 있는 어떤 성분('불소' 라고 했던가? 잘 기억은 안 납니다.) 때문에 과거 세대들은 검은 이를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 10.01.07 10:29

    불소 맞을 겁니다. 제 기억에도 불소라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 10.01.07 10:43

    참고로.... 남한 지역에서 지하수의 불소 농도가 높아 이빨이 누렇거나 검게 변색되던(그러나 수돗물 공급 이후에는 그런 현상이 사라졌지요) 지역으로 꼽히는 곳은 충북 중원군 상모면 수안보리(수안보 온천지대), 대전시 유성구 복명동, 장대동(유성온천지대), 경북 울진군 평해면 온정리(백암온천), 충북 옥천군 청산면 하만월리, 전북 김제군 백구면 유강리, 전북 정읍군 영원면 풍월리 신월마을, 경북 청도군 금촌면 사전2동 서편마을 등입니다. (충청~전라 지역이 많지요)

  • 10.01.07 18:41

    일본을 흑치라 불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 10.01.07 22:58

    일단, 만일 일본에도 '흑치풍습'이 있었다면,...일본도 '흑치국'의 후보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카오스가 말하는 요지입니다만,...'일본의 흑치' 문제는 '흑치상지와 관련있는 흑치인'의 기록이 일본으로 전해져서 남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제외되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즉, 일본은 이래저래 백제와 무관하지 않았으니까요....그래서 또, 만일 미주가효님 말씀대로 한반도에도 '흑치풍습'이 정말 있었다면, 한반도 남부를 '흑치국'으로 추정하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만,..예로 들어주신 내용들은 '이를 검게만드는 어떤 식물을 씹음으로서 생긴 흑치'가 아니므로 '지금 여기서 우리가 찾는 흑치국'과는 무관하다고 보여집니다...

  • 10.01.08 00:16

    제가 치기공과 출신이여서 잘압니다^^ 불소가 다량 함유된 물을 치아가 생성되었을때 먹으면 이빨이 까매집니다. 그래서 불소가 함유된 물을 주 식수원으로 삼는 마을은 대다수의 사람들 이빨이 까매질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성인이된 이후에 그 물을 먹는다면 이빨이 까매 지지 않습니다. 또한, 불소가 다량 함유된 물을 먹으면 충치예방에 매우 도움이 되어서 오늘날에도 불소도포를 하여 충치를 예방하기도 합니다^^ 미주가효님 말대로 충청도 지역에 그런 흑치 마을이 있다면 한반도내에 흑치가 있다고 추론해볼수도 있군요.

  • 10.01.08 00:19

    단순히, 불소농도가 높은 장소중에서 흑치지역을 선정하라면 대전 유성지역이 제일 유력하겠군요... 그 다음으로는 전북 정읍.^^

  • 10.01.08 02:57

    흑치상지는 서부사람이므로 도성인 사비성을 기준으로 본다면 댓글들에서 거론된 지역들은 서부지역이 아닙니다. 일본 일대는 더 더욱 아니지요. 노중국 교수는 백제부흥운동사라는 책에서 흑치는 백제어를 한자의 뜻을 빌려서 썼다고 하여 흑치=금물현(현 덕산)으로 비정하셨는데, 덕산은 사비성을 기준으로 본다면 서부일대가 되므로 덕산이 흑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 주장에도 미흡한 점이 없잖아 있긴 있습니다만, 현재로써는 제일 설득력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필리핀 설도 아주 배제할 수 없고요.^^;

  • 10.01.08 10:52

    단순 방위로 보아 '한반도 내 지역', 예컨대 부여의 서남부에 위치한 정읍 같은 곳도 그 대상이라 볼 수 없다고 엄격하게 방위를 적용한다면, 같은 기준에 의할 때 필리핀을 '서부' 라 보는 건 당대의 지리정보가 부정확했음을 고려하더라도 다소 지나칩니다.
    저기 언급한 것은 전국을 훑듯이 조사한 것도 아니고, 또한 '근래' 의 조사이기 대문에 고대에는 또다른 지역에 이빨검은 마을이 있었다 하여 이상할 건 없습니다. 중요한 건 다음 사항입니다.
    1) 흑치상지가 백제 '서부인' 이라 할 때 '서부' 란 대체 어디인가? 백제 도성 사비성의 오부 중 '우부'(서쪽)를 말하는 것인지, 백제 전국을 오방으로 나누었을 때 서방을 잘못 기재한

  • 10.01.08 10:58

    것인지를 살펴야 하며,
    2) 흑치상지가 '서부인' 이라는 기록이, '흑치' 지역이 백제의 서쪽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 되는지도 좀 더 살펴 봐야 하고, (만약 '서부' 가 백제 수도의 서부라는 의미라면 흑치지역과 서부를 연결시키기는 어려울 듯. 필리핀 설과 같이 방위개념을 크게 중시하지 않는 견해대로라면 서부의 의미를 크게 보지 않아도 될 듯)
    3) 흑치지역이 백제의 서부라 하더라도 백제 사비성의 '서쪽 지역' 한반도에서 이빨 검은 지역을 찾을 수 있는지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 10.01.08 17:56

    말씀 듣고 보니 그렇군요. 그런데 흑치를 문자 그대로 꼭 검은 이빨로 해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사택, 목협 등등의 성씨들처럼 백제 고유어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 10.01.10 14:04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흑치상지 묘지명의 기록을 생각해 보면, 흑치가 '지명' 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이 정말 '검은 이빨의 사람' 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발음만 딴 가차문자일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 10.01.09 14:21

    중국 사서인 양서 동이열전 백제전에는
    백제는 도성을 고마(固麻)라고 하고 읍을 담로(擔魯)라고 하는데, 이는 군현과 같은 말이다. 그 나라에는 22개의 담로가 있는데 모두 왕의 자제와 종족을 나누어 웅거케 한다.

    역사학계 다수는 지방통치조직으로 해석하고 있고,, 역사학계 소수는 왜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봤을때
    봉건적인 개념으로 해석하고 있죠..

    흑치상지 묘지명에서,,그 조상은 부여씨(扶餘氏)로부터 나왔는데 흑치(黑齒)에 봉해졌기 때문에 자손들이 이를 씨(氏)로 삼았다. 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흑치는 지역, 지명일 가능성이 높으며,.. 백제지역에서 해외작물을 재배했던 지역이 아닐까 싶은데요.

  • 10.01.09 14:46

    빈랑의 산지 중 하나인 필리핀지역이고,.금물현에서 재배하지 않았을까요..<빈랑을 씹으면 이가 검어진다고 합니다.>
    이름있는 장수라도 연고지가 아니면 3만명을 모으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참고로
    모 블러그에서 퍼왔습니다.

    노중국 교수는 흑치상지의 6~7대조가 책봉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노중국, 백제의 식읍제에 대한 일고찰, 경북사학 23집, 경북사학회, 2000, 70쪽)

    이도학 교수는 흑치를 필리핀 방면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흑치국이 거기 있었기 때문에 하는 주장이다. (<백제장군 흑치상지 평전 - 한 무장의 비장한 생애에 대한 변명>, 주류성, 1996, 51~52쪽)

  • 10.01.09 14:23

    반면 노중국 교수는 "흑치"는 우리말의 음사라고 생각하고 지명으로 접근한다.

    1. 흑치黑齒는 "검은 이", 또는 "검은 니"로 읽는다.
    2. 흑黑(검)은 금今과 발음이 유사하다.
    3. 치齒(니)"는 "내", "노"와 통하는 말로 "천川", 양壤"과 통하는 말.
    4. 물勿은 수水(물), 천川(내)과 통하는 말로 치齒와 통한다.
    5. 흑치黑齒(검은니) = 금물今勿(검은내)

    6. 충남 덕산의 백제 때 이름이 금물현이다.
    7. 덕산은 흑치상지가 군사를 일으킨 임존성(대흥)과 매우 가깝다.

    이상의 내용은 <백제부흥운동사>, 노중국, 일조각, 2003, 93-94쪽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 작성자 10.01.09 18:21

    그동안 이 질문에 대해 답변하신분들 감사합니다.
    그런데 염치없는 짓이긴 하지만....
    흑치를 제외한 21곳의 담로의 위치비정을 해주시면 더더욱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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