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중의 한국 신화 답사(허황옥 도래 신화)
망산도望山島_ 윤철중 개인전
일시:2015.12.21~12.30
망산도!
망산도는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이 가락국 시조 수로왕과 혼인하기 위하여 멀리 배를 타고 가락국에 건너 와서 상륙한 돌섬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그때 이야기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문득 바다의 서남쪽 모퉁이로부터 모습을 드러내, 붉은 돛을 높이 올린 배가 꼭두서니 빛 깃발을 나부끼면서, 북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유천간 등은 먼저 망산도 위에서 횃불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배에 탔던 사람들은 배를 빨리 저어 다투어 건너와 땅에 내려서, 앞을 다투어 달려 내달아 오고 있었다. 승점에서 기다리고 있던 신귀간 등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대궐로 달려가 그대로 아뢰었다. 왕은 듣고서 기뻐했다.
감동적인 장면이다. 바다의 서남쪽 모퉁이는 기출변이라 한다. 웅천 앞바다를 거쳐 붉은 돛을 높이 올린 배가 꼭두서니 빛 깃발을 나부끼며 기출변을 돌아 북쪽을 향해 망산도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꼭두서니 빛 깃발은 신성왕권을 상징하는 깃발이다. 이 깃발은 이 배에 신성왕권의 귀인 허황옥이 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고장 사람들은 허황옥이 타고 온 큰 배는 바다 가운데 있는 석주도(쪽박섬)에 정박하고 작은 배로 망산도에 상륙했다고 전해 주고 있다. 망산도 밖의 바다에는 석주도가 있고 석주도 밖에는 견마도가 있고 그 훨씬 바깥쪽에는 가덕도가 있다. 지금 망산도와 가덕도 사이에는 부산 신항만이 건설되어 자리 잡고 있어서 허황옥이 꼭두서니 빛 깃발을 나부끼며 타고 오던 배의 뱃길은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부산 신항만이 들어서면서 용원리의 행정구역은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이 되었고, 그 경계 바로 앞 바다에 있는 망산도는 부산시 강서구 송정동이 되어 있다. 2000년 이래 역사의 기억은 망산도가 김해의 가락국에 속해 있는 것이지만, 지금 망산도는 행정상 김해 밖에 있는 부산시 경계에 편입 되어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는 우리의 영원한 고전이다. 우리 후손은 누구나 삼국유사를 한번은 읽어 보게 될 것이다. 그 때에 가서 지금 이렇게 바뀌어버린 지형으로는 삼국유사의 문맥을 이해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후손이 당황하며 황당해 하는 일을 덜어주기 위해서 사진집과 연구서를 내기에 앞서 이 사진전을 열기로 한 것이다.
1970년대 후반 ‘허황옥 도래신화’의 연구 작업 일환으로 망산도를 답사하기 시작했다.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때는 아직 사진 찍을 생각을 하지 못 했고, 여러 차례 답사를 거듭 하면서 1980년대에 들어서서 자주 답사를 하게 되었고, 1986년 2월에 찍어 둔 사진이 지금 사진전에 사용하는 처음 사진이 되었다. 이 사진전에는 1986년에 찍은 7장, 1987년도 7장, 2005년도 4장, 2006년도 2장, 그리고 2015년에 찍은 사진 5장을 사용하였다. 신화 연구 자료사진으로 분류해야 하는 귀중한 자료라고 여기고 있다.
이 사진들은 사진다운 품격이 높은 사진은 아니다. 사진다운 사진을 지향하는 사진가는 이런 사진을 가지고 사진전을 왜 하느냐고 나무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삼국유사를 읽게 될 후손들이 삼국유사의 문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망산도 주변의 옛 모습을 담고 있는 기록사진을 제시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기이편을 중심으로 한민족의 건국신화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욕심 같아서는 각 신화마다 사진집과 연구서를 출간하고 그와 함께 기본 작업으로 계속 각 신화마다 사진전을 열고 싶다.
윤철중(상명대학교 명예교수)



가락국 김수로왕비
허황옥 도래 신화
① 건무(建武) 이십사년(二十四年) 무신(戊申) 칠월(七月) 이십칠일(二十七日)에 구간(九干)들이 조알(朝謁)하러 와서 말씀을 올렸다.
“대왕(大王)께서 강령(降靈)하신 이래로, 좋은 짝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들이 데리고 있는 절호한 처녀를 뽑아 중궁 내전으로 들여보내겠으니 배필로 삼아주십시오”
수로왕이 말했다.
“내가 이곳에 내려온 것이 천명(天命)이니, 나를 짝하여 왕후를 정하는 것도 또한 하늘의 명일 것이니, 그대들은 염려하지 마오.”
② 드디어 유천간(留天干)에게 명하여, 경주(輕舟)를 거느리고 준마(駿馬)를 가지고 망산도(望山島)에 이르러 기다리게 하고, 다시 신귀간(神鬼干)에게 명하여 승점(乘岾)에 나아가 있게 했다.
문득 바다의 서남쪽 모퉁이로부터 모습을 들어 내여, 붉은 돛을 높이 올린 배가 꼭두서니 빛 깃발을 나부끼면서, 북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유천간 등은 먼저 망산도 위에서 횃불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배에 탔던 사람들은 배를 빨리 저어 다투어 건너와 땅에 내려서, 앞을 다투어 달려 내달아 오고 있었다. 승점에서 기다리고 있던 신귀간 등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대궐로 달려가 그대로 아뢰었다. 왕은 듣고서 기뻐했다.
③ 그리고 구간(九干)들을 보냈다. 난요(蘭橈)를 정비하고 계즙(桂楫)을 올려 그를 맞아 오게 했다.
구간들은 곧바로 대궐 내전으로 모셔 들이려 했다.
왕후는 말했다.
“나와 그대들은 평소에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 어찌 감히 경홀하게 따라나서서 가는대로 따라갈 수 있겠소.”
유천간들이 돌아와 왕후의 말을 전달했다.
수로왕은 그 말을 그럴듯이 여겨, 유사(有司)를 거느리고 나와 길을 치우게 하고, 궐하로부터 서남쪽 육십보(六十步)쯤 되는 곳에 가서, 산변(山邊)에 만전(幔殿)을 치고 기다렸다.
왕후는 산 밖의 별포(別浦) 나루터에 배를 매고 육지에 올라, 높은 산길에서 쉬면서, 입고 온 비단바지를 벗어 폐백으로 하여 산령(山靈)에게 예를 올렸다. 그 곳에 잉신(媵臣) 두 사람이 시종했다.
왕후는 행재소(行在所)에 점점 가까이 갔다. 왕은 나와서 그를 맞이했다. 유궁(帷宮)으로 함께 들어갔다. 잉신(媵臣) 이하 중인(衆人)은 계하에 나아가 그것을 보고 곧 물러났다.
④ 이에 왕과 왕후는 국침(國寢)에 드시었다. 왕후는 왕에게 조용히 말을 꺼냈다.
“저는 아유타국(阿踰陁國) 공주(公主)입니다. 성은 허(許)이고 이름은 황옥(黃玉)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열 여섯 살입니다. 본국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금년 오월에 부왕과 황후께서 저를 돌아보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아비와 어미가 어제 밤 꿈 속에서 함께 황천상제(皇天上帝)를 뵈었더니 말씀하시기를 가락국(駕洛國) 원군(元君) 수로(首露)는 하늘이 내려 보내어 왕위에 나아가게 한 사람이니 이 사람이야말로 신성스러운 이다. 이제 새로 나라에 임하여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대들은 모름지기 공주를 보내어 짝을 짓도록 하라 하시고 도로 하늘로 올라가셨단다.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상제의 말씀이 사뭇 귀에 쟁쟁하니 너는 이 자리에서 곧 바로 부모를 하직하고 그곳으로 가거라고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저는 바다에 떠서 멀리 증조(蒸棗)를 찾아 하늘을 옮아 아득히 반도(蟠桃)를 좇아 이렇게 외람히 용안을 가까이 하게 되었습니다.”
왕은 대답해 말했다.
“나는 나면서부터 자못 신성하여 공주가 멀리에서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소. 그래서 신하들이 왕비를 들일 청을 했으나 함부로 따르지 않았소. 이제 현숙한 그대가 스스로 왔으니 이몸은 행복하오.”
드디어 이로써 합환(合歡)을 했다. 맑은 밤을 두번 지내고 밝은 낮을 한번 보냈다.
⑤ 8월 1일에 수레를 돌리어 왕후와 함께 연에 올랐다.
서서히 입궐(入闕)했다. 그때 물시계는 정오(正午)를 가리키고 있었다. 왕후는 중궁(中宮)을 거처로 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