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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바시라船師
다음은 스물세 번째 스승님이신 바시라 선사입니다. 바시라 선사는 뱃사공이시죠. 그냥 바닷가에 사시면서 배를 저어 주시는 분인데 이 화엄경에서는 선사(船師)! 스승 師자를 붙였어요. 그래서 바시라 뱃사공 스승님 이런 뜻이죠.
입법계품의 스승님들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나오시는 스승님 중에 보살이 다섯 분이시고요, 문수, 관음, 정취, 미륵, 보현보살 이렇게 다섯 분이 나오시고 그리고 비구가 다섯 분이십니다. 덕운, 해운, 선주, 해당, 선견비구 . 다 나왔죠. 앞에서. 그리고 비구니는 한 분, 나중에 나오실 분인데 사자빈승 비구니라는 분이 계시고, 우바이, 여자 신도 분이 4명, 장자가 9명, 거사가 2명, 천신이 1명, 여신이 10명, 천녀가 1명, 바라문이 2명, 선인 그러니까 도사죠. 한 분, 왕이 2명이고 선생 1분, 동자 3명, 동녀 2명, 뱃사공이 1명, 외도가 1명, 유녀가 1명, 이제 다음 번에 나오시는 바수밀다 여인이 그 유녀시죠. 그 다음 싯탈타 태자비, 구반외 1분, 마야부인 1분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데 여자 분이 21분입니다. 이거는 바수밀다 스승님 얘기할 때 한번 얘기 드릴까 싶은데 53명의 선지식 중에서 스물한 분이 여자예요. 그리고 출가자가 몇 분 되지 않아요. 6명이죠. 나머지는 거의 세간에 계시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비구는 앞에 그냥 덕운비구, 해운비구, 선주비구, 해당비구, 선견비구 해서 이미 다섯 분 다 봤어요. 그 다음부터 쭉 나오는 분들은 거의 전부 세간에 그냥 계시는 그런 분들이에요. 그런 걸 보면 이 화엄경이 재가불교, 출가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세간을 굉장히 중시했다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가장자처럼 인도 계층의 최하계층에 계시는 분도 스승님이 되시고, 또 바수밀다에서 보시듯이 유녀도 스승이 되고, 오늘 공부하는 바시라선사에서 보듯 이런 뱃사공도 스승이 되고 이런 ‘세상 만물이 모두 열린 눈에서는 다 스승님이다.’ 라는 것을 이야기해주시죠.
-어업을 먹고 살려고만 하면 그냥 어업이 되지만, 이런 마음으로 어업을 하면 세간의 스승이 될 수도 있다!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러고 나중에 인제 미륵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만남으로써 끝나는 것은 결국 근본지! 부처님 근본지에서 출발해서 모든 세간에서 꽃피우고 세간을 풍요롭게 살고 결국 마지막. 그러나 그 마지막은 결국 부처님 법으로 우리가 돌아가야 한다 이런 것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바시라선사에서도 나오지만 화엄경은요, 지금까지 공부하셨으면 아마 다 느끼셨을 겁니다. 무조건 현실수순입니다. 중생들을 현실로 일단 이롭게 한 후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체 중생의 고통, 재물이라는 고통이 얼마나 큽니까? 지금 우리 사회가 모두 그냥 물질 중심의 돈, 돈, 돈에 미쳐가고 있는 그런 사회인데, 뭐 그게 꼭 나쁘다기보다 우리 인간이 지나가는 한 단계죠. 지금 과거부터 물질에 굉장히 우리는 사실 배가 고팠는데, 과거에는 진짜 말 그대로 배가 고팠고! 그게 산업화를 이룩하면서 이 세계가 문명화되면서 배고픔도 많이 멸해졌지만, 우리나라만 해도 밥을 배불리 먹은 게 통일벼인가? 하여튼 1974년인가? 박정희대통령이 쌀알이 큰 벼를 가져와가지고 그 때부터 조금 밥 굶는게 덜했지, 제가 대학생 때만 해도 시골에 가면 밥 못 먹는 분들이 허다했습니다. 그리고 고기 먹는 것도 제가 군대에 있을 때부터 슬슬 고기가 유행했어요. 한 83년부터 회식을 하면 고기를 먹었지 그 전에는 어림도 없습니다. 지금은 전부 어딜 가면, 캠핑을 가든, 펜션에 놀러가든 전부 고기 가져와서 굽고 있죠. 아휴 저는 참.... 그 광경을 보면 다들 맛있다고 고기 먹고 술을 먹고 그러는데 ......우리가 너무 풍요로운 거 같고, 그리고 너무 우리 같은 생명 가진 중생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거 같애요. 횟감 뜨고 그냥 전부 고기 아닙니까? 오늘 바시라뱃사공 이야기도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기 때문에 오늘은 요 정도 하고 다시 본문으로 가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선재가 육향장자를 만나서 '누각성에 계시는 바시라선사를 만나라' 라는 이야기를 듣고 길을 가는데 이번에는 선재가 길을 보면서 또 가르침을 느껴요. 관찰도로 이렇게 길을 살펴보니까 길이 높은 것도 있고 낮은 것도 있고, 평탄한 길도 있고 험한 길도 있고, 깨끗한 길도 있고 더러운 길도 있고, 길이 곧은 길도 있고 굽은 길도 있고 그러더란 말이죠.
(정행품) 길을 갈 때는 모두가 부처님이 가던 길로 가라는 원을 발하라.
이거는 정행품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나요. 정행품은 세상 모든 곳에서 가르침을 보고 또 원을 세우라 이런 내용 아닙니까? 그래서 길에 관한 정행품 몇 구절을 보면
"길을 갈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모두 부처님 행하시는 대로 나아가 의지 없는 곳에 들어가기를 원하라." 이렇게 시작이 되죠. 그래서
견승고로 당원중생 영출삼계 심무겁약,
올라가는 길을 볼 때는 중생들이 영출삼계를 영원히 떠나고 마음에 겁약없기를 원하라
견취?하로 당원중생 기심겸하 長佛선근,
내려가는 길을 볼 때는 그 마음이 겸손해서 부처님 선근을 자라게 하라
見사곡로 당원중생 捨부정도 영제악견,
굽은 길을 볼 때에는 정도가 아닌 것은 다 버리고 모든 악견은 제거하도록 원하라
약견직로 당원중생 기심정직 무첨무광.
곧은 길을 볼 때에는 그 마음이 정직해서 아첨하거나 속이지 말기를 원하라
그렇게 이제 선재는 길을 가면서도 인제는 가르침을 보는 그런 경지에 이른 겁니다. 그러면서 또 선재는
아당친근 피 선지식 이라. 왜냐? 선지식자, 是성취수행 제보살도因
“나는 꼭 이 선지식( 바시라선사겠지요.)을 만나볼 거야.”왜냐? 선지식, 스승님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제보살도를 성취하는, 수행을 성취하는 그런 원인이 되고
是성취 수행 바라밀도인, 또 바라밀도를 성취하는 원인도 되고,
是성취 수행 섭중생도인....,섭중생 ,모든 중생을 안아주는, 그런 것도 일으켜주는 그런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쭉 선재가 썰을 풀죠. 그러면서 이제 마지막으로 결론이 뭐냐?
於선지식처 득 일체선법고, 依선지식力 득 일체지도고.
선지식이 있는 곳은 모든 선법이 있고 선지식의 법력이 의지하면 모든 일체지를 얻을 수 있고 그렇단 말이죠 .
그래서 선지식자, 난견난우! 라
참 스승님은 보기도 어렵고 만나기도 어렵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점점 내려갑니다. 그래서 인제 누각성에 이르러 보니까 뱃사공은 성문과 바닷가에서 장사꾼들 그리고 대중들에 둘러싸여 가지고
說大海法 설대해법 큰 바다의 이야기를 해주고
방편개시 불공덕해 그러니까 바다 이야기를 먼저 해주고 그리고 부처님의 공덕 바다를 방편으로 개시! 열어 보여준단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 선재가 또 자기 자랑하죠.
“ 저, 발심했습니다. 스승님! 빨리 보살행, 보살도를 일러 주십시오.”
하니까 바시라 선사가
“ 어! 선재! 너 정말 발심했어? 너 정말 선재, 선재라~ 참 잘했어요! 그런데 나는 말이야 바닷가에 있으면서
淨修보살 대비당행! 나는 보살의 대비 행을 맑게 닦았어. 나는 빈궁한 이를 보면 말이지. 그들을 이익케 하려고(위요익고)
수제고행 고행을 닦고
수기소원 그 소원을 다 따라주고
실령만족 先以世物 먼저 세간의 물건으로 그들을 만족하게 하고
충만기의 마음을 채워주고
復시법재 다시 법의 재물로
영기환희 환희케 하며( 여기에도 환희란 말이 나옵니다.)
영수복행 복을 닦게 하고
영생지도 지혜의 길을 일으키게 하고
영증선근력 선근을 길러주고
영기보리심 보리심을 발하게 하고
영堅(견고할 견)대비력 대비력을 견고히 하고
영정보리원 보리에 대한 서원을 깨끗하게 하고
영수능멸생사도 생사를 멸하는 길을 닦게 하고
令生불염 생사행 참 기가 막힌 말이죠. 생사로 가는 것을 불염한다. 싫어하지 않는다. 그런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는 거죠. 그래서 화엄경은 윤회를 벗어나는 게 아니라 윤회 속에 들어가라 이렇게 가르쳐요. 윤회에 들어가되 윤회에 들어가서 생사를 싫어하지 말란 말입니다. 이런 구절이 여러 곳에서 나오죠. 적극적인 보살행, 대비행! 물에 빠진 이를 구하려면 물에 들어가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물에 빠져서 허덕이는데 나는 물을 싫어하면 되겠습니까? 수영을 배우고, 또 수영을 그것도 잘해야죠. 그래서 물에 뛰어들라 이겁니다. 밝은 지혜로 생사의 바다에 들어가면요. 생사의 바다는 고해가 아니구요. 아주 즐거운 놀이터가 됩니다. 수영도 할 줄 모르고 망망대해에 빠진 사람은 괴롭지만, 우리는 수영하러 들어가지 않습니까? 수영하면 참 재밌지 않습니까? 수영 배우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은 재미있는 거예요. 똑같은 물속에 들어가는데 지혜로 들어가면 생사의 바다는 고해도 아니고 너무 고달프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만한 지혜가 없어서 참 괴롭죠. 그죠. 저도 참 괴로워요. 사실은! 참 좋은 말이라서 다시 한 번 읊어보았습니다.
영섭 일체중생해 중생의 바다를 모두 거두어주고
영수일체공덕해 공덕의 바다를 다 닦고
영조일체제법해 일체 법의 바다를 다 비추고
영견일체제불해 부처님 바다를 다 보게하고
영입일체지智道 일체지혜의 바다에 다 들어가게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도 현실수순이죠. 빈궁한 이를 봤다는 이야기가 먼저 나오고 그들을 위해서 내가 고행을 닦고, 그들의 소원을 따라서 다 실령만족! 모두 만족시켜주는데 어떻게 하느냐? 처음에는 세간의 물건으로 만족을 시킨다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처음에는 세간의 재물을 비추고 그 다음에야 법의 재물을 준다는 거죠. 법의 재물이 뭐냐 그러면 복을 닦고, 생사의 길을 멸하게 하고, 대비력을 기르고, 보리심하고 쭉 이렇게 나오는 그런 이야기인겁니다. 무조건 부처님 법을 말하는 게 아니라 처음에 나왔듯이 처음에는 장사꾼이나 이런 사람들에게 바다 이야기를 먼저 해주고 그리고 이제 부처님 공덕 바다의 이야기로 끌어들이는 거죠. 이게 화엄의 특징인 거죠. 수없이 이제 입법계품을 공부하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모두가 다 현실 수순이에요. 배고픈 사람들에게 고매한 법 이야기 소용없습니다. 병든 사람한테 병을 낳게 해주고 부처님 법을 이야기해야지. 지금 몸이 안 좋아서 골골거리는데 거기에 하나님을 믿으라 부처님을 믿으라 해 봐야 되겠습니까? 화엄경은 그런 것을 배격하죠. 먼저 중생들을 편하게 해주고 육신을 편안하게 해줘. 배고픈 이에게는 먹을 것을 주고 병든 이에게는 약을 주고, 길잃은 이에게는 길을 가르쳐 주고 나서 뭘 하라 이거예요.
선남자,아주어차 선남자야, 나는 여기에 머물고
여시사유 이렇게 생각하고
여시작의 이렇게 작의하고 여시이익 일체중생 하느니라”
그리고 나서 선사는 바다의 여러 가지 비밀을 모두 안다고 얘기하죠. 즉 바다에 있는 차별상들을 속속들이 아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보배 섬이 어디 있는가? 보배가 어디 있는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바다 속에 있는 여러 가지 해산물도 보배가 되겠죠. 빛나는 금은보화만 보물이 아니라.... 바다 속에 있는 보물을 다 안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흔히 해녀들이 그러지 않습니까? 바다가 다 보물이라고 그죠. 그렇게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바닷물이 소용돌이치는 곳, 얕은 곳, 깊은 곳도 모두 다 아는 거예요. 그래서 갈만한 곳은 가고 가진 못할 곳은 안 간다는 거죠.
그래서 선재보고 그럽니다. “ 선재야, 나는 아이성취 여시 지혜 상능이익 일체중생! 나는 이런 지혜를 얻어서 언제나 일체중생을 이익하게 해줘요.”
우리가 보면 ‘지혜’라 그러면 오묘한 부처님의 어떤 사상 이런 걸 지혜라 하고, 공이라 하고 지혜로 알고 있죠. 알기 쉽죠. 하지만 여기 바시라 선사는 이렇게 바다에 어디 가면 어떤 것이 있고, 어디 가면 보배 섬이 있고, 바닷속에 뭐가 있고, 바다가 험하고 험하지 않은 곳이 어딘지 다 아는 것도 ‘지혜’라 말하는 겁니다. 의미심장한 말이죠. 그래서 화엄경은 구절구절 하나가 전부 기가 막혀요. 전부 우리가 쓰는 용어를 쓰는 겁니다. 새로 만든 용어가 없어요. 화엄경에는! 그래서 저 같은 사람도 화엄경을 원문으로 보는 데도 크게 해석하는데 어렵지 않은 겁니다. 제가 무슨 한문으로 알겠습니까? 그런데 아는 단어들이 다 나오니까 쉽게 넘어가죠.
그리고 또 인제 바시라선사가 자기자랑을 합니다.
선남자, 아이好船 운제상중 行안은도,
선남자야 이렇게 좋은 배로 (한글대장경에서는 안전한 배로 번역해 두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좋은 배로 모두 상인과 대중들을 안온한 길로 다 이끌어
그런 다음에 아이好船 復위설법 영기환희
그런 후에 안온한 곳에 뱃길을 잘 아니까 얼마나 이분이 운행하는 배는 편안하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나는 이런 배에 탄 분들을 좋은 곳에 모신 다음에 다시 법을 설하여서 그 분들로 하여금 다 환희케 하노라.
인지보주 여제珍寶 咸사충족 연후에
보배섬으로 이끌어 온갖 진귀한 보물로 모두 그들을 충족한 연후에
將영환 염부제.
다시 우리가 사는 세간으로 돌아온다. 말입니다.
그리고“난 이렇게 다니면서도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어.” 그리고 또 자랑합니다.
“약유중생 득견아신 문아법자는 만약에 사람들이 내 몸을 보거나 내가 말하는 법을 들으면
영기 영불포 생사해 그 영혼이 생사의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내 몸을 보면!
필득입어 일체지해, 일체지의 바다에 반드시 들어가!
필능소갈 제 오욕해. 오욕의 바다를 완전히 말려 버려.
능이지광 조삼세해 또 삼세의 바다를 지광, 지혜의 빛으로 비추고
능진 일체중생고해 중생의 고해가 다 멸하며
능정 일체중생 심해 중생 마음의 바다가 맑아지고
속능 엄정 일체찰해 모든 바다가 장엄하고 맑아지며
보능 왕예 시방대해 시방대해를 널리 다니면서
보지 일체중생 근해 모든 중생의 근기의 바다를 다 알고
보료 일체중생 行道 행의 바다를 또 다 알고
보순 일체중생심해. 중생의 마음, 넓은 중생의 마음 바다를 다 수순하느니라.” 이렇게 자랑합니다.
이제 그렇지만 이제 또 바시라선사도 좀 부끄러운 게 있죠. 뭐냐?
선남자, 아유득 차 대비당행 선남자야, 내가 대비당행을 얻어 가지고
약유견아 급이문아 여아동주 억념아자 개실 不空. 나를 보거나 내 말을 듣거나 나와 같이 있거나 나를 생각하는 이들은 개실불공! 불공을 한글 대장경에서는 ‘헛되지 않게 한다’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나를 보거나 내 말을 듣거나 나와 같이 있거나 나를 생각하는 이들은 모두 허망하지 않을 것이야 ! 그렇지만 나는 이런 거는 몰라. 뭘 모르느냐?
여제 보살마하살 께서 보살이
선능 유섭 생사대해 능히 생사의 바다에 들어가서, 생사의 바다에 노닐면서, 유섭이죠 유섭. 노닐 유 자, 건널 섭 자. ‘유섭’이란 건너가서 노는 거예요. 보살이 생사의 바다에 들어가 건너가서 놀고
불염 일체 제번뇌해 번뇌의 바다를 싫어하지 않고
능사일체 제 망견해 망견의 바다를 다 버린다. 허망한 소견을 다 버리는 거예요. 망견을 버린다는 말입니다. 생사의 바다에 들어가서 노닐면서, 번뇌를 싫어하지 않고 모든 전도망상을 다 버리고
능관 일체제 법성해 모든 법성의 바다를 다 관하며
능이사섭 섭중생해 사섭, 자비희사죠. 사섭법으로 능히 중생의 바다를 모두 안아주고,
이선안주 일체지해 일체지의 바다에 편안히 머물면서
능멸 일체중생 着海 중생의 집착의 바다를 모두 멸하는
능 평등 주 일체 시해 ‘일체 시간의 바다에 능히 머문다, 평등하게 머문다.’ 요렇게 해석해야겠네요. 그런데 ‘일체시해에 평등주’한다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음 말은 알겠어요.
능이신통 도 중생해 신통으로 중생들을 다 구한다는 거죠. 제가 늘 강조하죠. 우리가 어떤 식광? 어떤 홀린 게 아니면 신통이 없는 걸 부끄러워 해야된다. 제가 늘 강조하죠. 신통으로 중생을 구해야 될 때도 있는 겁니다. 숙명통을 하고, 천안통, 천인통, 타심통을 해서 구할 때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것을 다 갖추어야죠. 그것을 마구잡이로 나를 위해서 쓸 필요는 없지만, 중생한테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 적어도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는 분이라면 신통을 좀 가지고 있어야죠. 가지고 있으면서 안 써야지. 신통 자체가 없어가지고 중생을 제도하지 못한다면 참 부끄러운 줄 알아야 될 겁니다. 그래서 제가 늘 부끄러운 거예요. 그리고
능以기시 조 중생해 그 때를 잘 알아가지고 모든 중생을 조복한다는 말입니다.
이아운하 능지능설 피공덕행. 이런 공덕행이야 내가 어찌 알겠느냐?
그러면서 무상승 장자를 만나러 가라 이렇게 또 얘기합니다. 자 이에 선재는 비읍유로 라, 또 슬피 울어요. 또 발에 엎드려 절하고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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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늦었습니다. _()_
현실수순을 잘 알고 주위를 둘러보겠습니다.
자기 분야에서의 달인 들도 다 지혜가득하신 분임을 알고 늘 배우는 자세로 섬기겠습니다.
또 부친께서 젊은 시절에 통일벼개발을 위해 차출되어 노력하신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수고하신 많은 분들의 노고를 잊지않고 , 잘 살아야 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수고 많으셨습니다 분량이 제법 많은데 모두 녹취 하느라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그래도 청정수님이 이렇게 녹취 해 놓으셔서 많은 분들이 25분이나 동영상을 안 들으셔도 내용을 듣는 것 이상으로 쉽게 알수 있으시겠네요!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_()_
화엄경 동영상을 만들때 늘 아쉬운 것 하나가 분량을 오래 할수 없다는 겁니다. 정말 글자 하나하나 대목 한 구절에 배울 가르침이 너무 많거든요 그런데 시간 때문에 그냥 넘어갑니다.
이렇게 녹취를 해 놓으시니 말씀 못드린 부분이 바로바로 눈에 띄네요. 폰으로는 타자가 어려워 내일 출근하면 컴으로 말씀 드릴께요
부사모 법당 게시판을 로그인 안해도 볼수 있게 오늘 바꿨습니다
그러니 내용이 좋으면 링크로 많은 분들께 좀 전해 주셨으면
고맙습니다._()_
우리 카페의 화엄경은 다른 카페나 기존 화엄 하고는 좀 다릅니다
우리 카페는요,
화엄學을 배우는 곳이 아니고
화엄經을 배우는 곳이지요
부처님 근본지에서 출발해서 모든 세간에서 꽃피우고 세간을 풍요롭게 살고 결국 마지막. 그러나 그 마지막은 결국 부처님 법으로 우리가 돌아가야 한다
---세상 만사가 그러합니다. 옛날 영화를 보면 검객들이 칼을 칼집에 넣고 다니다가 싸움할 땐 칼집에서 칼을 뽑아 싸우죠. 그리고 싸움 끝나면 다시 칼집에 넣습니다.
세상 만사가 알고보면 다 그래요. 근본자리에서 출발해서 휘황찬란하게 휘젓다 다시 근보자리로 갑니다.
수구고향인가 하는 말이 있죠? 죽을 때는 다 고향을 쳐다본다는 말 말입니다.
바로 근본자리죠.
노향림 시인의 압해도가 사람 마음을 울리는 건, 압해도 내용이 그런 근본자리의 소식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곡조도 훌륭하고 詩도 훌륭하고...
그러니 불멸의 가곡이 되는거죠.
화엄경은요, 지금까지 공부하셨으면 아마 다 느끼셨을 겁니다. 무조건 현실수순입니다
---우리가 공부든 학문이든 문화든 문명이든 익을수록 현실적이 됩니다.
제가 공부가 익어가면 점점 화엄적으로 된다, 는 말씀을 자주 드리는데,
화엄적으로 되는 것 중 하나가 '현실에 충실해지는 것'입니다.
현실 중시가 공부가 최고로 익을 때 나오는 모습이고,
그걸 일러주는 불교 경전의 대표적 경전이 화엄경이지요.
원효불교의 특징 중 하나도 이기영박사님 말씀에 따르면 '현실중시'라 합니다.
육조스님도 현실을 엄청 중시했어요.
그래서 원효나 육조 같은 스승님은 타방정토를 부정(?)합니다.
대신 唯心정토를 말씀하시지요.
정토가 저 멀이 십만억국토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 있다, 는 말씀이지요.
사실 불교 전체가 현실 중시입니다.
이걸 모르는 분들이 참 많으세요.
불교 전체가 원칙적으로 현실 중시, 라는 것은,
불교가 그만큼 뛰어난, 발전된 가르침이라는 증거지요.
왠만한 세상 종교 보세요, 현실은 부정되고 내세 중심이 많지요?
*티벳불교는 제가 보기에 내세를 중시합니다. 이 점 명심하셨으면.
이런 이야기를 동영상 만들 때 모두 해 드리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한데, 이런 이야기 해 드리면 바시라 선사도 못 끝냅니다. 한시간 분량이 훨씬 넘어가요
고맙습니다.
현실에서 좀 더 많은 아이들에게 전할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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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업을 먹고 살려고만 하면 그냥 어업이 되지만, 이런 마음으로 어업을 하면 세간의 스승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 어부들은 어떻게 고기 잡고 또 배를 운영합니까?
그러니 어업이 출세간법이 되지 못하고 그저 먹고 살기 위한 세간법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바시라선사는 아니시죠!
그래서 평범한 뱃사공이 화엄의 스승님이 되시는 거고, 뱃사공이 아니라 경전에서 스승 師字를 붙여 드리는 것이지요!
令其환희 환희케 하며( 여기에도 환희란 말이 나옵니다.)
--환희란 단어는 화엄경에 유독 많이 나오는 단어 중 하나인데(다른 경전에서는 환희라는 단어 찾기 아주 어려울 겁니다),
환희가 정말 중요합니다.
히딩크도 우리나라 축구 선수들에게 그랬쟎아요, 축구를 즐기라고!
뭐든 기뻐야 합니다. 그리고 뭐든 기쁘게 해야 합니다.
입법계품 초반에 성문 연각들이 화엄세계를 보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그 분들에겐 환희심이 없기 때문!이란 말씀이 나와요.
많은 걸 시사하죠?
선남자,아주어차 선남자야, 나는 여기에 머물고
여시사유 이렇게 생각하고
여시작의 이렇게 작의하고 여시이익 일체중생 하느니라
--- 이익중생! 이게 불교의 목표이고 우리 우주 전체의 존재 목적입니다!
너나 나나 불교 믿는 이나 아닌 이나 깨친 이나 못 깨친 이나 구원받은 이나 못 받은 이나,
모두 이익중생! 이 하나를 위해 존재하고 또 나아가는 것이지요.
화엄적으로 되는 것 또 하나는 이익중생(이를 화엄경에서는 다른 말로 또 성취중생, 중생성취라고 하지요. 중생성취는 우리 광자 덕자 큰스님이 즐겨 쓰셨던 말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이지요.
부처님도 깨달음도 다 필요없어요, 이익중생만 할 수 있다면!
선지식자, 난견난우!
--정말 참된 스승님은 뵙기도 만나기도 어렵습니다!
그만큼 스승님 소중한 줄 알아야 해요!
스승님을 함부로 의심하고 따르지도 않고...
그런 분들 참 많지요.
세간 살림도 보세요,
잘하는 감독 한 명만 있으면 거기 팀원들이 모두 살아나죠?
예전에 고교 야구가 붐을 일으켰을 때,
뛰어난 감독 한 명 있는 학교 야구부는 전부 좋은 대학 스카우트 되어 갔어요.
고교 선수들 기량이 차이 나봐야 얼마나 났겠습니까?
그러나 감독 하나 잘 만나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세간이나 출세간이나, 스승님은 공부를 굉장히 단축 시켜 주세요.
또 바로 깨닫게 하십니다!
스승님 못 만나면 길고 긴 길을 하염없이 돌아가야 하고 또 고생도 무지무지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스승님을...
바시라선사를 만나러 가는 길의 선재는, 이제는 세상 모든 곳에서 가르침을 보는 단계로 변합니다.
그런 걸 알려주고 있어요.
그만큼 공부가 진보한 것이지요.
53명의 스승님을 만나러 가는 선지식의 모습을 보면 선재가 변화하는 걸 은근히 볼 수 있어요.
울뽀이기만 했던 선재가, 점점 의젓하게 변해 갑니다.
그 중 하나가 스승님 은혜, 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지요.
그냥 스승님의 가르침만 복습하며 가던 선재가,
언제부터인가 스승님 은혜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고마움에 길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지요.
우리는 화엄학도 중요하지만,
이런 화엄경!을 봐야 해요.
그래야 불교 공부가 메마른 공부가 아니라.
자비의 생명이 철철 넘치는 그런 살아있는 공부가 됩니다
음성으로 듣는 것도 좋지만 눈으로 한번 더 보니 더 가까이 다가오고 머리에 들어옵니다.
아이들도 듣고, 읽고 할 수 있도록 더 힘써야겠습니다.
온 세상이 화엄입니다.
중생이익!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화엄경을 접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인데 공부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고맙습니다.
현실에서 좀 더 많은 아이들에게 전할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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