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말기 관음신앙이 기복의 대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노력해 얻어내는 실천적인 신앙형태를 보여줬다는 논문이 나왔다.
한국의 관음신앙 형성에 가장 큰 토대를 만든 관음영험담은 단순히 기복의 확산에 그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영험담이 또 다른 영험담으로 발전하며 구전 전승되고 사찰의 연기설화로 나타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바로 옆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한층 더 관음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특히 조선과 같이 철저한 신분제 사회에서 사람들이 영험담을 통해 돌파구를 찾는 원동력이 되었고, 조선말기의 감로법회는 관음이 기복의 대상에서 스스로 노력해서 얻어내는 실천적 신앙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반도의 대중들은 관음을 통해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 그 방법을 다시 타인들에게 전파하여 새로운 소원성취를 만들어냄으로써 보살 관음을 한국의 관음보살로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이효원 박사(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는 이같은 내용을 뼈대로 한 ‘보살관음의 한국적 변용과정-신앙의 영험화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을 인문학계간지 <문학l사학l철학> 봄호에 발표했다.
이효원 박사는 “특히 조선시대에 영험담이 많이 유포되었다”며 그 이유를 “유교적 정치체계와 가치규범들은 인간 내면의 고통까지 치유해주기는 힘들었으며,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외적 억압을 참아내는 서민들에게 내면의 고통을 분출시킬 수 있는 통로는 오로지 종교적 욕구분출밖에 없었다”고 진단했다.
오세암 관음, 세조의 관음친견, 윤총각의 몽중가피, 흥선대원군의 고왕관세음 10만독, 옥천사 해수관음기도 득남영험, 한용운의 만주피격 몽중관음현현, 유제규의 인명구제 몽중가피 등을 예로 제시한 이효원 박사는 “조선말기 고종 9년 관음신앙을 중심으로 한 ‘묘련사 결사’는 승려가 아닌 일반신도들이 맺은 결사로 그 신앙내용이나 조직적인 활동기간, 참여인원 면에서도 상당한 성황세를 이루고 있었다”고 밝혔다. 묘련사 결사를 조선 후기 거사불교 활동의 일단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본 이효원 박사는 감로법회 결사에서 채택한 발원문에서 세운 10가지 원 즉, 회향심, 보리심, 자비심, 지혜심, 무주상심, 성신심(誠信心), 청정심, 갈앙심(渴仰心), 수승심, 불퇴전심이었다고 소개했다. 이효원 박사는 이어 “감로법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관음신앙은 당시 조선 불교계에서 퍼져있던 기복적인 관음신앙을 배제한 수행을 통한 실천적 신앙이었다”고 전제하고 “일반적으로 관음신앙이 현실적인 이익이나 복을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조선에서 묘련사 관음결사는 관음신앙을 통해 불교 전반에 대한 이해와 실천을 완성하려 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선의 관음신앙이 막연한 기복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의 변화를 꾀하는 실천적 신앙이었음을 밝힌 이 논문은 오늘날 기복 일변도로 정착된 한국의 관음신앙이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사료적 근거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