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성당을 위한 시와 축제
그 동안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당 건축은 신속히 진행되어 11개월만에 준공되었다.
1852년 6월 20일 성당은 성대하게 축성되었다.
우리는 운동장 입구에 커다란 아아치를 만들어 놓고 그 위에 대문자로 이런 말을 써 놓았다.
"우리는 팔방에 황금 글씨로 '오늘이여, 영원히 만만세'하고 기록하리."
내게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는 요셉 물란키 선생님은 그날의 친미가를 작곡했다.
이 노래는 집안 구석구석에 울려 퍼졌다.
서쪽에서 태양이 떠올라
동쪽으로 넘어가고.
온갖 샘이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전에는
결코 사라지지 못할
이 아름다운 날은
우리에게 영원히 남으리.
또 다른 시도 뜨거운 마음으로 낭송하고 노래했다.
새가 둥지를 틀고
평화로이 쉬기 위해
이 가지 저 가지
우람한 나무 찾듯
10여 년간 우리
보금자리 찾아 헤맸네.
많은 신문들이 우리의 축제를 보도했다.
성당이 준공되자 갖가지 비품이 필요했으나 시민들의 자선이 쇄도해 이를 채웠다.
요셉 두프레 기사 분단장은 성 루이지에게 봉헌된 성당을 아름답게 꾸며 주었으며
지금도 성당을 단장해 주는 대리석 제대를 마련해 주었다.
또 다른 은인은 연주석을 만들게 하고 그곳에 외부 젊은이들을 위한 오르간을 들여 놓았다.
미켈레 스칸나가티 씨는 필요한 모든 촛대를 샀다.
파사티 후작은 성모님의 제대를 세우고, 그것을 구리 촛대로 장식케 했으며
후에는 성모상을 마련해 주었다.
카파소 신부님은 강론대를 마련해 주었다.
큰 제대는 프란치스코 발라우리가 마련해 주었고 그의 아들 베드로 신부님이 완성해 주었다.
이리하여 새 성당은 짧은 시일안에 평일과 축일 행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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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어떤 때는 풀밭, 어떤 때는 정원,
어떤 때는 마당, 방 혹은 길거리,
때로는 광장이나 가도가
우리에겐 오라또리오였네.
마침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자비의 눈길을 펴시어
10년 늦게
부족을 메꾸어 주셨네.
같아 주셨네, 학교와
즐겁게 뛰놀 수 있는 정원,
소년들의 보금자리인
화려한 집을.
돈보스코의 회상 335.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