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전남교육의 최대 화두인 '고교평준화'일정이 본격화되었다. 지난 1월 7일 목포를 시작으로 여수, 순천에서 고교입시제도 개선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개최한 후 1월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여수ㆍ순천ㆍ목포에서 각각 1000명씩 여론조사를 실시한 후 찬성 응답자가 일정한 비율이 넘는 지역만 2004년부터 고교평준화를 실시하는 것이다.
▲ 여수대학교에서 열린 고교입시제도 개선 공개토론회
ⓒ2003 김태문
1월 8일 오전 10시부터 열린 여수지역 공개토론회는 지역민의 관심을 반영하듯 토론회장 입구에서부터 찬ㆍ반 양측의 학부모들이 나와 유인물을 나눠주는 등 치열한 홍보전을 펼쳤다.
여수대학교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이날 토론회에는 교사, 학부모, 도교육청 담당자, 여수고ㆍ여수여고 동문 등 약 300여명이 참석하였다.
한국갤럽 이계오씨의 사회로 찬성ㆍ반대 측에서 주제발표자 한 사람과 지정토론자 2명씩 참석하여 평준화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진지하게 펼쳤다.
고교 평준화 찬성 측 주제발표자로 나선 한창진(시전초등학교 교사)씨는 '인재육성을 통한 지역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서 고교 평준화'라는 주제로 ▲고교 입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필요 ▲고교 평준화에 대한 오해 ▲고교 평준화가 필요한 이유 ▲여수에서 고교 평준화 시행 방안 ▲인재 육성은 여수의 유일한 희망에 대해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참석자들을 설득하였다.
먼저 고교입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문을 연 한 교사는 "대통령 선거에서도 노무현 당선자가 현재의 평준화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공약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고, 고교 평준화는 전국의 23개 지역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고 비평준화로 남아 있는 9개 도시들도 평준화를 준비ㆍ추진 중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 평준화 찬성측에서 나눠준 자료를 꼼꼼이 살피는 참석자
ⓒ2003 김태문
또한 그는 "우리 사회에는 고교평준화제도에 대한 상당한 오해 있다"고 말하고 ▲평준화제도는 학교 선택권을 박탈한다는 오해에 대해 "개성이나 적성, 인성 등이 아니라 성적이 좋아 특정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에게 교육기회를 주기 위하여 그렇지 못한 다수의 사람에게 교육기회를 빼앗는 것이 과연 교육적인가"라고 반문하고 "선 복수 지원 후 추첨 방식을 활용하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평준화를 실시하면 학력이 하향 평준화 된다는 오해에 대해 "이러한 주장의 실증적 근거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고 실제로 두 제도하에서 학생들의 학력을 종단적으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고 말하고 "오히려 단순비교할 경우, 평준화 지역 성적 향상도가 비평준화 지역 성적 향상도보다 더 높다는 실증적 조사 결과가 몇 차례 있었다"고 말했다.
▲평준화 제도는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킨다는 오해에 대해 "고교 평준화 실시는 보통교육의 틀 속에서 어떻게 교육의 공적 기능을 확대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중학교부터 입시경쟁으로 내몰리는 비평준화제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평준화 지역 중학생들은 독서, 취미활동, 운동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청소년기에 필요로 하는 것은 작은 그릇에 감당하기 어려운 많은 지식을 담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의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그릇의 크기를 크게 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평준화 제도는 학교별 자율성을 막고 학교를 획일화시킨다는 오해에 대해 "학교의 획일화 문제는 고교 입시제도를 통해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다양한 목적의 소규모 학교(예를 들면 컴퓨터, 연극, 영상, 디자인, 만화, 대안학교 등)를 활성화시킴으로써 가능하다. 오히려 비평준화 제도는 정상적인 중학교 교육과정 운영을 어렵게 할뿐만 아니라, '입시'라는 획일적 가치를 양산할 뿐이다. 청소년기에 올바르게 형성되지 못한 인격은 자신 및 타인의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하지 못하게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 이날 토론회장 앞에는 평준화 찬성ㆍ 반대측에서 홍보에 열을 올렸다.
ⓒ2003 김태문
이에 대해 반대 측 주제발표자로 나온 조현우(새 여수21 연구회 사무국장)씨는 "토론회에 참석할 것이지, 거부할 것인지를 늦게 결정하였고 그래서 원고가 충분히 준비되지 못했다"고 양해를 구한 뒤 "고교 평준화로 여수 교육 망칠 수 없다"는 주제로 고교 평준화 반대 이유를 역설하였다.
그는 반대 이유로 ▲경쟁력이 약화된다 ▲학력의 하향 평준화가 우려된다 ▲학생들의 개인차를 존중해야 한다 ▲여수는 평준화를 위한 도시 기반이 미흡하다 ▲학교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학교 내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우수 인재의 유출 우려가 있다 ▲도서ㆍ읍ㆍ면 단위 학교의 문제 등을 들었다.
이날 고교 평준화 토론회를 지켜보면서 고교 평준화 제도의 문제를 학생의 입장에서 미래 지향적이고 교육적으로 접근하려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는 판단과 함께 일부 기성세대들의 이해관계로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다원화된 세계화 시대에 창의성과 개성을 신장하고 확산적 사고를 가능케 하는 제도적 토대를 만드는 일, 학벌위주의 편협된 사고와 경쟁 만능ㆍ약육강식의 가치를 깨부수는 일이 지금 당장 아이들을 위해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몫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