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북 치는 소리와 함성소리, 창과 방패와 칼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백제국의 마지막을 알리는 소리인 듯. 계속해서 요란스러운 전쟁의 소리가 들려왔다. 백제군이 점차 밀리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아신왕은 눈을 지그시 감고 위례성의 내부로 깊숙이 들어갔다.
주위가 검은 대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신비스러운 느낌을 만들어내는 건물이 위례성 중앙에 있었다. 아신왕은 전쟁복 차림에서 어느 사이에 왕관과 왕복을 갖추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는 비장한 각오가 어려 있는 듯 했다. 아신왕은 천천히 그 건물로 들어갔다.
그 건물의 중앙에 초상화 하나가 걸려 있었다. 그 초상화 앞을 촛불 일곱 개가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대왕의 위엄과 자비로운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신비의 얼굴이었다. 그 앞에는 신주가 모셔져 있었다. 그 신주의 일부에는 뚜렷이 ‘온조대왕’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그 건물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을 모신 사당이었던 것이다.
아신왕은 떨리는 손으로 향을 지펴 초상화 앞에 있는 향로에 꽂아 넣었다. 그곳은 금세 향내로 가득해졌다. 아신왕은 무릎을 꿇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초상화 앞의 일곱 촛대의 촛불이 파르르 떨렸다.
‘백제의 앞날은 어찌될 것인가. 지금 온조대왕을 모신 이 위례성 주위를 수많은 적도들이 포위하고 있다. 나는 과연 백제의 망군(亡君)이 될 것인가. 400여 년 동안이나 이어져 내려오는 백제의 사직이 내 대에 무너지는 것인가.’
아신왕의 눈에 침통의 눈물이 흘렀다. 자기 대(代)에 백제가 멸망할 것이라 예상됐기 때문이다. 너무나 침통하고 또 침통하였다. 그것도 한 나라의 국조(國祖)를 모신 성스러운 성을 적도들이 포위하고 있고, 대 백제국의 대왕 자신은 이런 사당에 앉아 침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밖에서 큰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패해 달아다는 백제군의 소리가 아니었다. 언제나 자신감에 차있고 우렁찬 고구려 군의 소리였다. 성문이 무너졌구나. 아신왕은 생각하였다. 버티고 버티던 최후의 전선이 고구려 군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졌으리라. 누군가가 사당 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폐하, 폐하! 여기 계시나이까? 지금 적도들이 성문을 깨고 성 안으로 들어왔사옵니다. 폐하!”
아신왕은 그제야 감았던 눈을 떴다. 올 것이 왔다.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폐하! 폐하! 응답해 주소서! 소신이 어떻게 하오리까? 폐하를 뫼시고 이 곳을 빠져 나가리까?”
아신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온조대왕의 초상화 앞에 큰절을 3번하였다. 그리고 비장한 얼굴로 사당을 나섰다. 밖에서 소리쳤던 사람은 진무였다.
“전선은 정확히 어떻게 되었소?”
아신왕이 힘없이 물었다.
“한수와 마주하고 있는 북문이 무너졌사옵니다. 그곳에서 고구려의 주력군이 몰려오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수군이 서문 또한 공격하여 무너졌사옵니다.”
진무는 왕에게 말을 고하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폐하. 어떻게 하오리까?”
“고구려 태왕에게 짐의 전갈을 전하시오. 짐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짐이 무엇을 하기를 바라는가.”
“알겠사옵니다. 폐하.”
진무는 경례를 취한 뒤 빠르게 달려 나갔다. 멀리서 불과 연기가 치솟는 것이 보였다. 아신왕은 다시 지그시 눈을 감았다.
진무가 돌아온 것은 서너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때까지 아신왕은 여전히 눈을 감고 서 있었다.
“폐하.”
진무가 자신이 왔음을 고했다. 아신왕이 눈을 떴다.
“고구려 태왕이 뭐라고 하던가.”
“어서 짐에게 나와 짐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절을 하라고 하였나이다. 그리고 충성을 맹세하라 일렀사옵니다.”
진무는 주먹을 쥐며 말했다. 그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그가 원하는 것을 하겠소이다. 채비를 하시오. 그리고 남은 조정 대소 신료들도 한데 모아 고구려 태왕에게 항복을 하십시다.”
“폐하! 그럴 수는 없사옵니다! 400년 간 내려온 사직이옵니다. 한순간에 항복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진무가 칼자루를 꼭 쥔 채 아신왕에게 다급히 따졌다.
“전세가 이미 기울었소. 사방은 적도들에게 포위되어 있으며, 짐의 군사 또한 대부분 죽고 뿔뿔이 흩어졌소이다. 항복할 도리 밖에 없소이다. …진무 장군은 짐의 명령에 복종하라.”
아신왕이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폐하….”
진무도 침통한지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통곡했다. 손바닥으로 땅을 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였다.
“고구려와 우리 대 백제국은 한 형제이다. 고구려의 유류명왕과 백제국의 온조대왕은 한 형제지간이라 저들도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니라. 짐은 대왕의 최종 권한으로써 진무 장군에게 명한다. 짐은 항복을 할 것이다. 지금 곧 자리에서 일어나 채비를 할 것이며, 대소 신료들은 모아 고구려 태왕 앞으로 나아갈지니라.”
진무가 통곡을 멈추고 일어나 그 앞에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앞으로 먼저 나갔다. 그 뒤를 아신왕이 따랐다.
위례성의 북문에는 영락태왕이 부교를 타고 아리수를 건너오는 것이 보였다. 고구려의 군사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위례성에 들어서는 영락태왕을 환영했다. 영락태왕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 있고, 기쁨이 넘쳐 보였다. 그의 뒤로 고구려의 주요 대모달과 모달들이 뒤를 따랐다. 어느 건물 앞에서 영락태왕은 말에서 내려 열광하고 있는 군사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오늘은 대 고구려 제국의 영광된 날이로다! 군사들이여! 기뻐 소리 지르라!”
그의 목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고구려 군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를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이 치켜세우고 아까보다 더 높은 함성을 질렀다.
“폐하. 백잔의 주를 어떻게 하실 작정이시옵니까?”
대모달 교도가 조용히 물었다.
“백잔주는 이미 휘하 장수를 보내어 짐에게 처리 의중을 떠보았소이다. 현재 위례성 사방은 우리 고구려 군이 포위하고 있고, 백잔의 군사들은 대부분 죽고 흩어졌소. 백잔주는 감히 우리에게 덤비지 못하고 항복을 할 것이오.”
“항복 말씀이시옵니까?”
“그렇소이다. 지금 현재 상황으로썬 그들도 어쩔 수가 없을 것이오.”
영락태왕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폐하의 깊으신 생각에 감동하였사옵니다!”
교도가 경례를 취했다.
“허허허. 어서 백잔주를 맞아들일 준비를 하십시다.”
“예, 폐하! 마련된 용상 위에 앉으소서.”
영락태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 높은 곳에 마련되어 있는 용상 위에 앉았다. 그가 용상에 앉자 시끄럽던 주위가 조용해졌다.
“대 백제 대왕 폐하 납시오!”
어느 곳에서 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신왕의 행차였다. 아신왕 주위에 하얀 옷을 입은 신료들이 서 있었다. 아신왕만 황금 왕관에 화려한 도포를 입고 있었다. 아신왕은 영락태왕 앞에 섰다.
“어인 일이냐.”
영락태왕이 물었다. 아신왕을 깔보는 태도가 은근히 곁들어 있었다.
“나는 대 백제국의 대왕으로써 400여 년간 이어져 내려온 백제의 사직을 보존하고자 대 고구려 제국의 태왕 영락제 앞에 나와 삼가 고하나이다.”
아신왕은 고개를 숙였다.
“계속 해서 말하라.”
태왕이 재촉했다.
“고구려와 백제는 추모왕 때부터 한 형제였나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되었나이다. 근초고왕 때에 우리는 고구려의 태왕을 참살하였고, 고구려의 여러 것들을 약탈했나이다. 이런 추악한 죄를 하늘이 보시고 노하셔서 지금 고구려의 태왕 앞에 서서 이런 말을 하는 상태로 전락하였나이다. 오늘날 백제가 과거에 고구려에 행한 모든 죄를 태왕께서 용서해주소서.”
아신왕의 눈에 눈물이 연거푸 흘렀다. 너무나 비굴하고도 비굴한 말이었다.
“짐은 백잔의 용서를 듣기 위하여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짐은 백잔주의 항복 선언을 듣기 위하여 이곳에 왔노라. 항복 선언을 하라.”
아신왕이 머뭇거리다 무릎을 꿇었다.
“신 아신, 현재 대 고구려 제국의 태왕 영락태왕께 항복을 선언하나이다. 이 전쟁은 고구려의 승리이나이다.”
아신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좌위에 있던 고구려 군사들이 큰 소리로 함성을 질렀다. 그들 중에는 아신왕을 향하여 손가락질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후로부터 고구려의 영원한 노객이 되겠나이다.”
“충(忠)을 외치라!”
영락태왕이 소리쳤다. 그러자 백제의 신료들도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대었다. 아신왕부터 충을 외치기 시작했다.
“충, 충, 충!”
아신왕은 충을 외치며 자신의 머리를 땅에 부딪쳤다. 뒤이어 신료들도 아신왕과 똑같은 방법으로 충을 외쳤다.
어느 정도 한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영락태왕은 흐뭇한 미소만을 지으며 그들이 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어느덧 아신왕과 신료들의 이마는 깨어져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백 번째가 되었음 즈음에 영락태왕이 소리쳤다.
“그만, 그만하라!”
계속 이어서 말했다.
“짐은 백잔주의 항복을 받아들이노라. 이후로부터 영원까지 백잔은 대 고구려 제국에 조공을 바치며, 지금 왕족 1명과 중신 10명, 그리고 백성 인질 수천 명을 바쳐야 할 것이니라.”
아신왕이 고개를 들고 외쳤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뒤의 신료들도 똑같이 외쳤다. 그곳의 땅에는 피만이 얼룩지고 있었다. 그날의 해가 지기 시작하였다.
김용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극중 인물간의 대화가 아니라..제가 영락태왕이란 말을 쓰는 것을 지적하신 것 같은데요...예를 들어 '영락태왕이 소리쳤다..' 등등 이런 것 말입니다. 즉, 서술자가 이끌어나가는 것을 영락태왕이라 하지 말고 광개토태왕이라고 하라는 것 같습니다..
진무가 경례했다고 하셨는데......그건 좀 그렇지않나요 용어가?.....부복이 났겠습니다 차라리....그리고 고구려 태왕이라고 아신왕이 말하는 것도 이상하죠...그냥 짐의 뜻을 고구려왕 담덕에게 전하라! 하면 될 것을... 왜 적국의 왕을 높여 줍니까? 항복두 아직 하기 전에....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군요. 그런데 고구려토론방에서 많이 거론했지만, 영락태왕이란 말을 쓰지 말기 바랍니다. 광개토태왕 이라고 쓰십시오.
네..^^
생전에 광개토왕이란 말은 듣지 않았을테니... 그냥 태왕이나 다른 말로 불리지 않았을까용?
김용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극중 인물간의 대화가 아니라..제가 영락태왕이란 말을 쓰는 것을 지적하신 것 같은데요...예를 들어 '영락태왕이 소리쳤다..' 등등 이런 것 말입니다. 즉, 서술자가 이끌어나가는 것을 영락태왕이라 하지 말고 광개토태왕이라고 하라는 것 같습니다..
진무가 경례했다고 하셨는데......그건 좀 그렇지않나요 용어가?.....부복이 났겠습니다 차라리....그리고 고구려 태왕이라고 아신왕이 말하는 것도 이상하죠...그냥 짐의 뜻을 고구려왕 담덕에게 전하라! 하면 될 것을... 왜 적국의 왕을 높여 줍니까? 항복두 아직 하기 전에....
죽을거 같으니 잘 봐달라고 아부 떠는 거겠죠. 진숙보도 돌 떨어질거 같으니 "그만 둬라! 짐이 다친다"요런 배짱 떠는 것 하곤 경우가 다르겠죠.